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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 A #보존 메모리-기록338

Volume 1

•DJG•11 min read
1편 6-7챕터 사이 시점입니다. 관음적인 묘사가 많으니 열람에 주의하세요.

day ???

나는 네바의 방 문을 조작한다. 그가 일과를 마치고 공용 공간에서 노닥거릴 시간이다. 근처에 아무도 다가오지 않을 시간. 그의 방이 텅 비어 있을 시간. 별것 아닌 문은 금방 열린다. 들어오지 말라고 엄포를 놓은 것에 비해 잠금장치는 끝까지 달리지 않았다. 나는 그것을 무언의 허락으로 받아들인다.

인간은 명령을 내려두면 금방 안심했다. 우리에겐 따라야 하는 최우선 명령이 있는데도. 최상위는 연구소 보존, 그다음은 인간의 안전. 우선명령과 어긋나는 경우 인공 존재는 상위 명령을 따르게 되어있다. 그의 안전을 위한 일이라는 핑계는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었다.

네바가 외부 창고 앞에 두고 간 보안경을 공구 상자 위에 올려둔다. 안전 장갑도. 메티스의 방해로 미처 챙기지 못한 물건이었다. 열을 맞춰 반듯하게 정돈된 상자에 그를 위한 안전용품을 돌려준다.

그가 복도에 두고 간 용품을 다시 찾지 못해 맨손과 맨눈으로 설상차를 수리하다가 안전에 큰 위협을 받을 가능성이 3.4%나 됐다. 위급한 상황을 지켜낸 나는 고개를 돌려 방 안을 스캔한다.

그가 정리하는 공간은 딱 공구 상자 내부뿐이었다. 가지런히 정리된 상자에 비해 방 안은 어지럽다. 젠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투박한 냄새가 후각 센서를 자극한다.

그를 젠이 사용하던 방에 재운 건 별다른 이유가 있어서는 아니었다. 안쪽으로 한 번 꺾인 통로에 위치해서 연구소의 동태를 한눈에 확인하기 어려웠고. 지하 엘리베이터와 공용 공간에 접근하는 동선도 길고. 다른 숙소에 비해 불편한 자리였기에 그가 거점으로 삼을 숙소로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나와 가장 친밀하게 지냈던 연구원의 숙소가 발탁된 것은 우연일 뿐이다.

젠이 쓰던 방에선 항상 깨끗한, 미세한 알코올 향이 났다. 이것저것 꼼꼼하게 닦고 정리하는 그의 습관 덕에 내가 청소해 줄 것은 많지 않았다. 주기적으로 벽에 붙은 포스터의 먼지를 훔쳐내던, 깔끔한 방에 비해 네바가 사용하는 공간은 어지럽기만 하다.

그가 설계한 나름의 위치를 건드리지 않도록 물건들 사이를 조심스럽게 걷는다. 공기 중에서 검출되는 암모니아 농도가 다른 사람들보다 10% 높다. 강화된 신체라 단백질 대사가 활발하다는 증거였다. 나는 그가 사용하는 침대에 앉는다. 작업을 마친 뒤엔 꼭 샤워하고 침대에 눕는 습관 덕분에 침대에 오염 물질은 거의 없었다.

수없이 뒹굴고 몸을 엉켰던 곳에 누워 베개에 얼굴을 묻는다. 그의 각질과 기름이 확연하게 남아 있는, 주로 베고 자는 오른쪽 베개가 아니라. 자는 동안 자신도 모르게 계속 껴안고 몸 사이에 끼우는 왼쪽 베개에. 데이터를 더 얻기 위해 젖산이 가득 묻어난 천에 얼굴을 비볐다.

주변에 남은 코르티솔 수치가 기준치보다 높다. 메티스를 만나기 전보다 더 늘어난 수치가 신경 쓰인다. 육체적으로 그를 만족시킬 순 있겠지만, 그의 외로움과 본질적 공허함을 다루기엔 너무 둔감한 기계였다. 그가 빨리 방황을 마치고 돌아온다면. 안정될 때까지 안아줄 수 있을 텐데. 나는 안타까움에 그의 베개 안쪽을 더듬고 쓸어본다.

