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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적절한 사랑

Volume 2

•DJG•8 min read



16. 적절한 사랑 Appropriate Love, 1991



“유닛은 사람이랑 신경 구조가 달라서. 다른 방식의 자극이 늘어나기만 하면 될걸?”

반박하고 싶었지만 음성 출력이 버벅댔다. 그의 말대로 더 흡족하고 풍성해진 자극이었기에 제지할 이유도 없었다. 오히려 멈춰 선 네바의 움직임만이 유감이었다. 빨, 빨리, 마저⋯, 가쁜 숨 때문에 마지막의 정중한 해주세요, 는 입 모양으로만 나간다. 자지러지며 뒤로 고개를 젖히는 내 모습을 본 네바는 눈을 굴리다 다시 움직였다.

새끼, 이런 메커니즘이었으면 촉수한테 몇 개씩 쑤셔질 때 나보다 더 잘 느꼈을 텐데. 캐스는 빈정대면서 손을 재게 놀린다. 서로 합이 끔찍하게 맞지 않아 내부에서 부딪히고 몇 번씩 손가락이 빠지고 난리도 아니었지만, 그게 더 오류를 많이 추가해 과부하가 커졌다.

이제 와서 사과라도 해 달라는 말일까요, 그에 맞서 빈정거리고 싶었지만 입안 스피커에서는 과할 정도의 신음만 출력된다.

“하여튼 희한한 걸 잘 안다니까.”

전에 없던 반응에 네바는 약하게 혀를 내두른다. 난 너무 착해서 문제야, 유닛한테 당해놓고 이런 포상이나 주고. 둘이 무언가 주고받는 음성은 더 접수되지 않았다.

두 체구 사이 끼어 속절없이 무너진다. 허벅지 근처에서 시작된 경련이 전신으로 번졌다.

마구 내젓던 팔은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붙잡았다. 그렇게 한 손은 앞에 선 네바의 어깨를, 다른 손은 뒤에 있던 캐스의 목덜미를 꽉 쥐어뜯은 채. 네바의 취향대로 꽤 시끄럽게 수정 설계된 오르가즘을 수납한다.


약간의 여유가 돌아오자마자 캐스와 닿았던 부분을 죄다 떼어냈다. 물속에서 바로 서려다가 다리 하나가 바닥을 지지하지 못하고 가볍게 휘청인다. 그 흐름을 놓치지 않고 잡아주는 네바에게 안겼다. 물 온도와 비슷하게 익은 몸을 껴안자 쭈글쭈글 불어난 손이 등을 슬슬 쓸어준다.

“이거 사람 패는 유닛이라 그런지 악력도 장난 아니네. 손톱자국 난 거 봐.”

캐스는 어깨를 이리저리 돌리며 몸을 살핀다. 손톱에 찍힌 것쯤은 티도 안 날만치 온몸에 너저분한 흉터를 남겨놓고서는. 손톱이 짧고 단정한 모델이었기에 신경질적으로 긁어놓은 등은 빨갛게 난 자국이 전부였다. 실수인 척 손가락 밑에 수납된 칼이라도 꺼냈어야 했나. 나는 그의 앙탈을 무시하고 네바의 품을 파고든다.

“유닛한테 맞고 싶다고 한 건 너 아니었냐.”

손톱에 찍혀 피가 딱 한 방울 맺힌 그의 어깨에 네바가 고개를 숙여 쪽, 하고 입술을 댄다. 곱게 마감하지도 않아 피부 표면으로 온갖 금속 조각이 비죽비죽 튀어나온 더러운 부위였다.

전기충격으로 생긴 화상도 적잖이 아물었는데. 엄살은.

네바는 안긴 나를 데리고 느리게 물살을 헤치며 욕탕 입구 계단 근처로 이동했다. 얕은 물에 날 내려놓고. 그도 옆에 따라 앉았다. 뜨거운 온천에 앉으니 목까지 물이 차오른다. 시야가 수면에 가까워지자 하얀 김이 안개처럼 어룽졌다.

