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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우주 끝의 레스토랑

Volume 2

•DJG•8 min read



13. 우주 끝의 레스토랑 The restaurant at the end of universe, 1980



“여기서요?”

“어.”

마리는 주변 핑계를 대며 숨었다. 라운지에서 쉬는 이들은 모두 느긋하게 각자의 시간을 보낼 뿐 이쪽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긴 하루의 마침표를 장식하는 노곤한 분위기만 안개처럼 둥둥 떠다녔다.

“빨리.”

유닛은 꿋꿋하게 체중을 실으며 허벅지 위에서 버텼다. 미적지근하던 그의 몸이 뜨끈하게 달아오른다. 몇 번을 아웅다웅하다가 항복한다. 그는 일부러 표정이 바로 보이지 않게 팔로 그의 목을 감은 채 말을 이었다.

“제가 써서 출간한 소설입니다. 연구소를 나왔을 때, 창작을 해보고 싶어서 시장을 분석해 썼고. 그게 생각보다 잘 팔리는 바람에⋯,”

“내 이름으로?”

“인공 존재는 창작이 제한되어 있기도 하지만, 법적 계약을 실행할 주체가 될 수 없어서 명의를 빌렸습니다.”

마리는 팔을 뻗어 네바의 주머니에 손을 꽂는다. 그의 단말기를 들어 별도로 개설된 암호화폐 계좌를 띄워 보여주었다. 숫자로 면피해보시겠다. 모른척 무시하고 지나갈 수 없는 액수를 내밀어서.

“… 샴페인 드시지요.”

판매량을 축하하기라도 하듯 샴페인 두 잔을 들어 하나를 네바에게 내민다. 사양하지 않고 주는 잔을 받아 입에 머금었다. 맛은 좋았다. 발포주의 자잘하고 고운 기포가 목구멍을 간질인다. 공짜로 선물한 샴페인이 이 정도면 내일 식사가 어떨지도 대강 짐작이 됐다. 돈을 줘도 아무나 예약할 수 없다며 명성이 자자했는데.

“책을 팔아서 이 정도의 돈을 벌었다고?”

차라리 그의 연산을 다른 투자에 썼으면 모를까. 소설 같은 걸 누가 그렇게 많이 읽는다고. 네바는 여가 시간에 적극적으로 문학을 향유하는 타입은 아니었다.

“연방 외곽 지역은 데이터 패킷 가격이 상당합니다. 통신이 불안정한 곳도 많고요. 용량이 최대한 적게 드는 텍스트 기반 저작물이 오히려 우세하게 소비되는 편입니다. 우연히 최근 유행하기 시작한 ‘유닛물’ 붐을 탔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냥 소설은 아닌 것 같은데.”

“성인연령가 소설입니다.”

이실직고를 마친 유닛의 체온이 더 달아올랐다. 아하. 그렇다면 조금 납득이 될지도. 돈을 이 정도로 모았다면 평범한 수위는 아닐 거였다. 네바에게서 질 낮은 웃음이 새어 나온다.

“무슨 내용인지 대강 설명해 봐. 내일 저녁 대접받으면 아는 척이라도 해야 할 테니까.”

“베가⋯, 라는 용병 주인공이 등장합니다. 검고 굵은 머리가 섹시한 강화인간인데, 거친 군인 시절로 몸 곳곳에 남은 흉터가 매력 포인트고요⋯, 또 오래전 전투 부상으로 잃은 다리를 의족으로 대체했는데⋯,”

말할수록 목소리가 기어들어 간다. 마리는 문장을 끝마치고 괜히 샴페인으로 목을 축였다. 시간을 벌어보려는 수작이었다.

“어디서 많이 본 사람이군.”

“통계적으로 강화 인간 중 흑발은 비율이 높은 편입니다.”

우연이라는 거야? 허벅지를 장난스레 꽉 쥐자 마리는 남은 샴페인을 단숨에 들이키고 새 잔을 따랐다.

“에메르는? 너야? 금발 유닛이라던?”

“늦었는데 올라가서 안 주무십니까.”

마리는 그의 정수리에 볼을 얹는다. 풍성한 머리숱을 말랑한 얼굴로 꾹꾹 눌렀다.

