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즐거운 기온
Volume 2
11. 즐거운 기온 Fondly Fahrenheit, 1954
따스한 이불에 유연제 냄새. 정거장에서 마리가 골라 온 특이하고 상쾌한 냄새. 어딘가의 숲속 향을 구현했다던데. 네바는 눈을 뜨기 전 자신을 둘러싼 그것부터 인식한다. 몸이 멀끔했다. 축축하게 젖은 머리카락도 빳빳했고. 피부에 끈적하게 남은 점액도. 관절 구석구석까지 닦인 느낌이 났다. 온몸은, 과할 정도로 노곤한 회복 상태였다.
눈을 뜨고 한참을 그 상태로 천장을 봤다. 일반 운항 특유의 낮은 엔진 진동이 느껴진다. 초광속 항로는 아니고. 그냥 이동 중이다. 어디로―
“어떻게 나보다 더 늦게 깨냐.”
캐스는 수면 침상 근처에 비스듬하게 앉은 채 이쪽을 봤다. 생각보다 멀쩡한 얼굴이었다. 아니, 움직이는 방식이 미세하게 조심스러워서. 아직 하반신이 온전하지 않다는 게 티가 났다.
하아. 네바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잘 정돈된 신경계가 깨어나면서 감각을 순차적으로 연결한다. 피로조차 없었다. 마리가 살뜰하게도 처리해 둔 거겠지.
“어디 가는 거야?”
“볼룹타스.”
“갑자기?”
“야, 들어봐. 내가 보급소에서 전자지갑을 주웠거든. 금액 존나 빵빵한 걸로. 근데 크레딧 현금화하려면 근방에 거기뿐이야. 내 마음대로 막 목적지 바꾼 거 아니라고.”
캐스가 손사래 쳤다. 네바는 대답 없이 생각한다. 익숙한 얼굴이었다. 일부 사실만 말하고 불편한 부분은 죄다 건너뛰는 얼굴. 그는 어떤 이유에선지 보급소에서 신경을 유린당하고 죽을 뻔한 경험을 세세하게 언급하지 않고 지나가기로 마음먹은 듯했다.
볼룹타스는 휴양으로 유명한 행성이었다. 더 정확히는, 도박이나 유흥으로 유명했다. 행성 이름과 동일한 바닷가 도시에 즐비한 리조트 사이로. 눈에 띄지 않게 무법지대가 섞여든 곳. 외곽 자치구라 허용된 영역이 넓어 공해를 운항하는 크루즈같은 역할을 했다. 절대적인 하루 자체도 길었지만 밤에도 도시가 멈추는 법이 없어 캐스 같은 용병들이 유독 좋아하는 곳이었다.
“마리가 동의했을 리가 없는데.”
“내가 얼마 뿜빠이 해준다니까 알겠다던데?”
“구라치네.”
“거기 가면 걔랑 비슷한 애들 많다고 그랬어. 사실이잖아.”
캐스는 어깨를 으쓱한다. 볼룹타스는 인구수 대비 유닛 비율이 높은 지역이기도 했다. 노동형 유닛이 아니라, 그야말로 ‘서비스형’ 유닛들. 외곽에 위치해서 초기 정착민을 충분히 못 모은 개발사가 유닛을 대거 투입해 개발한 이후로, 그게 행성 분위기처럼 자리 잡아 버렸다.
마리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도 좋은 곳이었다. 달리 할 말이 없다. 난 배고파서 이만, 침묵이 이어지자 캐스는 제 단말기를 챙겨 일어난다.
잠깐. 멈춰.
너 손에 그거 뭐야.
그는 시선을 피하면서 몸을 재빠르게 움직인다. 왼손에 반투명하게 밀봉된 용기가 들렸다. 손바닥만 한 용기 안에서 뭔가 곰실대며 몸을 뒤집었다. 검고 작은 촉수 다발이. 굼뜨게 벽을 짚었다가 떼길 반복한다.
“왜 내 함선에 그딴 게 있어!”
“그게, 내 보지 안에 일부분이 남아서 꺼낸 건데.”
슬쩍 용기를 등 뒤로 감춘다. 내 안에 있던 거니까 내꺼 아니야? 잘 보관할 테니까 잠깐만 태워 주라.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뻘쭘하게 이를 드러내며 웃는 캐스를 붙잡았다.
“썅, 살아있잖아.”
네바는 손을 뻗어 용기를 빼앗는다. 몇 번 툭탁이다가 손이 미끄러져 용기는 허공을 날았고, 네바는 가진 모든 반사신경을 동원해 통을 겨우 낚아챈다.
공중에 무방비하게 떴던 몸이 데굴데굴 바닥을 구른다.
