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라비드
Volume 2
8. 라비드 Rabid, 2019
케이블 배관처럼. 손목 정도로 굵은 게 발목을 감쌌다. 발로 쳐내려는 순간 이미 정강이까지 올라왔다. 급히 다리를 움직이자 더 힘 있게 조여드는 게 느껴져서 잠깐 동작을 멈춘다.
“뭐야?”
체온을 가진. 살아있는 무언가가 굼실굼실 몸을 타고 오른다. 뒤로 멘 총을 잡으려고 하자 위에서 흘러내린 것이 손을 붙잡았다. 표면 전체가 양서류 피부처럼 진득한 점액으로 덮인 게, 잡아당기는 힘이 상당했다. 빼앗긴 팔 한 짝이 쳐들린다. 남은 다리로 빠져나가려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뜨뜻하게 온기가 존재하는 표면이 구물거리며 전신을 탐색하기 시작한다.
“썅, 이게 뭔⋯,”
힘겹게 남은 팔을 당겨 허벅지까지 장악한 다발을 뜯어낸다. 미끄러워서 손아귀에서 자꾸 벗어났다. 반장갑의 마찰을 이용해 최대한 당겨내지만, 다른 다발이 내려와 남은 손까지 결박한다. 턱을 당기며 저항했지만 소용없었다. 두 팔을 쳐든 상태로 온몸을 잠식하는 촉수를 느낀다. 끈끈한 유체가 접촉면마다 얇은 막을 남겼다.
캐스는 물 위에 둥둥 뜬 기름처럼 반질거리는 촉수 다발을 마주한다. 바닥이고 벽이고 케이블 틈에서 수없는 가지가 뻗어 나왔다.
이게 꼬여서 철수한 건가? 직원들을 전부 잡아먹고? 그러나 닿는 방식이 묘했다. 사냥감을 무자비하게 조르는 건 아니었고. 먹기 좋게 찌르거나 뜯어내지도 않았다. 그저, 표면을 천천히 훑으며 느리게 움직였다. 드러난 피부를 찾는 것처럼.
그러다 손목 안쪽이며, 발목같은 잘록한 부분을 감아 틈을 찾아냈다. 옷 밑으로 촉수들이 스믈스믈 기어오른다. 겉에서 줄줄 분비되는 것이 옷을 적셨다.
타이트하게 잡힌 방탄조끼 밑까지 파고들자 가슴이 자극된다. 아 잠깐 씨발, 씨발, 씨발씨발 지금 그걸 건드리면 룰 위반이지. 축축한 것이 유두 주변으로 조여들자 눈치 없는 오버드라이브가 나섰다.
아, 으으응, 전신에 왜곡된 감각이 들어온다. 짧은 신음이 흘러 입으로 손을 막으려다 위에 고정된 두 팔만 허우적댔다.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생명체에게 오르가즘을 상납할 것 같냐, 캐스는 이를 단단히 악물고 최대 출력으로 몸을 움직인다. 팔다리를 흔들며 거세게 저항하자 몸을 감아댄 힘이 더 커졌다.
한참을 몸부림쳐도 소용이 없었다. 저항할수록 더 많은 다발이 힘을 줘서 몰려들 뿐이었다. 손가락의 금속 부위로 깊게 찔렀지만 움찔하는 기색도 없었다. 전류를 가했더니 오히려 더 기쁜 듯 흥분해서 조여들기에 곧바로 출력을 막았다. 포기한 채 늘어지자 아까보다 꽉 붙들린 상태로 몸이 거의 공중에 뜬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전신이 조이면서 입력된 통각이 한차례 필터를 거치고 뇌에 들어왔다. 모듈도 이 지랄을 뭐라고 처리해야 할 지 몰라서 그냥 대충 쾌감으로 분류하기로 한 것 같았다.
이의를 제기하고 싶었지만 눈이 학습된 자극으로 해롱해롱 풀린다. 아⋯, 솔직히 괜찮을지도, 그러다가, 와삭. 갑자기 몸을 달구던 쾌감이 베어 먹힌다. 정점에서 딱 끝부분만 도려내갔다.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범인, 아니 범생이 누군지 뻔히 보였다. 이거 완전 미친 새끼네.
감각을 삼킨 촉수가 일제히 신호가 강한 쪽으로 움직인다.
반응이 클수록 그 지점에 더 오래 머물렀다. 신호 전도율을 높이기라도 하려는 것처럼, 지나가는 자리마다 질척한 흔적을 남기며 메마른 피부를 적셔나갔다. 온갖 임플란트 접합부, 어깨며 쇄골 주변에 노출된 금속들, 여러 수술 자국을 타고 이어지다가. 마침내 촉수 한 개가 연결 포트 부근을 건드리는 게 느껴졌다.
“야야야, 잠깐, 그건 아니지.”
