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크래시
Volume 1
7. 크래시 Crash, 1996
day 47.
-봐. 지금 여기서 내가 손가락 압력을 3%만 증가시켜도 너는 정신을 잃어. 내가 여기서 목을 조르면 42가 얼마 만에 올 것 같아?
-지랄이 풍년이네. 아읏⋯,
-농담 좀 받아주라. 근데 이럴 때마다 네가 어떤 자극보다 더 빨리 반응하는 거 알아? 이게 공포인 걸까?
-자제력 없는 티 내지 말고. 하던 거에나 집중해.
-테스트 해볼거야? 내가 얼마나 자제력이 없는지?
-지금 네 손으로 증명하고 있잖아. 켁, 자제력 없는 거.
-흥.
42는 섹스 중에 어깨뼈가 빠졌었다고 말하기만 해도 오함마를 들고 쫓아올 텐데. 목을 또 조를 필요가 있을 리가. 메티스는 여전히 네바를 끔찍하게 아끼는 42가 손수 그의 목을 졸랐다는 사실에 은근하게 집착했다. 그가 받고 싶은 인정이 어떤 유형인지 알 길이 없는 인간은 최선을 다해 방어할 뿐이었다.
이런 관계들이 어떤 시작이라고 느꼈는지 그는 자꾸 불쑥 튀어나왔다. 작업 동선 곳곳에서. 일부러 엘리베이터를 피해 계단참으로 이동해도 기다렸다는 듯 나타났다.
여긴 카메라가 계단에 가려져서 허리 위로는 사각지대거든. 이용해 줘야지 않겠어? 섹스할 이유와 핑계도 가지가지였다.
그대로 벽으로 밀쳐진다. 빨래가 다 마르지 않아 입은 단추형 작업복이 하나둘 풀려나갔다. 가슴팍이 벌어지자 찬 공기가 밀려든다. 복도의 아늑한 공기와 다르게 쓸 일이 별로 없는 비상계단 구역은 계절이 달랐다. 상체를 바짝 붙여 키스하던 메티스가 슬금슬금 밑으로 내려가자 금방 한기가 든다.
제멋대로인 유닛은 달달 떠는 그의 신체 반응 따위는 아랑곳않고 옷을 마저 벌린다. 툭. 일체형 작업복이 다리로 흘러내리고. 배 위로 돋아난 털이 곤두선다. 네바는 팔로 자신의 몸을 감쌌다.
“금방 데워줄게.”
“또 그 소리.”
흥분한 숨이 입김을 만든다. 네바가 몇 번 떠는 동안 메티스는 대뜸 속옷을 내리고 혀를 밑으로 밀어 넣었다. 하⋯, 아? 그의 혀가 움직일 때마다 추위가 가신다. 몸의 중심부에서 바깥으로. 온기가 퍼지며 소름이 가라앉았다. 부연 입김은 여전히 나오는데. 공간의 온도 자체를 조절한 건 아니었다. 네바는 한껏 상승한 입꼬리를 내려다본다. 여기로도 되네. 점막을 핥아 올린 입이 모양으로 말했다.
으. 지금은 별로 의식하고 싶지 않았는데. 대답 대신 네바는 그의 뒤통수를 단단하게 잡는다. 머리카락을 꽉 쥐자 혀가 입구 위를 찔렀다. 자유자재로 날름거리는 혓몸이 안을 거듭 드나든다.
“뭘 그렇게 질색하고 그래. 있는 기능은 알차게 다 써야지.”
메티스가 머리채를 잡힌 채로 웅얼거렸다. 섹스로봇이라고 기능도 별로 없는 게. 순간 신음이 터져 나왔으므로 생각은 머릿속에서만 머문다.
“왜, 모델에 기능이 적어 보여? 42가 ‘인간적’인 관계를 선호해서 그런 거지 진동, 흡입, 발기, 말고도 있을 건 다 있는데.”
“… 지금 내 생각 읽었어?” 결국 네바가 버적거리며 물었다. 턱을 치들고. 벽에 바짝 붙은 채 밑을 유린하는 움직임을 누린다.
“찍었어. 확률적으로 그렇게 생각할 것 같아서.”
그동안 널 보면서 만든 대화 알고리즘이—, 뒤통수를 당겨 종알대는 입을 가랑이 사이에 붙인다. 덕분에 뒷말은 으깨져 들리지 않았다.