얼얼함을 느낄 새도 없이 전신이 섬뜩했다. 그건 모체와 분리된 상태로도 팔팔하게 살아 움직였다. 손바닥이 용기에 닿자 어두운 촉수가 벽면에 달라붙어 손바닥 위를 콕콕 찌른다.
“솔직히 재미 볼 구석이 많잖아, 저 정도 신경 자극 능력이면 블랙마켓에서 돈 좀―”
“캐소드.”
딱딱하게 부르자 캐스가 입을 다물었다. 내 함선엔 이딴 거머리 못 태워. 뒤통수가 지끈거린다. 작은 몸싸움 이후 심호흡하고 문가를 본다. 언제부터였는지, 마리가 통로 입구에 서 있었다. 손에 물컵과 약이 든 쟁반을 들고. 동그랗게 뜬 눈이 용기를 향했다.
“가져오셨군요.”
혹시 제가 봐도 될까요? 쟁반을 내려놓고 슬슬 이쪽으로 다가왔다. 홱. 마리의 탐욕스러운 손이 뻗어 나와 네바는 용기를 더 높게 쳐들었다.
“버릴 거야.”
“하지만 저것이 신경 수용체에 신호를 주입하는 방식은 전에 없는 경로입니다. 특히 강화 임플란트에 외부 생체 신호를 어떻게 연동한 건지 자세히 분석한다면,”
“찜찜하면 동결 보관은 어때, 최소한 내가 거래처 연락은 해보고,”
모든 목소리를 무시하고 뚜벅뚜벅 복도로 걸어 나간다. 아니면 연구용 샘플이라도, 내가 이런 거 비싸게 사주는 변태를 몇 알거든, 이건 외계 신경생물학과 의생명공학계의 중대한 발견이 될 수도 있습니다, 사람 하나와 유닛 하나가 합세해서 요란하게 반응한다.
둘 다 시끄러워. 마리와 캐스는 에어록까지 쫄쫄 따라오며 난리였다.
에어록 앞에 선다. 패널을 열고 방출 버튼에 손을 올렸다.
“네바.”
마리가 그 위에 손을 더 올렸다. 간절한 눈이 이쪽을 바라본다.
“왜.”
“멸종위기 생명체일 수도 있습니다.”
“멸종되라지.” 네바는 버튼을 누른다. 쉬익, 짧은 기압 소리와 함께 용기가 방출됐다. 에어록이 닫힌다.
셋 사이에 잠시 정적이 흘렀다.
내 잠지에 딸려온 건데. 캐스가 제일 먼저 입을 열었다.
“아깝다⋯.”
“동의합니다.”
미련이 가득한 기계 안구가 멀어져가는 용기를 본다. 생명체는 방출되자마자 희게 얼어붙었다. 네바는 둘을 번갈아 째려본다. 이 구도가 어색하기 짝이 없었다. 둘이 같은 편을 든다고. 그것도 이 주제로. 짜증 나. 뜻밖의 해프닝으로 진지하게 화낼 기회마저 놓친 네바는 툴툴대며 휴식 공간으로 돌아갔다.
80여 시간 이어진 운항 동안은 모두 얌전히 지냈다. 첫 다섯 시간은 캣이 기가 죽은 것처럼 행동해서 새로웠지만, 오래 가진 않았다. 별다른 책망이 없자 마리도 곧 은하망에서 찾아본 볼룹타스가 어떤 곳인지 조잘조잘 떠들어댔다.
착륙 셔틀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열기가 올라왔다.
단순 햇빛 때문만은 아니었다. 소음과 인파가 만드는 열이 더해진 결과였다. 습하고 두터운 공기를 들이마신다. 멀리서부터 음악 소리며 엔진 소리가 뒤엉켜 들려왔다.
별도 자치구라 따로 입국심사를 거쳤다. 캣이 먼저 입장 게이트를 통과했다. 그다음이 네바 차례. 바이오메트릭스 패널에 손을 올린다. 임플란트가 금방 신호를 읽고 신원 정보망에 등록된 신원 한 개와 그의 생체 정보를 교체했다. 군사작전 중 신원 위장 및 잠입을 위한 기능이었다. 당연히 제대하면 막히지만, 해금 자체는 간단한 편이었다. 네바와 캐스같은 연방군 출신 용병이 유연하게 활동하게 된 배경이기도 했다. 패널이 통과를 의미하는 초록으로 바뀐다.
마리는 그 과정을 유심히 본다. 인간이면 알아차리지 못할 속도로 정보가 바꿔치기 되는 과정을. 표정에는 큰 변화가 없었지만, 그동안 자신이 접근하지 못한 레이어가 있다는 걸 알아챈 눈이었다.
군용 임플란트 간 통신을 포함한 각종 군사보안 급 기술은 모두 함부로 해킹당하지 않도록 에어갭 안에 안전하게 보존됐다. 스스로도 평소엔 의식하지 않아서 말할 기회가 없었는데. 나중에 질문 좀 받겠군.