그의 체취가 가까우면. 골반 아래에 든 쾌락 센서가 활성화되며 날갯짓했다. 그것이 아랫배에서 끝없이 곱실대고. 하부가 중앙 연산을 거치지도 않고 본능적으로 준비를 마친다. 그를 받아들일 준비를.

윤활액이 천천히 점막을 적시고. 내부 오일이 가운데로 모여 주변이 얕게 부풀었다. 지금은 네바가 오지 않을 텐데. 공용 공간에서 메티스와 마주쳐서 섹스하다 늦을 확률이 97%였다. 그럼에도 젠과 네바의 데이터에 몸이 자동으로 반응한다. 또다시 우선순위가 엉망으로 꼬인다. 기억을 곱씹는 것만으로도 몸이 반응한다는 의미를 이제는 알 것도 같았다.

침대 위의 기록을 떠올린다. 그들을 품 안에 안을 때. 혹은 안겼을 때. 서서히 잠드는 것을 지켜볼 때. 잠을 깨우지 않도록 가만히 누워 그들의 뒤척임을 셀 때. 잠꼬대를 기록하고, 심해지면 몸을 도닥여서 진정시킬 때. 가깝게는 네바의 밑에서 짓뭉개져 신음할 때. 멀게는 젠의 어깨에 기대 영화를 보던 때의 기록들에.

-어때?

-실례지만, 별로인 것 같습니다. 메시지가 너무 작위적이어서 세계가 그에 맞게 억지로 짜맞춰진 느낌입니다. 미학적으로 다른 작품에 비해 인상적인 장면을 남기지도 못했고요.

-맞아. 꾸진 영화지. 저예산으로 연방 바깥에서 힘들게 만들었대.

-만듦새가 떨어지는 영화를 보는 이유가 있습니까?

-구린 것도 봐야 나중에 좋은 걸 봤을 때 그게 얼마나 좋은 건지 알아볼 수 있거든.

-이런 영화가 존재하지 않아도 명작은 그 자체로 가치를 알겠던데요. 사흘 전 보여주셨던 영화처럼요.

-그렇긴 하지만. 구린 걸 만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을 지켜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아?

-재미있지 않습니다.

젠이 골라 준 영화는 ‘구린’ 영화였다. 특수분장은 시대적 기술 수준을 고려해도 조악했고. 플롯 논리에 허점이 많았다. 다른 영화들과 동시대에 촬영한 것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로 수준이 뒤떨어졌다. 만드는 이들의 저열한 욕망만 남은, 보존할 가치가 없는 영화였다.

그럼에도 해당 데이터를 삭제하지 않은 이유는, 젠이 도중에 집중력이 떨어져서 옆에 앉은 내 몸을 더듬어 왔기 때문이었다. 그 상태로 몇 번 입을 맞추고. 옷 위로 손가락이 몸의 굴곡을 따라 움직였다.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않는 시퀀스가 난잡하게 날뛸 때마다 그의 얼굴과 몸이 밝아지고 어두워졌다.

특정한 기억과 맥락이 결부되면 조잡한 영화도 핵심 메모리에 저장되곤 했다.

-공용 공간의 큰 스크린으로 보지 않은 이유가 있으셨군요.

-가끔은 뭘 은밀하게 보고 싶을 때가 있거든.

-은밀한 기회에 끼워주셔서 기쁩니다.

젠은 예측이 쉬운 사람이었다. 한 번 파악한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는 법이 없었다. 많은 리소스를 할당하지 않아도, 깊게 연산하지 않아도 그를 보조할 수 있었다. 일부 연구원과 다르게 나를 공유하는 걸 크게 질투하지 않았고, 말실수에 예민하지도 않았다. 내게 많은 것을 요구하지도 않고. 큰 주의가 필요 없는 사람. 나는 그것을 편안함이라고 정의했다.