“나중에 나 박으려 들면 잘라버릴 거야.”
대신 낮게 으르렁거리며 위협한다. 그렇게 말하니까 꼭 박아주고 싶네. 젖어서 윤이 나는 입술에선 웃음소리만 샜다.
흐으, 흥분을 참지 못하고 몸을 굽히자 팔이 올라와 그를 도로 밀어냈다. 허리 위만 사각지대라고 했잖아. 내려오지 마. 다른 팔은 벽을 디디고. 메티스의 팔 사이에 가둬진다. 뭔 상관이야, 어차피 너랑 섹스하고 있을 인간 딱 하나뿐인데. 네바는 헐떡이며 중얼거렸다. 알아도 직접 보는 건 다르거든. 이건 나만 독점할 수 있는 광경이야. 메티스는 고집스럽게 그를 몰아붙였다.
메티스와 조우하는 건 주로 외부 창고 앞이었고, 가끔은 공용 공간일 때도 있었다. 늘 안정적으로, 포근하게 조성된 숙소 안에서와 할 때와 다르게 노출된 공간이 그를 은근하게 자극했다.
공간 취향이 메티스의 전부는 아녔다. 그는 충동성이 너무 심했다. 교통 트래픽을 확인한 함선 내비게이션이 경로를 수시로 바꿔대는 것처럼. 어떤 일이 진척되는 한복판에서도 변덕이 외계인 죽 끓듯 움직였다.
괜찮겠습니까? 42는 조금도 인간의 심기를 거스르면 안 된다는 듯, 수시로 동의를 구해왔는데. 언어적 표현이 아니어도. 가볍게 체위를 바꿀 때도 항상 깜빡이를 켜고 들어왔다. 네바가 수응할 시간을 주며 더디게, 단계적으로, 차근차근.
둘을 섞어서 평균 내면 안 되나. 인간 한 명이 감내하기엔 버거운 화끈함이었다.
사실 무엇보다 거슬리는 건, 그의 폭력성이었다.
“아파, 아프다고!”
참지 못한 네바가 소리를 지른다. 뻑. 비명과 함께 튀어 나간 주먹이 그의 볼을 쳤다. 아프다고 했잖아, 새끼야. 세찬 힘에 고개가 꺾일 뻔한 메티스는 목 관절을 잡고 웃었다.
“전에 50psi로 물었을 땐 참았잖아. 강도 조금만 올린 건데.”
“그래서 팔에 자국 남았지.”
“너도 잘 고쳐지는 몸인데, 봐주라.”
네바는 빈 연구실 책상에서 몸을 일으킨다. 이젠 아무 의미 없어진 낡은 문서가 즐비한 곳에서. 선 채로 허벅지 사이에 끼인 메티스가 쪽, 소리 나게 골반 위에 입을 맞췄다.
“한 번만 더 그러면 내가 보낸다고 했어. 가.”
상체가 벗겨진 작업복을 도로 입는다. 그는 여전히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눈치였다. 실실거리는 명치를 손으로 찍어 밀어낸다.
“이만큼 달아올랐는데? 보내겠다고?”
거짓말. 메티스는 타격이 강하게 들어간 턱을 문지르다가. 후들대는 허벅지를 짚었다. 희떠운 몸이 다시 겹쳐온다. 응. 보낼 거야. 어깨를 세워 그를 밀어냈다.
“내 감정을 네가 더 잘 안다?”
“사실을 적시한 거야. 말해주면 솔직하게 인정할까 봐.”
그럼 잘못 생각했어. 네바는 지퍼를 올렸다. 아, 제발. 뒤늦게 상황 파악을 완료한 메티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넌 너무 예측이 안 돼. 안달 난 몸에 억양이 조급해졌다.
“가르치려면 어쩔 수 없지. 그러게 누가 자꾸 깨물래?”
바닥에 바로 서서 몸을 툭툭 턴다.
“난⋯, 난 그게 좋다고 했잖아. 사람을 깨물거나 제압하는 건 나만 할 수 있는 거라고. 공격적으로 굴 수 있다는 게 흥분되는 걸 어떻게 해?”
