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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네바는 끔찍해

Volume 2

•DJG•8 min read



14. 네바는 끔찍해 Joan(Neva) Is Awful, 2023



안으로 들어서자 사람들이 보였다. 적은 편이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느슨하게 풀어진 사람들. 몇몇이 데려온 유닛도 낮에 본 것과 확실히 달라 보이는, 정교한 모델이었다. 사피야는 그들 대부분과 아는 사이인 것 같았다.

“제어 수준이 꽤 강하네요.”

마리가 뒤에서 따라오며 소곤거렸다. 그는 입구에서부터 반보 정도 뒤에서 따라왔다. 붙었다고 하기엔 애매하고 떨어졌다고 하기엔 가까운. 그냥 옆에 와. 부르자마자 쪼르르 옆으로 다가온다. 생각보다 긴장한 모습에 네바는 목덜미에 박힌 제어 장치를 본다.

“꽤 애틋하게 챙기시는 편이네요. 아무렴.”

그걸 본 사피야가 미미하게 미소 짓는다.

“엇.”

셋은 핑거푸드를 든 직원과 시시덕대는 캐스와 마주친다. 짙은 피부에 어울리는 아이보리색 재킷을 입고서. 어디선가 빌려 입은 게 분명했는데도 맵시가 괜찮았다. 말쑥한 차림에 비해 거의 일 분에 두 번은 남들에게 치근대는 중이었지만.

“캣과 아는 사이신가요?”

캣은 은근슬쩍 일행을 피해 동선을 틀려던 눈치였지만, 사피야가 먼저 우뚝 선 네바를 보고 말을 붙였다. 의아하게 보지 않도록 구구절절 설명을 늘어놓는다.

“군대 동기였습니다. 마침 볼룹타스에 같이 온 참이고요. 이사님은 어떻게 아십니까?”

“꽤 많은 일을 같이 했어요. 유능한 용병이다 보니 사업을 운영하면서 도움을 청할 일이 많네요. 이번에도 꽤 좋은 정보를 물어줬고.”

캐스는 뻘쭘한 듯한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사피야는 금방 몸을 돌려 반절 막힌 공간으로 그들을 인도했다. 오면서 비슷한 구조의 여러 방이 스쳐 지나갔다. 몇몇은 다발이 내려가 안이 가려졌지만. 그들이 안에서 뭘 하는지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어린애는 아니었다.

“마히르가 직접 데리고 올 줄은 몰랐네.”

마히르? 눈동자가 굴러가자 캐스가 턱으로 사피야를 가리켰다.

“여긴 왜 온 거야?”

“난 오면 안 돼? 돈 많은 여자들이 모이면 나도 와야지.”

캣은 입술에 묻은 기름기를 핥는다. 너 여기서 생각보다 유명하더라, 킬킬대는 그를 끌고 방 안으로 들어간다.

“아, 이쪽은 꼭 소개드리고 싶었는데,” 그들이 인지하기도 전에 먼저 문장이 나왔다. “이번에 <귀환불능점> 작가님이 저희 리조트에 오셔서 어렵게 모셨습니다. 옆은 에메르를 본뜬 모델이에요.”

생각도 못한 소개로 첫 문이 열리자 시선이 집중되는 속도가 빨랐다.

사피야가 소설 관련 질문이면 괜찮지 않겠냐며 멋대로 허락한 탓에 거리낌없는 질문이 이어졌고. 몇몇은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가깝게 모여들었다. 질문이 뒤섞이자 마리 역시 어느샌가 경계가 무너진 채 대답했다. 저는, 아니 에메르는, 같은 표현이 반복될 때마다 네바는 그의 손목 안쪽을 긁으며 놀린다.

제가 그렇게 노골적으로 썼는지 몰랐습니다. 팔을 붙잡은 마리가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을 크기로 또 소곤거렸다. 노골적인지 몰랐다고? 네바가 되묻자 샐쭉하니 입술을 내민다.

“전 사실 3권 마지막에서 울었잖아요.”