고개를 마구 털고 귀 뒷면을 부단히 어깨로 눌러댔지만, 촉수는 굴하지 않고 들어온다. 끝부분이 갈라지며 작은 것이 쑥 찔렀다. 동시에 하, 하는 신음이 터진다. 혐오감이 먼저였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전류 입력도 아니고, 뭘 해킹하려는 것도 아니고. 소화액을 뱉어낸 것처럼 정신이 노곤해졌다. 꼭 두개골 밑으로 그게 들어와 뇌를 핥는 것처럼.
날 당장 죽일 생각은 없고, 어떤 이유에선지 신경이 밀집된 부분을 노리는 것 같은데. 원하는 게 뭘까. 복부를 감은 건 자꾸만 젖꼭지 좌우를 알짱거리고. 목을 감은 건 볼과 입술 아래를 건드렸다.
제발 이것이 보급소 직원들을 충분히 탐구해서 건드리면 뒈지는 연약한 점막이 어디인지 학습했기를 간절하게 기도한다. 멋모르는 생명체가 쑤시면 안 되는 구멍까지 쑤실까 봐 눈을 질끈 감았다.
혹시 얘가 어떤 생체 입력을 원하는, 혹은 그걸 먹는 거라면, 생각이 거기까지 연결되다 끊긴다. 갑자기 바지 밑단으로 더 굵은 것이 파고드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굵은 건 바지 솔기를 따라 쭉 올라오다가 허벅지를 한 번 감고, 예민한 곳을 노렸다.
빠르게 다리를 닫으려 했으나 이미 감겨버린 상태라 불가능했다. 허벅지를 오므리려 힘을 주자 촉수는 오히려 더 들어오기 편하게 한쪽 허벅지를 들어주기까지 한다. 훤하게 벌어진 가랑이 밑으로 굵은 촉수가 밀착해 왔다. 흠뻑 젖은 속옷이 친절하게도 촉감을 그대로 올려보내 준다.
읏, 속옷 밑으로 진동하듯 비비자 허리가 오그라든다. 결박된 손에 힘을 줬지만 끈적한 것들은 몇 번 늘어나다가 말뿐이었다. 기어이 완강한 촉수가 천을 비집고 들어와 주름을 건드리는 게 느껴지자 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악, 미친, 이게 무슨 전개야.”
귓구멍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생명체한테 떽떽거리며 고함을 쳤다. 점막에 축축한 것이 직접 닿자 순간 온몸에 흐르던 전류가 한 방향으로 당겨지는 것 같았다. 확실했다. 저 새끼는 어떤 생체 신호를 원한다. 그것도 강렬한 쾌락 신호를.
굵은 촉수는 질 입구를 찾아 침입한다. 쭉 미끄러져 들어오더니 피스톤질까지 했다. 그냥 무지성으로 쑤시는 것도 아니고. 내부를 탁탁 찔러가면서. 왜 그렇게 각도와 방법을 정확하게 아는 건데⋯, 장르가 급격하게 전환되자 황당해서 웃음이 나왔지만 벌어진 입에서는 웃음 대신 신음만 샜다.
캐스는 허벅지를 들고 한참을 박히며 헐떡인다. 다리에 그것의 분비물인지 제 것인지 모를 액체가 줄줄 흘렀다. 허리가 제멋대로 떨렸다. 덜렁 매달린 팔이 떨어질 것 같아 차라리 무언가에 기대고 싶었다. 결박된 손을 잡아당기며 조금이라도 발끝이 바닥이 닿도록 아래로 허우적댄다.
그러자 허벅지를 잡은 촉수들이 압력을 조정했다. 덕분에 바닥으로 한 단계 내려온다. 캐스는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바닥을 짚었다. 무릎이 풀려서 주춤대다 겨우 선다.
이 빌어먹을 새끼들이 학습을 하나. 몸이 반응하는 방식을 파악하고 조금씩 따르는 것 같았다. 그러면 내가 뭘 충분히 내어주면 풀려나는 걸까, 하는 생각을 할 즈음 골반이 절정을 준비하며 요동쳤다. 가라 걍, 그는 오르가즘이 상황의 심각성을 희석해 주길 바라면서 눈을 살풋 감았다.
하지만 그건 또다시 절정을 끊어서 먹는다.
씹⋯, 몸은 다 내어줬는데 상응하는 포상이 주어지지 않자 분노가 같이 튀어나왔다. 아아악! 짜증나 진짜! 눈앞에서 낚아채 간 달콤함에 전신을 격렬하게 비틀자 촉수는 그를 마저 공중으로 끌어올렸다.
내부 압력으로 지퍼가 일찌감치 열렸기 때문에, 그러던 과정에서 바지가 발목까지 흘러내렸다. 양 무릎을 가슴 높이까지 쳐들고. 몸이 반으로 접혀 벌어진다. 어깨끈이 풀어지며 총도 바닥으로 떨어져 굴렀다.