어쩌긴. 개새끼도 아니고. 유닛이면 참는 법도 배워. 그는 문가로 걸어가 버튼을 눌렀다. 쉬익, 문이 소리를 내며 열린다. 거기서 반성하고 있던지 해. 도로 문이 닫힐 때까지 갈색의 벙찐 눈은 닫힐 줄 몰랐다.
그랬다. 메티스는 그와 적극적으로 어울리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머리를 염색하고 나타났다. 안구색도 바꾼 채. 다른 모델과 차별을 두고 개성을 만들고 싶다고 했다.
day 49.
“즐겁게 지내시는 것 같습니다.”
방 앞에서 기다리던 42가 인사해 온다. 네바는 시선을 의식하며 멋쩍게 옷깃을 목 위로 올렸다.
“뭐⋯, 질투라도 하는 거야?”
“모르겠습니다. 지우고 싶긴 합니다. 제 것으로 덮어씌우거나.” 시각 센서는 계속 목 주변에 난 손자국과 울혈에 머무른다.
“갑자기 없던 소유욕이 생기나 봐.”
“당연히 있죠. 당신은 제가 처음 발견한 건데.”
이번만큼은 우회하지 않고 솔직하게 뱉는 말에 헛기침이 절로 나온다.
“둘이 닮은 구석이 많네.”
“한 베이스에서 갈라져 나온 거니까요. 당신이 골라야 하는 건 완전히 다른 두 존재가 아니라 어느 ‘버전’이냐에 가깝습니다.”
제멋대로인 유닛에게 하도 괴롭혀져서 그런지. 편안하고 느슨한 미소가 내심 반가웠다. 비슷한 얼굴. 비슷한 관계. 메티스와 투닥거리며 쌓인 몸정이 그에게까지 전이된다.
“아무튼. 왜 온 거야?”
“제가 발견한 게 있습니다. 들어가서 얘기해도 괜찮겠습니까?”
그러지. 네바는 숙소 문을 열어준다. 42는 성큼성큼 방 안을 가로질러 들어간 다음, 책상에 무언가를 올려둔다. 그가 예전에 만들어 놓고 연구소 구석구석 숨겨놓은 EMP였다.
“직접 만드신 겁니까?”
“… 나도 비상용 플랜은 있어야지 않겠어?”
둘 사이에 침묵이 흐른다.
그가 이렇게 정공을 가하는 성격은 아녔는데. 네바는 주머니에 잡히는 공구를 만지작거렸다. 하필 니퍼도 아니고 뭉툭한 피복 제거기뿐이었다.
“저를 무력화시킬 용도입니까? 제 차폐막까지 고려해서 상당히 정교하게 만들어진 폭탄이더군요. 그 정도면 저를 10분 정도는 멈출 수 있을 겁니다.”
“엄밀히 말하면 너와 메티스, 둘을 위한 거지.”
네바는 문가를 지킨다. 여차하면 공구로 목을 찌르고 도망쳐야 했다. 일대일 정면승부는 어려우니까. 머릿속으로 그의 움직임을 예상하며 탈출 루트를 계산한다. 유닛의 급소는 어디인지 아직 파악하지 못했는데.
“공용 공간에서 발견했습니다. 조금 더 안쪽에 숨겨 두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제가 발견했다면 메티스도 발견할 수 있겠죠.”
“… 뭐?” 피복 제거기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걸로 당신이 안심할 수 있다면. 나쁘지 않은 것 같습니다.”
비상시에 요긴하게 쓰시길 바랍니다. 그는 올려놓은 EMP 옆으로 조금 물러난다. 그래⋯, 고마워? 예상하지 못한 제안에 멋쩍게 인사한다.
42는 무언가를 기다리는 것 같다가 어물어물 말을 이었다. 고민의 흔적이 역력하게. 더듬더듬. 그리고 결국 내뱉어 버린 듯. “고마우면⋯, 키스라도 해 주시겠습니까?”
당신에게 금방 익숙해져서, 외로워진 것 같습니다. 늘 자신의 신호를 읽기 위해 스캔하듯 바라보던 시선이 툭 떨궈졌다.
“고맙지만. 내 임플란트에 접속할 여지를 주고 싶진 않아.”
“아! ⋯, 다른 곳도 상관없습니다. 당신의 체온에 닿고 싶어서 그랬습니다. … 저는 거기에 이끌리도록 만들어졌으니까요.”