대화가 무르익어갔다. 살롱에서 제공하는 프로세코 잔을 든 채. 한 독자가 술기운이 오른 볼을 찌그러트리며 웃었다. 저도요, 너무 낭만적이지 않아요? 두어 명의 사람들이 동의를 표했다. 뭘 그렇게까지. 네바는 속마음을 테이블에 놓인 쿠키와 함께 삼킨다.

“1권 읽는 동안엔 당연히 베가가 평범한 것으로는 만족 못 하는 몸으로 변해간다는 제목인 줄 알고 웃었는데, 3권에서 에메르가 자신의 감정을 재정의하고 받아들이잖아요. 베가에 집착하기 시작한 건 알고리즘 오류였지만 이젠 상관없다고. <귀환불능점>은 전부 에메르의 사랑 이야기였던 거죠.”

“야설에서 그런 깊이가 나온다니 신기하네요.”

푹 빠진 듯한 모습에 캣이 키득키득 웃었다. 어머, 안 읽어보셨으면 꼭 읽어보세요. 음흉해 보일 정도로 짓궂은 미소가 돌아온다.

“사랑이라고 봐도 돼요? 그 소행성 해변에서 베가가 촉수 해파리한테 당했을 때. 바로 구하지 않고 흥분해서 지켜봤잖아요.” 전 그러다 죽을까봐 걱정돼서 별로더라고요. 가학적인 것도 나름 잘 본다고 생각했는데. 잠자코 얘기를 듣던 사람 한 명이 나섰다.

흥분한 게 아닙니다, 구조 전 데이터 수집을 위한 기다림이었습니다. 함부로 진입하면 에메르도 위험했을 테니까요. 마리 역시 참지 못하고 대화에 참전했다.

네바는 그런 분위기 틈에서 단말기를 확인하는 사피야를 본다. 화면을 보는 시선이 아주 짧게 멈췄다가 전혀 티나지 않는 흐름으로 이쪽을 훑었다.

그 뒤엔 바로 다른 보안 직원을 향했으나. 뭔가를 확인한 사람의 눈이었다. 네바 역시 종종 비슷한 보안 임무를 수행했기에 그 정도의 사인은 읽을 줄 알았다. 아니나 다를까 곧 직원 한 명이 마리에게 다가온다.

잠시 확인 좀 하겠습니다, 직원은 양해를 구하더니 마리를 몇 걸음 떨어진 곳까지 데려간다. 네바는 최대한 청력을 강화하며 대화를 감지한다. 자율 반응 수치 확인이 필요합니다. 패널에 손 올려주시겠어요? 소유주분께 따로 알림이 가는 일은 없을 겁니다. 이게 뭐냐고 어깨를 으쓱하는 네바에게 마리가 걱정하지 말라는 제스쳐를 취한다.

무해하고 간단한 검사입니다, 직원의 긴 설명이 끝나기 전 마리가 패널에 손을 얹는다. 고개를 미약하게 기울이면서. 순간 기기 화면이 꺼진다. 조명과 음악이 아주 잠깐 같이 꺼졌다가 바로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러는 내내 마리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확인이 됐을까요?

기기에 계속 손을 올린 채로 마리가 물었다. 직원이 보내주자 금방 네바 곁으로 돌아온다. 팔을 붙잡는 손이 따뜻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발 물러났던 사피야가 다시 대화에 끼어들었다.

“정말 훌륭한 유닛이죠. 많은 영감도 주고.”

마리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정중하면서도 침습적으로 쑥 들어온다. 허락을 구하는 척했지만 이미 손가락이 근육의 선을 타고 목덜미로 이동했다. 제어 장치를 만지다 가볍게 꾹 누른다.

“지금까지 제어 수준이 너무 높았던 것 같아서, 안정적으로 조정해 드리겠습니다.”

마리는 줄곧 이쪽을 보며 그를 참아낸다. 불쑥 유닛을 더듬는 손길에 네바의 시선이 따가워졌다. 사피야와의 신경전에 밀리지 않으려 일부러 마리를 당겼으나, 끌려오는 어깨가 미세하게 떨렸다.