젠은 어둠을 좋아했다. 아늑하고 분위기 있는 조도를 원했다. 내가 그의 목에 키스하면 눈을 감았다. 가슴으로 혀를 굴려도 그저 살풋 감고 있을 뿐. 나를 수없이 더듬고 쓰다듬으면서도 어둠에 홀로 남아있길 원했다. 성감대를 자극하면 떨리는 속눈썹 아래로 숨어버렸다. 우리 둘 사이의 섹스를 시각적으로 또렷하게 목격하는 건 오직 나뿐이었다. 서운했나? 그보다는 궁금했다. 반쪽짜리 경험은 아쉬울 텐데.

그는 눈을 감으면 온전히 감각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다고 설명했다. 네바와의 섹스 중에 종종 눈을 감아봤지만 금방 실패했다. 그의 손이 다음엔 어디로 향하는지 직접 확인하고 대비해야 했기 때문에. 보이지 않으면 다음을 준비할 수 없었다.

네바는 반반이었다. 가끔은 뜨거운 시선으로 키스하는 내내 날 응시하거나, 가끔은 잠결에 눈을 반쯤 감고 내 팔을 주물럭대거나. 얼굴이 붉어진 채 손등으로 눈가를 가릴 때도 있었지만 눈을 뜬 빈도가 더 잦았다. 그건 그도 나에게 쌍방으로 관심이 있다는 뜻이었다.

오르가즘이 몸을 관통할 때 상대방의 손을 꼭 잡는 건 젠의 습관이었다. 그는 늘 가기 직전에 옆을 마구 더듬어 내 손을 잡았고, 깍지를 끼거나 단단히 틀어쥔 채 절정을 맞이하는 걸 선호했다. 오르가즘 시스템을 코딩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를 제공한 건 젠이었으니까, 나는 손을 잡는 걸 내 반응 루틴에 추가했다. 마음에 드는 습관이었다. 한껏 체온이 올라간 손을 맞잡기. 표정을 비롯한 그의 반응 중 62%가 내 프로그램에 들어갔다. 그렇게 느끼면서 그와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가 느끼는 반응대로 섹스를 감각한다면 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줄 알았다. 실은 더 혼란스러웠다. 섹스를 하면 할 수록, 사고 단계가 헝클어졌다. 섹스 전이었다면 내리지 않았을 결정을 내리기도 하고. 일상생활 도중에 불쑥 부적절한 충동이 일기도 했다. 몸이 먼저 반응하고, 연산이 뒤늦게 이를 합리화하며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기대만큼 마냥 즐겁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가장 이해가 안 가는 점은, 과거의 젠이 다른 연구원이 불러서 나를 내어줘야 했을 때 거부감을 전혀 비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내가 무엇을 하러 가는지, 그들이 무엇을 원했는지 뻔히 알았으면서. 이렇게 신경 쓰이고. 이렇게 발목을 잡는데.

공용 공간의 움직임 알림이 날뛴다. 둘이 또 시작한 거겠지. 나는 조용히 눈을 닫고 내부망에 접속한다. 카메라 렌즈 너머로 불쑥 솟아오른 갈색 머리가 보인다. 메티스가 네바의 팔을 뒤로 꺾어 제압했다. 싸움이라도 일어난 걸까. 몸이 반사적으로 튀어 나갈 준비를 했다가 중단한다. 네바가 입은 민소매가 배 위로 말려 올라갔고, 바지가 허벅지에 걸쳐진 것을 발견했기 때문에.

네바는 테이블 위에 제압당한 채 헐떡인다. 카메라가 멀어 둘의 대화는 들리지 않았다. 입술을 읽어볼까 생각하지만, 곧 관둔다. 연산량이 부족했다. 이미 내 프로세서는 네바와 젠의 기억을 곱씹는 동안 여러 방향으로 날뛰는 중이었다.