타액이나, 액체로 젖어있는 곳이 아닌 그냥 맨피부면 전기 신호가 전도되지 않을 겁니다. 42는 낑낑대는 개처럼 고개를 숙이고 EMP만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네바는 마지못해 손을 내밀어준다. 42는 천천히 손을 들어 자신의 볼에 감쌌다. 익숙한, 오늘 아침에도 만졌던 얼굴이 손바닥에 닿는다. 이번에는 투명에 가까운 금발 버전으로.
느슨하게, 최적으로 적셔진 입술에 몇 번 손바닥을 비빈다. 방향을 바꿔 손끝부터 핥아 들어갔다. 더운 혓바닥이 나와 손가락 사이사이를 음미하듯 어루만졌다. 넓은 면으로 지문 부분을 핥다가. 뾰족하게 세워서 깊게 들어온다. 노골적인 혀 놀림에 네바의 몸도 열띠게 반응했다.
“그만.”
애무가 점점 위를 타고 올라오자 네바가 제지했다.
“원하시는 것 같은데요. 체온도 오르고, 심박수도—”
“이래서 둘이 닮았다고 한 거야. 내 몸이 원하는 거랑 내가 원하는 건 달라. 그 차이를 모르겠어?”
“정신적으로는 절 원하지 않으신다는 겁니까?”
42가 갸웃하며 물었다. 그래. 나에게 완전히 솔직해지기 전까지는 말야. 네바는 타액이 그득 묻은 손을 바지에 벅벅 문질렀다. 그만 가 보는 게 좋을 거야. 낮고 단호한 목소리에 42가 눈을 굴렸다.
… 알겠습니다. 마지못해 물러나는 기계 팔에는 미련이 가득하다. 좋은 밤 되시길. 42는 다시 젠틀하게 인사한다. 문이 닫히고 잠기는 소리가 나고도. 네바는 한참 동안 문을 바라보고 있었다.
day 50.
매설은 순조롭게 진척됐다. 밤 주기가 거의 흘러가는 동안 네바 역시 설상차를 거의 수리하는 것에 성공한다. 장기 탐사 용도라면 너무 어설프게 급조된 이동장비였겠지만, 지금은 함선에 접근할 이삼십 분을 벌어줄 성능이면 충분했다. 마구잡이로 엮어 넣은 배터리가 저온에서 얼마나 버텨줄지가 관건이었다.
새벽 주기에 접어들면서 표면 온도가 더 하강하는 바람에 메티스 역시 외부 작업량을 크게 줄였다. 낮 주기만 돌아온다면. 여길 벗어날 수 있다. 할 일이 없어 지루해진 하루도 탈출 생각을 하면 견딜 만했다. 혼자 있을 때 여러 전략을 두고 어느 쪽을 선택할지 곰곰 생각에 빠지는 시간이 늘어간다.
day 57.
“네바!”
평화롭던 사우나실의 균형이 깨진다. 메티스가 대뜸 수증기가 가득 낀 문을 열고 쳐들어온다.
“막 들어오지 좀 마.”
네바는 편하게 앉아 있다가 짜증스럽게 다리를 꼰다. 유닛은 씻을 일이 없었으니 공용 사우나실은 오직 인간인 그만의 영역이었다. 냉랭하고 건조한 공기만 감도는 연구소에서 유일하게 힐링할 수 있는 영역. 에너지 효율화 세팅을 마친 그에게 셀프로 주는 포상이었다.
“이번에는 정말 지켜주려고 했는데. 탈의실에서 아무리 기다려도 안 나오잖아.”
30분은 지났나? 놀라울 정도로 바닥인 참을성에 이마를 벅벅 문지른다. 메티스는 큼직한 수건을 몸에 두르고 들어오다가, 그가 나신인 것을 체크하고 본인도 똑같이 수건을 벗는다. 난 혼자만 있을 예정이었으니까 벗은 건데. 네바는 그의 학습을 정정해 주려다가 포기한다.
“왜?”
기대 가득한 눈망울이 여길 돌아본다.
“빨아달라고 부탁하려고.”
“… 뭐?”