쑤시기 좋게 둔덕이 노출되자 촉수가 더 가세했다. 작은 것이 하나 더 비집고 들어오고, 다른 것은 접합부 위로 기어 올라가 음핵을 건드렸다.
하. 전신이 도로 결박되자 그는 차라리 온몸의 힘을 풀어버린다. 축 늘어진 채 처분을 받아들였다. 박힐 때마다 몸이 그네를 타듯 흔들린다. 그제야 모서리에 달린 카메라와 눈이 마주친다. 정전인데도 쌩쌩하게 돌아가는 렌즈가 여길 쳐다봤다.
“이 개새끼야, 너 다 보고 있지.”
야! 소리를 한 번 더 지른다. 뒤늦게 퍼즐이 맞춰진다. 함선에서 보급소 기록을 열람한 건 마리뿐이었다. 보고를 그대로 믿고 들어온 바보 등신 천치들은 둘이고. 현상금도 함정이겠구나. 어쩌면 통신 장애까지 구라였을지도. 잠그기 좋은 공간에 미끼를 던져 날 처박아놓고. 지금 이러는 꼬라지도 실시간으로 감상하고 있을까. 참도 일찍 깨닫는다, 이 멍청한 것아.
거기까지 생각하자 머리에 열이 또 오른다.
저항을 포기한 몸엔 지난한 삽입만 이어졌다. 이젠 오버드라이브가 도와주지 않아도 온몸이 뜨거웠다. 한참 흘려놓은 애액과 점액이 뒤섞여 찔꺽대는 소리가 요란했다. 몸이 달아서 헐떡거리면서도, 결정적인 부분은 빼앗길 생각하니 신경질이 나 자꾸 어금니를 깨물었다.
뿌드득거리자 중간 크기의 촉수가 입 근처를 만진다. 살그머니 안에 들어와 혀와 이빨까지 건드렸다. 으붑, 아까 엄한 곳에 들어갔다 나온 새낀지 익숙하고 시큼한 맛이 났다. 점액에서도 끈끈하고 이상한 단맛이 났다. 그게 마치 과일의 과즙이라도 되는 양. 마냥 흘러넘치기만 하는 윤활액이 아니라 영양분을 품고 있다는 것처럼.
꿀럭꿀럭 안으로 들어오는 점액이 기분 나빠 콱 물어버린다. 다행히 촉수는 움찔거리며 물러났다. 목 안쪽까지 들어와 토하기 직전이었던 캣은 침과 점액을 게워낸다.
칭칭 묶인 손목에서도 미지근한 점액이 계속 흘러내렸다. 몇 번을 가다가 말았는지 세는 것을 포기했다. 섹스로봇한테 걸레 소리를 들을 정도로 몸을 굴렸지만 이렇게 압축적으로 밀도 높은 자극을 받아본 건 처음이었다.
차라리 주인님, 제발 가게 해주세요, 같은 클리셰 대사라도 싹싹 빌고 싶었는데. 받아먹을 신호를 위해 무심하게 왕복운동 하는 게 다인 생명체라 그 어떤 교감도 불가능한 것 같았다. 협박도 설득도 통하지 않는 짐승에게선 어떻게 벗어나야 하지. 심지어 감각이 무뎌지려 할 때마다 체위를 바꾸고 자극 지점을 바꿔가며 몸을 새롭고 생생하게 헤집었다.
고무줄을 최대한으로 늘린 것처럼 팽팽한 상태가 지속된다. 그 누구도 끊어주거나 놓아주지 않았다. 애매하게 흐물거리는 뇌로 방 안을 나릿나릿 훑는다. 지금은 촉수가 그를 거의 엎어놓은 자세로 뒤를 들쑤시는 중이었다.
시야가 아른대서 벽면에 꽉 찬 케이블 다발도 촉수처럼 흐물흐물 움직이는 것 같았다. 케이블, 옆에 터미널, 앞에 탄약⋯, 아 맞다, 나 네바랑 같이 왔는데. 캐스는 늦어도 한참 늦은 시점에 자기 동료를 떠올린다. 네바는 뭐 하고 있을까.
으윽, 또 다음 절정 납치가 그를 기다렸다. 입력을 파먹힌 몸만 아쉬움으로 파르르 떨었다.
포식하는 동안 멈췄던 촉수가 움직였다. 몸 주변을 기어다니는 게 어쩐지 재수 없을 만큼 반질반질하다. 박힐 때마다 앙앙대며 이상한 신음도 툭툭 튀었다. 굳이 막을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유닛이 다 보고 있다면. 이 생명체는 내 반응에 관심도 없을 거라면. 시원하게 내지르기라도 하는 편이 나았다.
헉, 큼직한 신음 사이로 매달린 이것저것이 삐그덕대는 동안, 문가에 기척이 들렸다.
“조심해.”
경고를 남기고 싶었으나, 목에서는 이상한 소리만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