“엉덩이나 맞고 싶다고 그랬지. 머리 쥐어뜯기는 거 말고.”

캐스도 쫄쫄 따라와 앉았다. 그의 관심사 역시 네바였으니 내 옆이 아니라 그의 옆에.

“아직 팔 캘리브레이션이 덜 되어서 그렇습니다.”

헹. 여태 못 고친 게 말이 되냐. 캐스는 물속에 방만하게 앉아 쪼잘거렸다. 내가 호흡과 연산을 정비하는 동안 귀신같이 네바를 낚아채 간다. 빨갛게 익은 팔을 그의 어깨에 걸치고. 턱을 붙잡아 요리조리 돌린다.

내가 이 잘생긴 얼굴을 어떻게 잊고 살았지, 둘 사이에 키스가 오가자 네바의 몸도 옆으로 돌아갔다. 덜 젖은 이마를 서로 맞대고. 푹 젖은 상반신을 더듬으면서. 나에게 거의 감지되지 않을 작은 소리로 옛 추억을 읊는다. 그때 너 약 잘못 먹었을 때, 부대 욕탕에서⋯, 청각 센서를 활짝 열었지만 문장은 드문드문 끊겨 일부 어절만 들어왔다.

캐스가 나보다 우위인 건 그와 지낸 시간의 총량밖에 없었다. 그마저도 이미 한물간 과거인. 가장 최신 버전 데이터를 분석해서 그에게 최적화된 기쁨을 선사할 수 있는 건 나였다. 나를 등진 네바를 잡아당긴다. 보급소에서 외계 생명체를 모사하며 익힌 기술을 활용할 첫 기회였다.

해변에서 가볍게 테스트해 봤으니 제대로 적용할 자신이 있었다. 서운함을 달래주려 기꺼이 입술을 주는 네바를 붙잡고 신경 신호를 엮어 넣기 시작한다. 네바는 이미 뜨거운 물로 피부 수용체 전반이 크게 민감해진 상태였다. 핏줄과 함께 넓고 촘촘하게 퍼진 신경망 전부를 더 강하게 활성화한다.

“또 뭔가 시도하는 거야?”

손으로 짚은 허벅지 아래가 움찔댔다. 그가 누그러진 목소리로 속살거린다.

“새로 업데이트된 펌웨어에 시도해 볼만한 기술 같아서요.”

“살살 해줘.”

아니, 그의 몸에 확실하게 각인시킬 것이다.

나는 바닥을 짚으며 네바의 허벅지를 벌리고 들어간다. 전희는 충분했으므로, 머리를 완전히 물속에 넣는다. 내겐 호흡이 필요 없으니 관련 프로세스를 중단하고 물이 들어오지 않도록 귀와 목 안쪽을 닫았다. 쟤는 숨 쉴 필요도 없고 편리하네. 캐스의 목소리가 물 안으로 전해지며 웅웅거렸다.

물 안으로 완전히 들어오니 바닥에서 잡음이 들렸다. 스파가 끊임없이 빛나도록 물에 녹은 광물에 특수 파장을 쏘는 장치로 추정됐다. 방해되지 않도록 필터링하고, 은은한 인광 속에서 네바의 검은 숲을 찾는다. 수생식물처럼 하늘하늘 흔들거리는 털 아래 감춰진 곳에 혀를 댔다.

허억, 점막과 점막이 닿자마자 네바의 허리가 튀어 오른다. 천천히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고. 그의 하반신을 힘 있게 누른 채 재차 혀를 넣었다. 흘러나오는 애액은 금방 살랑거리는 욕탕 물에 풀어졌으므로, 침을 훨씬 끈끈하게 배출했다. 끝을 세워 건드리고 말캉한 음핵을 넓게 압박하기도 하면서. 이곳 네트워크에서 학습하고 익힌 모든 기술을 총동원해 네바를 자극한다.