나도 그거 카피해 왔거든, 42가 오르가즘 느끼는 거. 너랑 하면 어떨지 테스트해 보고 싶어서 왔어. 안달 난 목소리가 옆에 앉았다. 왜 얘랑 있으면 자꾸 장르가 성인 만화로 바뀌는 것 같지? 네바는 증기로 촉촉하게 젖은 뒤통수를 긁는다.
“테스트는 혼자 해도 되잖아.”
씨익. 메티스는 대답 대신 흡족하게 웃는다. 조심성 없이 앉은 맨 몸뚱어리 위로 이미 한차례 상황이 지나간 듯한 흔적이 눈에 들어왔다. … 탈의실에서? 마지못해 물어보자 어떻게 알았냐는 듯 경쾌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다섯 번. 입술만 조용히 움직이자 네바는 한숨을 또 쉰다.
“지금은 쉬고 싶은데.”
의례적으로 한차례 튕긴다. 메티스의 부탁은 곧이곧대로 들어주기 싫었다. 그 역시 익숙하게 준비된 카드를 꺼낸다.
“알아. 내가 그래서 재미있는 걸 정리해 왔지. 정보 교환 어때? 제대로 입력해 주면 나도 42에 관해 묻는 걸 하나 대답해 줄게.”
오늘 충전하는 동안 심심해서 로그 해킹하고 다시 쭉 훑어보고 왔거든. 내부는 들킬까 봐 외부 저장소만 훔쳐본 게 다지만. 오르가즘도 너랑 대화한 기록 보고 알아낸 거야. 시시콜콜한 설명이 이어졌다.
“넌 손해 보는 게 하나도 없네.”
“그게 협상이니까. 할 거야? 네가 재미있어할 만한 정보가 많거든. 네 신경망 조작 횟수라던가⋯,”
“… 한 개만?”
“기대보다 만족스러우면 두 개? 정보는 많으니까!”
메티스는 바닥에 있던 다리를 쭉 뻗어 네바의 몸 위에 올렸다. 할 거지? 네바는 승낙의 의미로 몸을 돌려 허벅지를 벌리고 들어간다. 인공적으로 편백 향을 첨가한 의자 위에. 메티스가 기대 만발한 표정으로 몸을 내밀었다. 예술적으로 심긴 털이 푹 젖어서 이리저리 뭉쳐 있었다.
이게 뭔 짓이람. 바람이 들어 쉼 없이 움찔거리는 곳에 혀를 세운다. 이미 충분히 부풀어 오른 곳을 훑어 올리자마자 근육에 힘이 들어간다. 손 아래에 자리한 허벅지가 잔잔하게 떨렸다. 좁은 의자에서 어쩌지 못하고 결국 바닥에 자리잡는다. 기특하다는 듯 내려다보는 눈동자가 벽에 기대며 허물허물 나른하게 풀린다.
주름 위틈을 자극하다 문득 맛이 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번 42가 뿜어낸 것과 다르게. 살아있는 것들이 뿜어내는 체향. 땀 냄새. 짠 내. 그리고 시큼하기까지 한 그것들 대신. 깔끔하고 무색무취한, 어쩌면 그의 타액과 별 차이 없는 액이 끈적하게 흘러내렸다.
인위적이고 대칭적인 모양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늘어진 모양에 내심 감탄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섹스로봇에 박고 싶어 하는 사람은 많아도 보지 빨아줄 생각까지 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테니 설정 순위가 밀리는 거겠지. 민망함을 견디며 묵묵히 자극을 더해주자 메티스가 즐겁게 할딱거렸다.
허⋯, 생각보다 더 좋은데. 그가 꾹 잡은 머리채가 점점 얼얼해진다. 쓸데없는 손버릇까지 배워선.
아무 맛도 없으면 오히려 뒷맛이 쓰게 느껴지는구나. 그는 순조롭게 즐기는 눈치였지만 어색한 마음에 침을 떨어뜨려 액을 더했다. 그는 뒤늦게 혀를 내민 네바를 보다가 아, 하더니 맛을 바꾼다.
“침에서 점성만 늘린 건데. 이상해? 방금 합성 바꿨어.”
“미친, 이게 더 이상하잖아.”
갑작스러운 바닐라 향의 침공에 네바는 침을 뱉는다. 그리고 난 인공 감미료 맛 싫어한다고. 혀에 애액이 닿자마자 뱉었지만 기분 나쁜 단맛이 여전히 입안을 괴롭혔다. 내꺼 빨면서 연구했다는 레시피를 그리워하게 될 줄은.