반응이 굉장하네요, 마리의 척추 주변에 매설된 신경 다발이 위에서부터 차례로 붉어진다. 만지면 데일 것처럼. 모세혈관같은 망이 불길한 색으로 빛난다. 미약한 신음이 흘러나왔지만 사피야는 손을 떼지 않은 채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오늘 저녁 잠시 저희에게 맡겨주시면 안 될까요?”

사람들이 듣지 못하는 작은 질문이었다. 어차피 다른 이들은 소설에 관해 얘기하느냐고 좀 전의 깜빡임도 눈치채지 못할 만큼 바빴지만. 네바는 마리의 어깨에서 손을 걷어낸다.

“거절하겠습니다.”

“아쉽군요. 범상치 않은 기술인데.”

그는 전혀 그렇지 않은 태도로 웃었다. 어차피 이 건물에, 이 도시 전체에 영향력이 얽혀 있는 자의 여유로움이었을까.

“저희는 먼저 일어나죠.”

목례하자 그는 만류하지 않고 조용히 인사했다. 야 잠깐, 같이 가, 사피야와 시선을 주고받던 캣만 허둥지둥 일어났다.


캣을 따라 구불구불 리조트 안을 이동한다. 메인 시즌이 아니어서 그런지 오는 동안 사람을 한 명도 마주치지 않았다. 카지노와 반대 방향인 리조트 서쪽 부근은 그저 한산하기만 하다.

터벅터벅 걷는 소리만 복도에 울리다가, 마리가 멋쩍은 듯 말했다.

“검사 중에 방화벽 공격이 들어와서 제 보안 프로토콜이 자동으로 반응했는데, 역시 꺼 둘걸 그랬나 봅니다.”

“뚫고 내부를 봤어도 비슷한 문제는 터졌을걸. 불편했는데 차라리 잘 됐어.”

네바는 굽은 팔로 작게 기지개를 켜고, 손을 깍지 껴 뒤통수에 댄다. 간만에 드레스코드 맞춘다고 재킷을 입었더니 어깨가 영 어색했다.

“나왔으니까 그만 생각하고, 이대로 숙소로 돌아갈 거야?”

캐스의 말이 분위기를 툭툭 털어낸다. 아까운데 좀 놀다가 들어가지? 때마침 위로 지나가는 팻말을 가리키며 섰다.

“스파? 이 밤중에?”

“여긴 멈추지 않는 도시라니까.” 떨떠름한 기분이 풀리지 않는 네바를 쿡 찌른다.

“그쪽은 확실히 보안카메라가 없겠네요.”

전부터 건물 눈치를 보던 마리가 동의를 표했다. 봤지? 네 로봇도 좋다고 하잖아. 의기양양한 캐스는 노천탕 방향으로 발을 돌린다.

거대하고 화려한 욕탕보다는 독립적이고 조용한 구조였다. 입구부터 길이 여러 갈래로 나뉘며 개별 온천장으로 진입하는 방식인 것 같았다. 이미 두 칸은 사용 중으로 막혀있기에, 중간의 적당한 길을 골라 캐스의 숙소 코드를 입력한다.

좁고 짧은 통로를 일렬로 지나 문을 열자 하늘이 탁 트인 야외 테라스가 나타났다. 역시 도시 야경과 바다가 잘 보이게 배치되어 볼룹타스의 밤이 활짝 열린다. 안쪽이 보이지 않는 프라이버시 보호망으로 둘러졌다는 걸 제외하면 호텔 옥상 수영장과 비슷한 구조였다.

캣이 들어오며 전원을 켜자 세 개의 탕이 각기 다른 빛으로 희미하게 빛난다. 시즌 때 가끔 해안에 밀려드는 발광 플랑크톤처럼. 은은한 인광이 올라와 바닥을 밝혔다.