마리는 일행에 소속된 서비스 유닛으로 등록됐다. 손바닥에 급조한 가짜 로고를 인쇄하기까지 했지만. 게이트 직원은 그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여긴 별로 변한 게 없네.”
캐스가 주변을 훑으며 빠르게 움직였다. 눈이 살아난다. 익숙한 자기 영역에 들어온 사람의 릴랙스된 경계심. 착륙장에서 걸어 나오자 마자 도시가 바로 펼쳐졌다.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늘어진 시장통에서 노점과 간판이 마구 뒤섞였다.
건물 사이사이에 가스관처럼 굵은 철제 구조물이 땅을 뚫고 올라왔다. 지열 배출구였다. 꼭대기에서 수증기가 쉼 없이 뿜어져 나오며 열기와 섞여 흔들렸다. 높은 건물이 적어 청명한 하늘이 뻥 뚫렸는데도 어딘가 낮고 눅진한 인상이 드는 건 그 수증기층이 도시 전체에 짙게 깔려 있기 때문이었다.
멀찍하게 바다가 보였다. 쨍한 황록색. 엽서나 광고판에서 보이는 파란 바다가 아니라 처음 보는 사람은 잠깐 멈추는 색. 이 지역 중금속 광물 특유의 색이었다. 하기사 요즘은 누가 볼룹타스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른 채 방문하겠냐마는. 거기까지 생각을 돌리다 마리를 본다. 마리는 뚫어져라 바다를 보고 있었다.
“신기하네요.”
“뭐야, 오는 길에 안 찾아봤어?”
“제가 본 볼룹타스의 바다 사진은 전부 붉은 색이었거든요.”
“그건 역전 축제 때만 그래.” 캐스가 끼어들었다. 때마침 앞에 큼직한 붉은 바다 광고판이 지나갔다.
“일 년에 한 번, 위성이랑 궤도가 맞으면 조석력이 최대치가 되어서 해저 광물이 표층으로 밀려오거든. 대역전 현상이 일어나면 그렇게 붉어져.”
외운 것 같은 기계적인 답변이 흘러나온다.
“관광 안내원 다 됐네.”
“취향 맞는 여자가 지나가면 민간 안내원 출두해야지. 말 나온 김에, 나는 볼 것도 있고 할 것도 있어서. 나중에 봐.”
“어디 가는데?”
“환전도 하고 좀, 알잖아. 너도 가고 싶어?”
손가락이 외설스럽게 움직인다. 그 고생을 하고도? 네바가 눈썹을 찌푸렸다. 시발, 나 한 번도 못 갔잖아. 봐주라. 캐스가 킥킥댄다.
“둘이 오붓하게 잘 놀아.”
이미 반쯤 돌아선 캐스는 금방 인파 사이로 사라졌다. 사라진 뒷모습을 보다가 고개를 돌린다. 안쪽으로 골목이 죽 이어졌다. 어디서나 소음이 들리고 열이 올라왔다. 낡고, 시끄럽고, 위선이 없는 곳. 아무도 욕망을 복잡하게 감추지 않고 그냥 솔직하게 꺼내놓는 곳. 몸도 정신도 딱 좋아하는 온도였다.
“우린 좀 걸을까.”
해안선에 바짝 붙어 형성된 골목을 비집고 들어간다. 볼룹타스의 바다는 염도가 높고 밀도도 높아 파도가 느리고 무겁게 쳤다. 수심이 낮은 덕택에 고요한 수평선도 유독 멀어 보였기 때문에, 네바가 좋아하는 풍광이었다. 잠시 노란 빛에 가까운 그 색을 보면서 마음을 비우고 싶었다. 그와 조용히 대화도 해야 했으므로.
마리는 지난번 정거장에서 그랬듯 도시를 살피고 기록하느냐고 속도가 처졌지만, 얼마 가지 않아 옆에 바짝 붙어 따라왔다. 네바와 떨어지면 위험하겠다는 직감이 들어서였다.
사이사이로 유닛들이 많이 지나다녔다. 사실적으로 조형된 서비스형 유닛은 종류도 다양했다. 성별, 연령, 인종—이라기엔 인간이 아닌 모습도 많았지만—은 가지각색이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식별용 로고를 박은 비싼 가전이자 누군가의 소유물이라는 것. 목에 줄을 맨 유닛이 지나가자 마리는 몸을 더 붙이더니 팔짱을 껴 왔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유닛을 끼고 나란히 걷는다. 함선 내에선 기세등등했는데. 궁금해서 왔다가 영 불편한 현실을 마주하고 기가 죽은 모습을 보니 불쌍하기도 했다. 네바는 짓궂은 충동이 들어 일부러 노골적인 골목을 골라 지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