“다른 맛이 나아? 바닐라가 제일 자주 쓰여서 커스텀 설정했는데. 체리 맛은 어때?”
“애액에 왜 맛이⋯, 아니. 대답하지 말고, 그냥 기본으로 돌려.”
돌렸어. 빨리. 마저 해 줘. 보채는 곳을 다시 빨아들인다.
썅. 그리고 다시 침을 뱉는다. 바닐라에 역한 통조림 체리 맛까지 섞여서 가관이었다. 이런 취향은 대체 우주 천지 어디에서 시작된 거야?
“돌렸다며!”
“아니, 이미 배출되어서 묻어난 것까지 내가 어쩔 순 없잖아. 비건 인증도 받은 건데 먹으면 안 돼? 뭐가 그렇게 달라?”
하아. 네바는 단맛이 점유한 혀를 굴리며 손가락을 쑤셔 넣는다. 난 입이 더 좋은, 허윽, 손가락 세 개가 냅다 들어가자 메티스의 말이 끊겼다.
“어차피 난 입 자주 안 써.”
몇 번 밀어올리자 그가 몸을 꼬며 자리에서 반쯤 일어선다. 점점 위로 올라가는 상체를 타고 같이 벽에 붙여 선다. 튀어나온 사우나 의자 때문에 엉거주춤하게 선 그를 뒤집어 벽에 몰아붙였다.
그, 야, 잠깐만. 이거 너무, 익, 어쩔 줄 모르는 손이 벽에 달라붙고. 얼굴이 눌린다. 조화롭게 근육이 잡힌 등이 어둑한 조명을 받아 누렇게 빛났다.
솟아오른 엉덩이에 손을 올려 엄지로 피부 위를 문지른다. 화풀이까지 담아 퍽퍽 쑤석거리자 터지는 신음이 점점 커졌다. 확실히 42가 첫 단추를 잘못 꿰었어. 가짜 영상에나 나올 법한 소리를 듣고 있자 마음 한구석이 묘하게 불편하다. 멋쩍어진 손으로 등을 쓸자 척추뼈가 있을 자리에 볼록하게 튀어나온 것이 만져졌다.
슥 밀어 올렸더니 감쪽같이 매설된 포트가 드러난다. 아응, 주변을 건드리자 좀 전과도 다른 소리가 튀어나온다.
“여긴 뭐야?”
“충전 포트⋯, 이번처럼 급속 충전할 때 써, 거긴 만지지 마. 기분 이상해.”
만지지 말라고? 왜? 별안간 허리를 비트는 모습에 장난기가 돈다. 이번에야말로 지난 날의 복수를 할 기회일까. 놀고 있는 손으로 우묵한 내부 금속을 더듬는다. 제법 농밀하게. 감정을 담아서.
충전 포트를 왜 그렇게 만져. 변태도 아니고! 그를 막기 위해 손이 뒤로 올라왔지만 어렵지 않게 쳐낼 수 있었다.
“만지면 느낌이 어떤데? 설명해 봐.”
“규정할 수 없어. 으, 인간에겐 없는 부위잖아. 개발자들도 어떤 느낌이어야 할지 몰랐겠지.”
하지 말라니까⋯, 지금 해석이 안 되는 데이터가 들어오면 충돌이 심하다고. 히익, 그가 높은 소리를 내며 종아리를 바짝 세운다. 손가락에 죄어드는 질 근육도 난리였다.
“정말 멈출까?”
응, 아니! 멈추지 마. 아니, 멈추는 게 나을까? 지금 대답 못 해. 어려워. 카랑해진 목소리가 박자에 맞춰서 뚝뚝 끊겼다. 간만에 할 맛이 난 손가락이 속도를 더한다. 넘쳐흐르는 액과 땀이 나무 바닥에 뚝뚝 떨어지며 점을 만들었다. 흐, 아, 이거 진짜 좋네, 발끝까지 자지러지던 메티스는 곧 잠잠해진다. 네바는 태어나서 남이 준 오르가즘을 처음 맛본 유닛을 내려다보며 엉덩이를 꾹 쥐어준다.
“이거 진짜 이상하다.”