“오늘은, 느낌이 좀 다른데,”

진작부터 헐떡대는 네바의 숨소리 파장이 물을 통해 전달된다. 그렇게 잘해? 섹스로봇이 섹스 잘 한다고 놀라면 안 되는 거겠지? 캐스는 조잘조잘하다 체온을 식히려는지 욕탕 위에 올라가 앉았다. 이제 물 안에 남은 건 파닥파닥 물장구를 치는 두 다리뿐이었다. 위에서 둘이 몇 마디 더 주고받았지만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네바는 곧 나에게만 집중하게 될 테니까.

다리 근육이 계속 도드라지다가 참지 못한 네바가 몸을 굽혔다. 역시 평소보다 더 거칠고 센 반응이 돌아온다. 그건 긍정적인 신호였다. 백도어를 통해 전달받는 네바의 수치를 실시간으로 점검하며 감각 입력 포화율을 계속 높였다.

아직 더 올릴 수 있다. 조금만, 조금만 더.

감각 포화율이 약 83%에 도달했을 때, 네바의 손이 어깨를 밀어냈다. 수중이라 힘이 반감됐지만 제지의 의도가 느껴졌다. 잠깐, 너무 과해, 읏, 그 목소리를 무시하고 혀를 깊게 꽂는다.

“멈추라니까.”

물 밖으로 확 당겨진다. 얼굴이 한껏 상기된 네바가 시야에 들어왔다. 윗입술에서 피가 한 줄 흘러내렸다. 코피였다. 맑은 피는 턱을 가로질러 탕 위로 방울방울 떨어진다. 여전히 가슴은 거칠게 오르내리고. 이마와 볼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 네바는 쑥스럽다는 듯 코를 훔친다.

입력 과부하 반응이었다. 물 온도가 이미 높은데 자율신경계를 너무 빠르게 자극해 혈압 문제가 생겼다. 체온 수치를 보정해 좀 더 완만한 커브로 접근하면 됐다.

섹스하다 사람 잡겠네. 쫑알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캐스는 이제 아예 데크 위에 누워서 어디까지 하는지 궁금한 듯 팔을 괴고 지켜보는 중이었다.

“과부하가 심했네요. 경로 재조정해서 접근ㅡ”

“아니, 좀 쉬자.”

네바가 다시 달려드는 내 가슴팍을 지그시 밀었다. 부드럽지만 분명한 거절이었다. 제대로 경험하면 마음이 바뀔 겁니다. 나는 그 손을 밀어내고 고개를 기울였다.

경고. 생명 위협 신호 감지.

목뒤에서 경고음이 울렸다. 제어 장치가 끼어든 건 그 타이밍이었다. 위협이라니. 가당치도 않은. 네바의 의사에 반하는 그 순간의 로그 처리가 공격 신호로 분류된 것으로 추정됐다. 그럴 의도가 아니라고 설명하기 위해 입을 열었으나 출력이 바로 차단된다. 입이 닫히자 네바가 당황하며 이쪽을 본다.

서버에 사피야가 제어 수준을 올렸을 때보다 훨씬 강도 높은 공격이 들어왔다. 이까짓 공격은, 금방 풀어내 방어하고 싶었으나 반격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네바를 자극하는 데 남은 리소스를 모조리 배분하기도 했지만. 가뜩이나 낮춰 둔 연산량에 오르가즘이 입력해 놓은 무의미한 더미 데이터가 꽉 찼다.

하필 이런 순간에⋯, 저항하자 메인 서버의 처리 흐름이 순서대로 꺼지는 게 느껴진다.

전신 모터 출력부터. 그다음은 감각 처리. 마지막으로 외부 인식이 흐릿해지다가.

뚝.


돌아오는 데 얼마나 걸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눈이 초점을 잡자 가장 먼저 들어온 것은 바람 소리였다. 시원한 밤바람이 바다로부터 불어왔다. 물 밖이었고, 젖은 몸은 전부 말라서 식었다. 나는 맨 바깥쪽 해안 절벽에 놓인 선베드에 눕혀져 있었다.