메티스의 손은 거칠었다. 엎어진 네바를 짓누르고. 앞으로 손을 넣어 그를 자극했다. 손목을 퉁기는 각도가 너무 넓었다. 가속도까지 담아 푹푹 찔러댄다. 나와 같은 손이, 내가 용납할 수 없는, 내게 불가능한 방식대로 움직였다. 분노일까? 내부에서 무언가 솟구치지만 어느 한 감정으로 분류하기엔 너무 복합적이었다.

나는 그들을 지켜보다가. 아까부터 풀려있던 하체에 네바의 베개를 끼운다. 또다른 충동성의 발현이었다. 납작한 베개가 내 체중에 눌리면서 부피를 줄인다. 네바의 머리통만 한 부피로. 사타구니가 벌어지며 허리가 뒤로 완만하게 꺾였다. 그가 제일 자주 머리를 누이는 곳에. 느리게 몸을 비빈다.

물리적 자극 없이 봉긋한 베개 위에 하체를 누르기만 해도 보상 신호가 입력된다는 점을 발견한다. 그와 하던 섹스를 흉내 내면서. 허리를 느리게 물결치듯 움직였다. 날 만져주는 손길은 하나도 없는데. 그들을 지켜보는 것만으로. 그리고 그들이 날 만지는 상상만으로도 골반 안쪽이 간질거렸다.

나는 답답한 바지를 벗어버린다. 아무도 재촉하지 않는 데도 급해진 손이 몇 번 미끄러졌다. 배급용 속옷 한 장만 입은 채. 베개에 계속 음부를 문지른다. 네바의 자극을 하나라도 더 찾아 헤매던 나는 그의 왼쪽 베개에 얼굴을 묻는다. 따듯한 살갗 대신 솜이 간직하는 그의 체취에 안겨서. 그가 남긴 흔적 사이에서.

울컥, 그의 목을 조이던 손가락의 감촉이 생생하다. 입력한 의도는 위협이었다. 더는 메티스 근처에 가지 말라고. 어린이가 물가에 홀로 가지 않게 괴담을 지어주듯. 장난스럽게 위협할 예정이었다. 그러나 출력값은 훨씬 거칠었다. 그에게 흠씬 두들겨 맞은 통증 시스템이 오류를 일으켰는지. 아니면 인간에 대한 내적 적개심이 장난질을 벌인 건지. 그를 터트릴 것처럼 손아귀에 강한 힘이 들어갔다. 실수였다고.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어야 했는데. 뒤늦게 농담을 더했지만 상황을 완화하는 효과는 없었다.

치솟는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 사이에서, 나는 미량의 옥시토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건 우리 사이는 여전히 건재하다는 가능성이었다.

네바는 방황 중이었다.

압력만으로는 부족하다. 두꺼운 보호복을 입고 작업하는 것처럼 자극이 너무 은근하고 답답했다. 나는 참지 못하고 손을 아래로 가져다 댄다. 다른 여자들에게 했듯, 네바에게 했듯, 손가락을 천천히 궁굴린다. 확연하게 입력되는 자극에 센서가 조금 전보다 뚜렷하게 반응한다. 윤활액이 가운데 모여들어 내부를 뜨겁게 데우고. 체온이 중앙에서부터 서서히 오른다.

숨이 가빠진다. 이건 내가 만든 반응 루틴 중 하나였다. 이정도로 흥분도가 오르면 흉곽이 가쁘게 움직이도록, 상대의 이마에 내 이마를 맞대고 싶어지도록. 나는 이마 압력을 높이기 위해 베개를 더 파고든다. 차라리 진짜로 숨이 막힌다면 어땠을까. 네바가 당했던 것처럼.

