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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피치 블랙

Volume 2

•DJG•7 min read



7. 피치 블랙 Pitch Black, 2000



“우리끼리 후딱 확인하고 올게.”

도킹 연결 통로 앞에서 네바가 무장 상태를 점검했다.

“통신 서버를 사용하는 건 캐스인데, 굳이 같이 가실 필요가 있습니까?”

목소리가 방탄조끼 어깨에 위치한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심심하잖아. 스캐빈저가 내 주력 밥벌이라는 거 잊었어?”

“당분간 경제적 문제는 없을 것으로 압니다만.”

마리가 은근하게 툴툴대자 네바는 힐끔 눈치를 본다. 뭐 좋은 건수 물었나 봐? 대꾸 없이 지나가기에 괜히 가슴 플레이트만 통통 두드렸다.

“항상 체감보다 가슴이 작단 말이지.”

그의 전투용 무장 조끼를 빌려 입고 장난스럽게 시시덕댄다. 구석구석 기스가 많아 사용감은 만땅이었지만 관리 상태는 좋아 윤이 났다. 흥. 네바는 코웃음을 치며 시선을 정면으로 고정한다.

“흉곽 말이야, 흉곽. 사이즈가 좀 껴서.”

“근육 확대술 해놓고 남 탓하기는.”

“아량만큼 풍만한 내 품을 담기엔 부족하다고.”

보급소의 도킹 클램프가 맞물리는 소리는 생각보다 작았다. 평소 도킹에서 나던 쇳소리와 달리 뭔가 공기가 빠지는 느낌이라 두 번 확인한다. 연결은 제대로 됐다.

“대기 구성 정상입니다.”

마리의 컨펌이 떨어지자 둘은 보급소 내에 진입한다. 네바는 이미 진입구에서부터 앞서 걸었다. 여전히 각이 잡힌 FM 자세에 혀를 내두른다. 뒤에서 느리게 따라가며 통로 벽면을 훑었다. 선체에 긁힌 자국을 통로 내부에서 확인하니 더 이상했다. 외부 물질로 긁힌 게 아니라, 무언가가 밀어붙이며 비집고 들어온 자국이었다.

“나간 게 아니라 안으로 들어온 자국 같은데?”

“동의.”

네바는 짧게 대답하고 옆으로 끼웠던 총을 제대로 받쳐 든다. 미미한 긴장이 공기에 감돌았다. “돌아갈까? 이 섹터에 뭐 조심해야 할 거 있나?”

“기왕 들어왔으니까 근처만 보고 가자.”

네바를 끌고 안으로 더 들어간다. 위험 요소를 발견하면 근방 함선에게 경고를 발송하는 게 룰이었다. 경로를 짚어 오는 동안 받은 경고는 전혀 없었다. 2년이나 비었다고 하니까. 아무 소득 없이 저 유닛이 탄 함선으로 돌아가고 싶진 않았다.

“마리.” 네바는 유닛을 부른다. “아까 생체 신호 잡히는 거 없다고 그랬지?”

“현재 보급소 내에 살아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그가 곧장 응답했다.

에어락을 지나고 본격적인 보급소 내부에 들어선다. 작은 보급소에 맞게 효율적인 철제 구조로 설계되어 천장이 낮은 데다 통로 하나하나가 좁았다. 불이 환하게 켜진 통로 안을 움직인다. 두 사람이 일렬로 걸어갈 때마다 타박타박 발소리가 울렸다.

“마리, 지도 확인해줄래?”

통로가 두 갈래로 나뉘었다. 캐스는 귀 뒤의 포트 주변을 긁적이며 앞을 본다.

“메인 구역은 우측 통로입니다.”

“통신 중계 서버는?”

“좌측입니다.”

다행이군. 아직 네바가 마리와 얼마나 한 편인지는 몰랐다. 오래된 친구를 배신할 위인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았지만, 긴 세월 속에선 얼마든지 사람이 변하기 마련이니까. 당사자 근처에서 뒷조사하는 건 상도덕이 아니기도 하고.

“둘이 나뉘어서 가는 게 더 빠를 것 같은데.”

먼저 제안하자 네바가 돌아봤다. 별로 내키지 않는 눈이었다.

“위험하지 않겠어? 불안한데.”

“아까 걔가 기록 훑었다며? 아무도 없다잖아. 야, 카메라로 실시간 모니터링 가능해?”

“현재 위치 실시간으로 잡아서 확인 중입니다.” 스피커로 떫은 대답이 나왔다.

“이상한 거 보이면 바로 알려.”

“알겠습니다.”

네바는 미심쩍은 콧소리를 내다가 우측으로 향했다.

왼쪽으로 얼마간 걷자 마리가 불렀다.