“대답이 없는 걸 보니 맞네.”

안 보이는 곳에서 그런 걸 썼단 말이지. 읽어봐야 하나. 내 이름으로 나간 소설인데. 네바는 쥐었던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긁으며 희롱한다.

“궁금한 부분은 설명드리겠습니다. 제발 찾아보지 말고⋯,”

몸을 계속 들썩거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려는 유닛의 허리를 두 팔로 꽉 안았다. 사피야 앞에서 연기한 모습을 보면 그가 작품에서 어떻게 묘사되었을지는 어렵지 않게 상상이 됐다.

“내일 관광하거나 돌아다니려면 지금쯤 휴식하는 게 좋습니다. 이곳은 하루가 38시간이어서 그냥 저녁으로 보이지만, 이미 깨어계신 지 20시간이 넘게 지났어요.”

마리는 그 품을 빠져나오려고 몇 번 힘겨루기하다 포기하고 앉았다.

“슬슬 일어나려고 했어. 지금 뭐 때문인지 허벅지가 너무 뜨거워서 땀이 찼거든.”

네바는 폭발하기 일보 직전인 유닛의 바지를 문지르며 킬킬 웃었다.


다음 날 낮 동안은 마리와 함께 볼룹타스에 처음 온 관광객처럼 코스를 돌려줬다. 어스름한 새벽에 나와 도시 근교에 위치한 지열 분화구를 보기도 하고, 벽이 신소재 유리로 만들어진 잠수함을 타고 해저 바닥을 거닐기도 하고. 캐스는 유흥에 바쁜지 메시지 몇 통을 남기고 그날도 합류하지 않았다.

네바는 이제 드문드문 그들을 아는 체하는 사람들에게 어색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는 됐다. 서비스형 유닛 비율이 유독 높은 이 지역 특성상 독자도 많은 모양이었다. 유닛 페티쉬로도 크게 성공할 수 있다는 걸 보여줘서 감사해요, 같은 칭찬에는 웃음이 멈췄지만.

마이나드에 들어서자 다른 공간에 진입한 것 같았다. 그들 뒤를 줄줄 따라오던 열기와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뚝 잘라 떨어진 것처럼. 문이 닫히자마자 외부 소음이 차단되며 단독 공간을 만들었다. 발바닥에서부터 은은한 온기가 돌고 위로 냉각된 공기가 순환했다. 아래 풍경은 보이지 않게 설계되어 황록빛 젤리 바다 한가운데에 뜬 평화로운 인공섬 같았다.

긴 오후 빛의 각도를 최대한 이용해 인공조명을 더하지 않아도 공간이 아늑했다. 어디의 무슨 양식이라고 딱 잘라 말할 순 없었지만 중후하고 얌전한 인테리어도 호감이었다. 무엇보다, 직원 중 유닛이 단 한 명도 없었다. 과한 의전과 거리감이 느껴질 정도의 미소가 사라진, 잘 훈련된 공간이 새삼스럽게 편안하다.

웨이터의 안내에 따라 안쪽으로 들어간다. 바다 위로 떠오른 별이 가장 잘 보이는 쪽이었다. 공기 중 습도가 높아 빛 번짐이 심했지만 그게 오히려 운치를 만들었다. 유닛까지 2인석을 준비한 테이블 위 카드엔 간단한 인사말이 적혔다. 편안한 저녁이 되길 바란다는 짧은 문장. 유려하게 손으로 적힌 사피야의 인사와 서명을 흘긋 보고 엎어놓는다.

자리에 앉자 직원이 부드럽게 의자를 넣어줬다. 드레스코드는 비즈니스 캐주얼이었지만 객실로 어련히 두 사람 몫의 의상이 배달되어 그대로 입기만 하면 됐다. 눈대중으로 보냈을 텐데도 꼭 맞는 사이즈인 데다 전혀 불편하지 않아 네바는 신기한 듯 종아리 쪽 바짓단을 한 번 당겼다가 놓는다.

깔밋한 재킷류의 포멀한 옷 자체를 처음 입어보는 마리는 네바가 헤어젤로 머리를 넘길 때부터 싱글벙글하며 야단이었다.