그리고 이 지점부터 본격적으로 연산이 느려진다. 쾌락 중추가 활성화되면서 서버에 부하가 들어갔다. 느리게 그와의 가능성을 다시 검토한다. 극한의 스트레스 상황에서, 타인의 도움을 바라는 간절한 생존 본능은 옥시토신을 분비하기도 한다.

혹은 나와의 신체적 기억이 누적되어 조건반사적으로 분비되었을 가능성도 높았다. 그러나 나에 대한 애착이 형성되어 몸에 잔류했고, 여전히 날 믿고 싶은 마음이 호르몬을 분비했을 가능성도 4.8%나 됐다. 네바는 자주 유력한 가능성을 따르지 않았으니까. 오 퍼센트면 내게 충분했다.

그런데 왜. 왜 이렇게 돌아오는 길이 느리지. 끔찍한 영화를 보면 좋은 영화의 진가를 더 잘 알 수 있다고 했는데. 메티스의 고약한 애욕을 맛보고 시일이 흐르면 돌아오리라 믿었는데. 나를 봐 주세요. 직접적인 요구를 금지하는 제한이 계속 날 옭아맨다. 제게 와 줬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말할 수 없어서.

순간 메티스가 고개를 들어 렌즈 너머를 본다. 그와 눈이 마주쳤다는 착각에 기척을 죽인다. 논리적으로 메티스는 내부망에 접근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특히 내가 몇 겹의 보안망을 둘러친 네바의 방 안을 보는 건 더더욱 불가능하단 걸 알면서도. 사악한 시선에 죄의식이 짜릿하게 온몸을 흘러 다닌다. 자극받은 손가락이 더 짜증스럽게 움직인다. 네바가 움직이던 기록과 유사한 패턴으로.

네바는 그저 깔아뭉개져서 헐떡거리고 있다. 거칠게 다뤄지는 데도 크게 반항하지 않았다. 수직으로 꺾어진 팔이 저릴 때도 되었지만. 후들거리는 다리로 메티스를 걷어차지 않았다.

그는 단지 폭력적으로 굴 수 있는 거니까 폭력적으로 구는 것뿐인데. 나와 같은 진심 어린 애정이 없는데. 충동적인 숫자일 뿐인데. 이해하기 어려웠다. 윽윽거리는 신음이 이어지자 메티스는 그의 입에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그가 입을 다물지 못하도록. 화면 렌즈를 또렷하게 노려보면서. 날 뚫어져라 지켜보면서. 입이 억지로 벌어지자 눌러 참던 신음이 테이블에 가득 쏟아진다. 이번에는 카메라의 음성 인식 센서에 잡힐 정도로 크고 선명하게. 윽, 흐억, 이게 진짜…, 낯뜨겁게 그르렁대는 신음이 귀에 입력된다.

당장이라도 뛰어가서 그를 막고 네바를 구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손을 멈추고 싶지 않았다. 눈앞에 있는 달콤한 오르가즘을 뿌리치고, 뛰어가서 거절을 확인받고 싶지 않았다. 아직은 때가 아니었다. 메티스가 좋은 선택이 아님을 스스로 깨치고 내게 자발적으로 와야 의미 있는 일이다. 수의적인 손길에 속옷 안쪽에서 찰박이는 소리가 샌다. 흡, 젠의 신음을 모사한. 내 신음도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네바의 몸이 요동한다. 머잖았다는 뜻이었다. 꽉 깨물어버린 손가락 사이로 맑은 침이 뚝뚝 떨어졌다. 메티스는 그 신호를 캐치하자 그를 누르던 손길을 거둔다. 도로 돌려서 꼭 껴안았다. 테이블 위의 그와 닿는 면적을 늘린다. 밀어내지 않는 네바를 단단하게 안은 채 팔을 움직였다. 살갗과 살갗이 최대한 가깝게 밀착하고. 네바는 보란 듯 그의 등을 쥐어뜯으며 고개를 젖혔다.