“왜?”

“통신 중계 서버는 안쪽입니다. 중간에 신호 감쇠 구역이 있어서 통신이 끊길 수도 있어요. 끊기면 위험하니 돌아오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그래.”

통신 하나 끊겼다고 돌아오긴. 지금 애들 심부름 보내냐. 캐스는 피식 입꼬리를 올린다.

메인 구역 방향이 아니어서 그런지 통로가 더 좁아졌다. 좁다기보단 뭔가가 들어찬 느낌인 것 같기도 하고. 기압이 다른 것처럼 들어갈수록 귀가 먹먹했다. 침을 삼키고 주기적으로 입을 벌려 압력을 맞추려다 관둔다. 오래된 보급소면 환기 시스템 오류가 잦았다.

마지막으로 입을 벌리다가 발밑을 본다. 바닥에 뭔가 보였다.

좁고 길게 이어지는 자국. 물건을 끈 자국이라기엔 불규칙했고, 뭘 흘린 자국이라기엔 끊어지지 않고 쭉 이어졌다. 비상 조명이 다라 색은 잘 보이지 않았다. 점성이 있는 것으로 추정됐지만 죄다 마른 상태. 직감이 허공에 칼을 쑤신다.

“마리.”

“네.”

“카메라로 통로 바닥 확인해 볼래? 자국이 있거든.”

잠시 딜레이가 걸린다. “카메라 해상도가 낮아서 정확히 판단하기 어렵습니다. 유류 계열로 보입니다. 보급소에 으레 나는 자국이요.”

“흠.”

캐스는 바닥을 재확인한다. 신발 밑창으로 긋자 이미 마른 자국이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유류 자국이면 보통 웅덩이가 있지 않나? 흘린 지점을 중심으로 번져나가는 패턴일텐데. 자국은 출발점 없이 통로 전체에 걸쳐 고르게 이어졌다. 무언가가 이동하면서 남긴 자국 같다고. 찝찝함에 눈을 가늘게 뜨다 서버 룸 표지판과 마주친다.

통로 끝에서 좌회전. 다 왔으니까 일단 빨리 보고 나갈까. 캐스는 걸음 속도를 약간 올린다.

“캐스, 이건 따로 말하는 건데,” 마리가 또 말을 걸었다. “서버룸에 들어가면 안쪽에 배선실이 있습니다. 독립된 터미널에 철수할 때 못 챙긴 군사 현상금이 들었네요.”

“그걸 왜 나한테만 얘기해?”

“네바라면 안 챙길 것 같아서요. 탈영병 현상금이면 동료를 판 돈이잖습니까.”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군대가 싫다고 박차고 나간 주제에 동료들은 또 끔찍하게 생각했으니까.

“난 돈 앞에선 동료도 파는 새끼라 괜찮고? 주워다 달란 거야?”

“나누자는 겁니다. 30%만 주세요.”

“20%.”

“그러세요.”

“허. 10%라고 할 걸.”

코너를 돌자 접이식 선반이 보였다. 선반 아래 바닥엔 음식 트레이가 뒤집혔고. 내용물은 이미 굳어서 바닥에 달라붙었다. 옆에 놓인 개인 단말기를 툭툭 두드리자 별안간 화면이 켜져서 움찔 놀란다. 버려진 지 오래된 거 아닌가? 그놈의 배터리 엄청 효율 좋네. 음식물 흔적도 그리 오래되진 않은 것 같았지만 건조 음식이라 파악이 어려웠다.

“마리.”

그를 불렀지만 이번에는 대답이 바로 오지 않았다.

“마리?”

지직, 통신에 잡음이 섞였다. 캐스는 스피커를 툭툭 두드린다. 마리? 한 번 더 부르자 뭉개진 목소리가 나왔다.

“―구역에 진입하신― 잘 안 들―, 돌아오―,”

끊겼네요, 섹스로봇 선생님. 타이밍도 좋고요. 그가 경고한 대로였다. 통로에 서서 잠시 고민한다. 외부 서버에서 뒷조사하는 건 몇 분이면 충분했다. 출금 못한 현상금이면 액수도 상당할 거고.

서버 룸 쪽 방향으로 마저 걷는다.

바닥의 자취가 같은 방향으로 이어졌다.

다행히 서버룸 도어는 열려 있었다. 누군가 잠금을 풀어놓은 덕분에 수동 개방 상태였다. 캐스는 문을 밀고 들어간다.

서버 랙은 두 줄. 안에 들어가자 냉각팬 소리가 들렸다. 통신기가 돌아가면서 생긴 열과, 묘한 위화감에 코를 두 번 킁킁댔다. 항온항습이 중요한 서버실치고 습도가 너무 높았다.