밤인데도 차갑지 않았다. 잔물결조차 사라진 바다가 높은 비열로 축적한 열을 야금야금 뱉어냈다. 수분까지 머금어 촉촉하고 온화한 밤공기가 온몸을 감쌌다. 도시 소음은 거의 넘어오지 않고 암반에 파도가 부딪치는 소리만 간간히 올라온다. 가뜬한 공기를 음미하고 돌아보자 이미 캐스와 마리는 옷을 벗은 채였다.

“빠르기도 해라.”

마리는 얇은 온천용 옷을 가슴까지 올리고 겉옷을 넘겨받아 바르게 개킨다. 가슴에 달린 밴드가 전부인 튜브톱 원피스 형태의 가운이었다. 엉망진창으로 벗어둔 캐스의 허물 위에 재킷을 걸고. 뒤에서 네바를 한 번 안고. 슬그머니 앞가슴을 더듬더니 아래에서부터 셔츠 단추를 풀었다.

어깨를 움직이며 그의 손길에 따른다. 마리가 벗겨주는 대로 잠자코 있다가, 그가 돌아섰을 때 날개뼈를 가로지르는 밴드를 한번 고쳐준다. 딱히 잘못 입은 건 아니었지만. 사피야 손이 닿았던 목덜미가 자꾸 신경 쓰여서였을까.

“상당한 레벨로 결합되어서, 당장 제 임의로 제거하면 안 될 것 같습니다.”

뒤에 카메라가 달린 것도 아닐 텐데. 마리가 알아서 대답했다. 부착 때부터 계산에 착수했으니 내일쯤이면 뗄 수 있을 겁니다. 들키지 않을 출력으로 계산 중이라 조금 오래 걸려요. 유닛은 그가 주는 관심이 기꺼운 듯 기쁘게 설명한다. 네바는 제어 장치에서 힘겹게 눈을 떼고 탕을 향해 걸었다.

옷은 허벅지를 한 뼘 겨우 가리는 게 고작이어서, 굳이 입을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한참 전부터 찰랑거리며 맨몸으로 탕에 들어간 캐스를 못마땅하게 째려본다.

가장 큰 탕에 마리가 들어가는 걸 보며 따라 들어갔다. 발목에서 허벅지까지 천천히 담그는 동안 하루치 쌓인 긴장이 물에 녹기 시작한다. 광물이 많이 함유된 온천수라 다리가 미끈거렸다.

“분위기 묘하다야.”

“뭐가?”

바닥에 내려가자 가슴까지 물이 찼다. 어지간한 수영장만 한 깊이였다. 뒤에서 캐스가 김이 오르는 물을 밀며 다가온다. 덥석 양 팔뚝을 붙잡고. 어깨에 턱을 올리면서. “너무 나 빼고 둘이서만 각잡는 거 아니야?”

팔 바깥쪽으로 느릿하게 몸을 더듬는 캐스를 마리가 빤히 응시한다. 말이 없어도 눈에 다 읽히는 표정이었다. 캐스는 그 시선을 정면으로 받으면서 실실 웃었다. 약이라도 올리듯 더 가까이 몸을 붙이자 큼직한 가슴이 등 뒤로 비벼진다.

마리는 지지 않겠다는 듯 물속으로 팔을 뻗어 손을 잡아 왔다. 뜨거운 물 틈에서 손가락을 끼운다. 셋이 잠시 대치하는 동안 먼 곳에서 틀어둔 음악인지 진동이 몇 번 웅웅 울렸다.

“이럴 거야? 여기서?”

“응.”

옛날 생각도 나고 좋지 않냐. 전혀 부끄러운 기색이 없는 대답이었다. 목소리만큼이나 염치없는 손이 네바의 빈손을 제 다리 밑으로 가져간다. 아무것도 막지 않으니 물결 사이로 곧장 예민한 음핵이 닿았다. 뒤이어 캣의 기계 손가락이 손을 감싸 쥐고 유도한다. 널 기다리는 품으로 들어오라고. 네바는 중지를 구부려 질구를 손톱만큼 찌른 다음 슥 그으며 손을 빼앗았다.

“하여튼 둘 다 왜 이렇게 밝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