한 차례 크게 진동한 메티스는 금방 원래 모습으로 돌아온다. 몸에 남는 여운이 없는 듯 곧장 고개를 돌려 입을 맞췄다. 한 번만 더 해봐도 돼? 묵직한 그에게 밀려나며 뒷걸음질 친다. 거친 움직임에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메티스는 그대로 의체가 달린 쪽의 허벅지를 잡아 들어 올린다. 어어어, 땅을 디딘 다리가 하나가 되자 네바가 휘청였다. 한발로 콩콩 찧어가다 반대편 벽에 쿵. 힘이 조금도 빠지지 않은 센 움직임이 그를 몰아붙였다.
“미안, 장난이었⋯,”
뒤늦게 사과했지만 흥분한 메티스는 멈추지 않았다. 그가 다시 키스하자 뇌가 흐물거리는 것 같던 지난날의 감각이 다시 고개를 든다.
“그건 안 하기로, 했잖아.”
메티스가 첫 복도에서 사용했던 건 쾌감 증폭이었다. 네바의 신경망이 발산하는 신호를 읽고, 그대로 증폭해서 되돌려주는 방식으로. 나중에 깨닫고 사용하지 말라고 몇 번이나 호통쳤었다. 겨우 못 하게 막았는데. 버프가 달린 자극이 다시 온몸을 기어다녔다.
지잉 진동하는 손가락이 아래 꽂히고. 소름이 머리끝까지 돋는 것 같다. 흐윽, 돌진하는 전차에게 관통당하면 이럴까. 네바는 업보를 받아들이며 올라간 다리를 그의 허리에 감았다.
“야, 좀 살살, 천천히 해!”
나무 바닥이 팰 정도로 힘을 준 기계 신체가 몸을 옥죈다. 뜨거운 온도와 자극으로 얼굴이 새빨개진 네바가 소리질렀다. 아⋯, 그제야 정신을 차린 듯한 메티스가 몇 번 눈을 깜빡거린다.
차라리 나머지는 나가서, 나가서 하자. 우리 너무 오래 있었어. 땀을 많이 흘려 머리가 핑 돌았다. 정신 차리라고. 짝짝 뺨을 치며 제동을 건다. 그렇네. 메티스는 그를 그대로 가볍게 안아 올린다. 뿌연 수증기를 뚫고 저벅저벅. 문이 열리자 순식간에 밝은 조명과 서늘하게 느껴지는 공기가 몸을 감는다. 작은 전면 거울 하나가 전부인 아담한 탈의실로 돌아왔다.
“난 계속하고 싶어.”
“알겠으니까, 천천히 하라고. 이러다 다쳐.” 납작한 멀미가 뇌를 훑는다.
“근데 천천히 하고 싶진 않아.”
대체 왜 이렇게 흥분한 거야? 그는 네바의 엉덩이를 움켜쥔 채 거울 앞 선반까지 빠르게 움직인다. 오르가즘 처음 느꼈다고 별 유세를 다 부리네. 어찌나 마음이 급한지 걸어가면서도 깨물거리는 입질이 어깨 주변을 돌아다녔다. 네바는 한숨 쉬며 주먹을 꾹 쥔다. 여차하면 전처럼 다시 팰 생각으로⋯,
“악ㅡ!”
메티스의 한쪽 발이 바닥에 고인 물을 밟고 옆으로 쭉 미끄러진다.
네바는 그대로 벽에 던져졌다. 두 신체가 탈의실 한복판에 보기 좋게 넘어진다. 쿵. 한 바퀴 구른 네바의 다리가 벽에 세게 부딪혔다가 메티스에게 제대로 깔린다. 소리가 너무 큰데. 날카로운 통증과 함께 불안한 직감이 그를 엄습했다. 고개를 들자 좋지 못한 각도로 꺾인 발목이 시선에 잡힌다.
“제발!!!”
함몰된 의체는 빠르게 신경망을 차단한다. 기계 부위가 다치는 경우 임플란트는 곧장 신경 신호를 차단하여 통증을 느낄 수 없게 만들었다. 차단되기 직전 미처 막지 못한 통증 신호만 반짝 몸을 달군다.
이 발정 난 새끼야. 네바는 옆에 누운 그를 머리로 박는다. 넘어진 데다 그의 박치기까지 받은 메티스 역시 잠시 반응이 없다가 고개를 들었다.