일단 총을 등으로 돌려 메고 가장 가까운 패널에 손을 댄다. 해킹 모듈을 가동해 로컬 네트워크에 진입했다. 아무도 건드리지 못할 외부 서버로 전에 눈여겨봤던 배터리팩 로고를 찾는다. 오케아니스였지. 당장은 잡히는 게 없어 이런 조사 하난 확실하게 털어주는 흥신소에 메모리 정보를 쏘아 보냈다. 눈깔에 달린 카메라는 이럴 때 참 유용했다.

[이 로고 회사 관련해서 전부 조사해 줘. 작은 단서여도 좋아.]

외곽에 있는 중계기라 전송 속도가 느렸다. 기다리면서 내부 관리 시스템을 뒤적거린다. 사람이 싹 철수했다는데, 죄다 절전 모드가 아니라 정상 가동이었다. 이렇게 풀로 켜놓으면 에너지 낭비가 심할 텐데. 이것도 저것도 다 정상. 산소 발생도, 공기 정화도, 빛도, 온도 유지도…, 어.

캐스의 손이 우뚝 멈춘다.

최근 함선 도킹 기록에 코모란트의 함선 번호가 없다. 아예 아무것도 없었다. 무인 보급소는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 신원이 확인된 함선만 연결이 가능했고, 모든 도킹 기록은 전산에 남는다. 털어먹는 김에 슬그머니 지워줄랬더니 최근 보급소에 연결된 함선 목록이 인위적으로 떠낸 것처럼 비었다. 깨끗하게 흔적을 지우는 방식에서 진한 기시감이 든다.

마리가 알아서 해킹으로 삭제한 걸까. 연방급 보급소에서도 이 정도 능력이면 확실히 유용하겠는데. 캐스는 유닛의 깔끔한 작업에 혀를 내두른다.

순간 발목에 무언가가 닿았다.

고개를 내리기 전 이미 반사적으로 발을 차올렸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몇 번 헛발질하면서 바닥을 봤지만 텅 빈 패널뿐이었다. 착각인가? 임플란트를 고친 이후로 쓸데없는 환상통은 싹 사라졌었는데. 또 재발했나. 캐스는 귀를 긁으며 안쪽 문을 살핀다. 마리가 언급한 배선실인 것 같았다.

답변이 바로 오진 않겠지. 발송을 걸었으니 흥신소에 답변 암호화를 신신당부하고 돌아선다. 함선에 있을 때 곧장 받으면 유닛이 읽을 공산이 컸다. 답장은 다음 중계소에서 확인하자.

그러면 기다리는 동안 마지막으로 현상금을 털어 보실까.

끼익, 오래된 문을 연다. 전형적인 배선실이었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케이블 다발이 빽빽하게 찼다. 벽면 한쪽에 터미널이 달렸고. 잠금 장치를 단 김에 겸사겸사 무기 창고로도 쓴 모양이었다. 보관함에 별별 탄약이 가득한데 주울만한 무기는 싹 털려서 하나도 없었다. 비상용 소화기만 굴러다녀 발로 밀면서 내부로 들어섰다.

오래된 금속과 절연 피복 냄새. 캐스는 터미널로 걸어가며 사방을 더 훑었다. 전기 신호가 바삐 오가는 곳이라 피부가 간질거렸다. 케이블이 고정되지 않고 늘어진 게 많아 발밑으로 물컹한 전선 뭉치가 계속 밟힌다.

물리 회선에 직접 꽂아야 작동하는 에스크로 계정을 뒤진다. 철수한 것으로 추정되는 직원 명의가 뜨고. 인증을 마치자마자 잔액을 확인했다.

쯧.

턱없이 적은 돈이었다. 현상금은커녕 노동자 한 명의 비자금도 못 될 규모에 한숨을 쉰다. 액수도 확인 안 하고 보낸 거야? 소액이라도 알뜰하게 이체하려는 순간, 딸깍, 하고 터미널이 꺼졌다. 동시에 안쪽 조명도 꺼진다. 황급히 고개를 돌리자 문이 닫히고 잠금이 걸리는 소리가 났다. 전력이 끊기면서 안전 잠금으로 전환된다.

“마리. 들려?”

위쪽에 달린 유리 너머로 빛이 들어오는 걸 보니 바깥쪽은 정전이 아니었다. 먹통이던 통신 채널을 계속 누른다. 짜증 나게 됐네. 문가의 비상 레버를 힘껏 당겼지만 꿈쩍도 안 했다. 도로 몸을 돌려 방 안을 천천히 훑는다. 좁았다. 두 팔을 벌리면 양쪽 벽에 닿을 것 같은 폭이고, 헛,

발목에 또 뭔가가 닿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