코스는 가벼운 냉채로 시작했다. 첫날 먹었던 것과 같은 종류의 어패류를 속살만 얇게 저며서 낸 음식이었다. 가열하지 않아 분홍색에 가까운 살을 한 점 맛본다.

“이래서 가열했을 때 즙이 그렇게 많이 나온 거군요.”

마리는 흥미롭게 쥬시한 조갯살을 깨물어 삼켰다. 리조트의 위치를 십분 반영해 코스는 전체적으로 해산물이 테마였지만, 이 지역 바다산이 아닌 재료도 많았다. 아예 행성 외부에서 들여온 흰살생선을 구워 수프 가니쉬로 사용하는 걸 보고 혀를 내두른다.

테이스팅 코스가 한참 이어지다 메인이 나올 무렵 과실주 선물이 한 번 더 들어왔다. 사피야가 아니라 아예 저쪽의 모르는 테이블이었다. 네바는 고개를 돌려 그들을 본다. 잔을 내밀며 인사하기에 끄덕 원거리로 인사를 건넨다.

선물 받은 오렌지 와인 옆에, 통째로 낮은 온도에서 익혀 형태가 거의 그대로인 두족류가 서빙됐다. 심해가 발달하지 않은 바다라 보존된 외형 자체가 볼거리인 모양이었다.

“행성의 유일한 해구에서 잡았다네요. 수압 차로 터지지 않게 포획하는 게 기술이래요.”

“알레르기 물어볼 때 촉수 트라우마가 있다고 할 걸 그랬네.”

네바는 일부러 포크로 다리를 톡톡 쳤다. 몸체가 탱탱하게 떨린다. 설명으로 분위기를 돌리려던 마리는 딴청을 피우며 메인을 썰었다.

두께에 비해 속까지 고르게 잘 익었는데, 근육이 퇴화해서 씹는 식감이 특이했다. 펑키한 와인과 어우러지며 쫄깃하면서도 남는 것 없이 잇새로 금방 찢어져 사라진다. 익히 들었던 식당의 디너 가격을 기억하며 사라져가는 빨판을 최대한 오래 씹었다.

영원히 이어질 것 같던 식사가 끝나고 거무스름한 수플레가 나왔다. 하나하나 맛있고 독특하긴 했지만, 시간이 워낙 오래 걸리다 보니 빨리 정리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분화구 근처 잿더미에서 자란 덩이줄기를 갈아 사용했다는 웨이터의 소개는 이제 귓등으로만 듣는다.

“잘 즐기고 계신가요?”

사피야가 지나가다 인사를 남긴다. 당연히 그가 거절하지 않으리라 과신하며 옆 의자를 당겨 앉았다.

“식기 전에 드세요. 저희 시그니처거든요.”

머뭇거리는 그들에게 각근히 손짓하며 권유한다. 과육이 조밀해서 텁텁할 수 있는 토착 식물에 최고 그레이드의 합성 카카오를 섞어 구웠답니다. 자부심 강한 손이 허공에 신호를 주자 어디선가 다른 직원이 나타나 역시 비슷하게 짙은 식후주를 따라줬다. 그가 손가락처럼 가느다랗고 길쭉한 잔을 밀어준다.

“같이 먹으면 맛이 좋아요. 마시기 전에 향을 한 번 맡아보고, 괜찮다 싶으면 드세요. 정제를 덜 할수록 향이 강해지는데, 익숙하지 않으면 곰팡이 맛이 난다고 호불호가 크더라고요.”

“계속 신경 써주시네요.”

“천만에요. 어제 짧게 인사만 드려서 제대로 말씀은 못 드렸지만, 1권이 나오자마자 읽었습니다. 팬이라는 말로도 부족할걸요. 그 뒤로 출간 속도에 두 번 놀랐죠. 바로 얼마전에도 3권을 내셨잖아요.”

얼마전? 네바는 유닛에게 시선을 날린다. 마리는 묵묵하게 수플레만 입에 넣었다. 일부러 완벽하게 익히지 않아 촉촉한 푸딩같은 내부가 드러났다.

대신 그가 건넨 발효주를 마신다. 꽉 찬 위장도 억지로 자리를 쥐어짜 줄 만큼 고소한 수플레 향에 어울리는, 꼬릿한 뒷맛이 오래 남는다.