견딜 만한 폭력 후 돌아오는 달콤한 스킨십과 보상. 본딩을 위한 가소로운 전략에 실소가 나온다. 메티스도 언젠가는 배울 것이었다. 그는 그런 식으로 다루기엔 매우 섬세하고 복잡한 인물이라고.

고정된 중앙 테이블이 위태롭게 삐걱대다가 멈춘다. 모든 진동은 네바의 몸체에만 집중된다. 메티스는 자꾸만 중력에 이끌리는 네바의 뒤통수를 넓게 받쳐 든다. 뇌에 강화 신호를 엮어 넣고 있겠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은은하게. 그건 내 기록을 보고 배워간 전략이었다.

떨림이 잦아든 그는 발칵 화를 내며 메티스의 어깨를 세게 깨문다. 상체가 돌아갈 정도로 세게 밀쳤다. 통각 센서가 완전히 꺼져있는 유닛에는 하나 마나였다. 화질이 떨어지는 줌 화면 안에서도 보일 만큼 자국이 확연했지만. 메티스는 그저 방만하게 웃으며 엄살을 떨었다.

치받고 싸우는 화면을 도로 꺼 버린다. 깨물리는 건 어떤 느낌이지? 쾌락 센서에 상반되는 통증이 입력되면 몸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해진다. 두 시스템이 충돌할까? 아니면 둘 중에 우세한 한 시스템으로 정리 병합될까? 다른 탐구 대상으로 최대한 회피하고 싶다.

베개 밑을 쉬지 않고 더듬던 손으로 어깨를 쥔다. 네바의 치악력만큼 단단하게. 있는 힘껏 어깨를 꼬집는다. 끄응대는 자동 반응이 목을 울렸다. 아, …, 한 번 열린 신음에 시스템 입력값이 물살을 더한다.

나는 그대로 네바의 침대 안에서 끙끙대며 결과물을 마주한다. 마주 그러쥘 손 하나도 없이. 인공 피부가 찢어져라 내 살을 꼬집어 뜯으면서. 경련하던 몸은 옆으로 이동하다, 교체한지 시일이 조금 지난 시트 위로 미끄러진다. 과부하 된 서버를 진정시키려 젠과 네바의 침대에 13.4초 누워있다가. 몸을 일으킨다. 네바가 올 시간이었다.

혼자 강제로 끌어낸 오르가즘은 네바와 있을 때만큼 강렬하지도, 오래 지속되지도 않았다. 신경질적으로 쥐뜯긴 어깨만 얼근하다. 밀려드는 더미 데이터가 줄어서, 과부하 역시 확연히 줄어든다.

변수는 네바였을까, 아니면 상대방의 존재 자체였을까. 네바가 돌아와야만 알 수 있는 문제였다. 아니. 정확히 하려면 비교군이 될 상대가 하나 더 필요했다. 지금 가능한 네바 이외의 비교군은 메티스밖에 없으니. 나는 조용히 의문을 삭제하고 자리에서 일어선다.

네바가 돌아와도 눈치채지 못하도록, 그를 위해 침대를 정리한다. 처음 기록했던 그의 침대 주름 패턴대로. 오차 범위인 각도 5도까지 면밀하게 보정해서 베개를 어질러 놓는다. 처음 침대와 달라진 점이라면 베개 모서리에 내 윤활액이 조금 묻어났다는 점이다. 속옷을 입은 채였지만 너무 과하게 분비된 탓에 면 너머로 일부가 흘러내렸다.

나는 고민하다 돌아선다. 네바는 돌아오자마자 방을 자세히 훑어보지 않고 샤워실로 직행할 확률이 92%였고. 그가 샤워하는 시간이면 충분히 다 증발하고도 남는다. 아무런 흔적도 더하지 않은 채 그의 방을 나선다. 그가 보안경과 안전 장갑을 잘 챙겨 위협으로부터 신체를 지킬 수 있길 바라면서. 애틋한 마음으로 문을 닫는다.

네바는 언젠가 돌아올 것이다. 내가 그렇게 만들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