“아, 헉. 미안해.”
발목 부러진 거야? 당황한 메티스가 다리를 살핀다. 완전히 부러진 건 아니고⋯, 안쪽의 유압 실린더가 부서진 것 같아. 지난번 싸움에서 피로도가 쌓인 부품이 충격을 받아 부러진 모양이었다. 아으⋯, 어쩌지. 어쩌긴, 가서 고쳐야지. 내 방에 수리 키트 있어. 이젠 유닛이랑 섹스하다가 다리까지 부러지네. 네바는 한숨을 빡빡 쉬며 눈을 세게 문질렀다.
안절부절못하던 메티스는 그를 업는다.
“아니, 옷은 입고 가야지!”
그 상태로 일어나서 탈의실을 나가려고 하기에 네바는 소리를 한 번 더 지른다. 어차피 가는 길에 우리밖에 없을 텐데? 그래도 옷을 입는 게 인간이란다, 바보야. 네바는 메티스에게 억지로 티셔츠를 씌운다. 그 역시 헐렁한 옷을 꿰어 입고. 둘은 숙소로 돌아왔다.
“이거 진짜 이상해.”
복도를 터덜터덜 걸어가면서 메티스가 말을 걸었다.
“속옷 없이 옷만 입고 있는 거? 이상해도 어쩔 수 없어. 참아.”
“아니. 내가 클로닝 한 거. 지금은 포트를 만진대도 그렇게까지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거든. 아까는 너무⋯, 심했어. 보상 신호에 서버가 과부하 되면 데이터 관리가 안 돼.”
“으음. 과장이 좀 더해졌을 거야. 안타깝게도 사람 오르가즘이 그 정도로 환상적이진 않아.”
걔가 소설과 영화로 섹스를 배워서⋯, 심각한 그의 표정에 네바는 뒷말을 삼킨다.
“내가 좀 전에 탈의실에서도 해 봤다고 했잖아. 그 정도면 견딜 만했어. 괜찮은 유희였고. 재미있는 시스템이라고 생각했어. 근데, 지금은 달라. 너랑 같이 한 건⋯, 조금 무서울 정도.”
늘 쾌활하게 들뜬 상태의 목소리가 아닌, 풀죽은 그가 말을 이었다.
“이런 과부하가 자꾸 들어오면 시스템 판단 능력이 망가질 수도 있어. 그래서 클로닝 한 부분 격리하고 삭제하려고 했는데, 제거가 안 돼. 나한테 완전히 들러붙어서 이미 일부가 되었달까. 내 프로그래밍 안에 완전히 섞여 들었어. 서포트형에 있는 통증 제어 시스템처럼. 내 자의로 제거되지 않아.”
아! 이래서 그 새끼가 만든 부분은 함부로 클로닝 하면 안 되는 건데! 이건 재미있어 보여서 슬쩍한 거라고. 이 정도니까 걔가 그렇게 너한테 집착하는 거구나. 메티스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 네가 보기에도 집착이 심한 것 같아?”
둘은 숙소에 도착한다. 업힌 상태에서 손을 내려 네바가 보안 장치를 풀었다.
“장난 아니지. 걔 자가 코딩한 부분 보면 널⋯, 아니, 이렇게 아깝게 카드를 막 건네주면 안 돼. 네가 나한테 물어봐. 발목 부러진 건 미안하니까 두 개.”
메티스는 그를 침대에 내려놓는다. 잘 보이는 곳에 올려둔 수리 키트도 같이 가져왔다.
“걔에 대해서 제일 궁금한 게 뭐야?”
“소행성 추돌 이후 삭제된 로그 열람할 수 있어?”
네바는 망설임 없이 섹스하면서 미리 준비했던 대답을 꺼낸다. 그의 발목을 쥔 메티스가 황당하다는 듯 소리 질렀다.
“그런 과거가 중요해? 걔가 스스로 어떤 걸 프로그래밍했는지, 너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너의 무엇을 기록했는지, 신경망 조작을 몇 번이나 했는지, 이런 게 궁금한 게 아니고?” 흥미로운 가십을 준비하다 제지당한 학생처럼. 그가 툴툴거렸다.
“응. 첫 단추가 제일 중요해.”
“하아⋯, 너무 오래 전에 삭제된 거라 복구할 순 없어. 대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