“과찬이십니다.”

“첫 권부터 확실히 다르다고 느꼈어요. 뒤에서 이걸 집필한 사람이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너무 궁금할 정도로. 소설에서 이렇게 심도깊은 밀리터리 묘사가 나올 줄은 몰랐는데, 직접 만나 뵈니 역시 경험에서 우러나온 거구나 싶네요.”

군인 출신이신 거죠? 엔지니어링도 좀 하시고. 그가 웃으면서 의자 등받이에 반듯하게 기댔다.

“소설적 허구죠.”

일부러 마리를 쳐다보며 대화를 잇는다. 어제 마리가 침구를 정리하는 동안 검색해 본 소설은 미리보기 분량만으로도 엄청나게 하드코어한 편이었다. 엄밀히 말해서 군인 출신 주인공이 모험을 떠난다는 핑계로 온갖 곳에서 온갖 방식으로 유린당하는 내용이 다였다. 유닛이랑 섹스하거나 외계 생명체와 섹스하거나 그도 부족하면 유닛과 외계 생명체랑 동시에 섹스하거나.

튼튼한 용병 주인공이 창의적인 방식으로 범해지면 유닛이 그걸 흥미롭게 관찰하다 멋진 기술로 돌파해 구해내는. 유닛 성애라는 장르에만 국한할 수 없는 이상성욕 모음집이던데.

기술적인 부분에선 꽤 창의적인 구석이 있었지만, 노골적인 모델에 웃음이 조금씩 가셨다. 언짢은 시선을 느낀 마리는 세공이 화려한 디저트 숟가락으로 수플레가 담겼던 도자기의 옆면만 벅벅 긁는다.

“하하, 그래도 상당히 현실이 반영된 작품 아닌가요? 이쪽의 뮤즈도 그렇고.”

그런 현실이 존재하면 안되는 것 같은데. 뮤즈의 방향도 다르고. 네바도 죄 없는 수플레를 힘주어 꼭꼭 씹었다. 빡센 휘핑 덕택에 입에 들어가자마자 공기층이 풀어져 사르륵 녹아내리는 데도. 어쩐지 보급소에서 황홀한 듯 외계 생명체를 바라보던 유닛의 표정이 아른아른 떠오른다.

적당히 정리하려고 할 때 사피야가 새로운 제안을 꺼냈다.

“위층의 티아소스에서 연회가 계속 이어질 겁니다. 프라이빗한 파티라 검증된 인원만 참석하고. 도시의 낮과는 상당히 다른 분위기일테니 재미있으실 거예요.” 사피야는 잠시 말을 고르는 것처럼 멈췄다.

“저희 컨소시엄에 투자하는 투자자들도 모였습니다. 소설을 보면 군용 무기에 상당히 조예가 깊으신 것 같았는데요. 묘사하신 기술들에 대해 더 말씀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기술 쪽 인맥을 쌓을 기회라. 그건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었다. 그 역시 무장을 늘릴 기회는 놓치지 않는 편이었으니.


티아소스 입장 전 짧은 절차가 있었다. 소지품 확인과 신원 등록. 직원이 네바의 신원을 처리하는 동안 옆에서 마리를 등록하는 직원의 손이 멈추는 게 보였다. 짧게. 화면을 확인하고 나서 사피야 쪽으로 눈짓을 보냈다. 그는 가볍게 끄덕이며 오케이 사인을 내린다. 뭘 확인한 건지. 묻기 전 직원이 사피야에게 작은 기기를 건넸다.

빈 몸으로 왔으니 네바는 맡길 무기가 없었고, 뒤따라온 마리가 문제였다.

“그건⋯,”

“보안 방침상 필요한 유닛 억제 장치예요.”

마리에게 내민 건 동그란 단추 같은 기기였다. 사피야는 유닛에게 직접 기기에 관해 설명한다.

그 또한 무기라는 걸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찜찜하게 손을 내저었지만 마리는 오히려 설명을 듣고 금방 수긍하며 목을 숙였다. 괜찮습니다, 드러난 척추에 단추가 달라붙자 징그럽다 싶을 정도의 포트가 돋아나 그의 목덜미를 뚫고 들어갔다. 마리는 가볍게 몸을 떨다가 고개를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