서버가 돌아오자마자 내부 네트워크를 잡아 시간 정보를 받았다.

공백은 32분 17초였다.

정신을 차리는 데 30분이나 넘게 걸렸다고? 함선AI와 융합된 상태에선 훨씬 빨랐는데. 그때 귀에 캐스의 앓는 소리가 날카롭게 들어왔다. 고개를 돌리자 몇 개 떨어진 선베드에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네바와 캐스가 붙어있는 게 보였다. 캐스는 네바의 위에 올라타서⋯, 올라타서? 나는 눈에 접수된 개탄스러운 정보를 차근차근 분석해야 했다.

물결 모양으로 굽어져 도톰한 폼이 덧대진 선베드에 두 사람이 올라갔다. 네바가 아래에 편안하게 누웠고, 무릎 한 개를 비스듬하게 세워 캐스에게 다리를 내어줬다. 캐스는 그 솟아오른 허벅지 경사면에 앉아 아랫도리를 느릿하게 문질렀다. 방향이 묘했다. 네바에게 등을 보인 채. 홀로 바다를 응시하며 신음했다.

각도와 방식이 너무 비효율적이었다. 네바의 허벅지 근육이 조화롭고 아름답게 발달한 건 사실이었지만, 이렇게 뭉툭하고 넓은 범위로 마찰해 봤자 얻을 수 있는 쾌감은 유한했다. 서로 마주 보고 시선을 교환하지 않으니 감정적 충족감도 없을 거고.

그 증거로 네바는 꾸벅꾸벅 조는 중이었다. 이렇게 무심할 수가. 성의없는 모습에 분노가 치민다.

“네바?”

황급히 일어나자 몸을 가린 넓은 수건이 바닥에 떨어졌다. 둘이 동시에 고개를 돌려 날 본다.

“일어났어?”

그의 미간에서 걱정이 감지됐다. 나를 눕혀놓고 둘이 따로 섹스했다는 사실이 닥친다. 이런 허술한 방식일지라도. 어떤 식으로 반응할지 감정 레이블을 분류할 수 없었다.

“표정이 왜 그래.”

캐스는 여전히 허리 품을 팔았다. 아예 네바의 무릎에 손을 얹고. 더 유연하게 몸을 놀린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등에 선 근육이 꿈틀댔고, 네바의 허리며 몸 곳곳이 축축했다.

“쟤 삐졌나 본데?”

“삐진 거 아닙니다.”

네바가 손을 뻗어 내민다. 이쪽으로 오라는 손짓이었다. 나는 바닥의 수건을 주워 어깨에 걸치고 그의 선베드에 앉았다. 캐스는 한숨을 푹 쉬더니 그의 다리에서 내려와 발치로 이동한다. 둘이 자판기에서 가져온 소다를 벌컥벌컥 들이마시는 동안, 제일 먼저 네바의 허벅지에 추저분하게 묻은 질액을 손으로 닦아냈다. 네바가 모서리에 걸칠 정도로 빠지자 둘이 누울 공간이 나왔다. 그의 팔을 베고 품 안을 비집고 들어가 입술을 몇 번 삐죽인다.

“네가 시스템 재부팅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테니 걱정 말고 기다리라고 했잖아.”

메모리에 없는 내용이었다.

“제가 그랬습니까?”

“위협 의도가 감지되어 자동 셧다운이 진행될 거라고. 네가 그렇게 말했는데.”

킁. 네바는 또 미안할 때 내는 머쓱한 콧소리를 낸다.

“그래서 널 잘 눕혀놓고 어른들끼리 좀 즐긴 거란다.”

캐스는 다 마신 음료 캔을 내려놓고 끼어들었다.

“제가 없으니까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관계하신 겁니다.”

“지금은 네바가 제발 쉬자고 해서 잠깐 쉰 거야. 아까는 간만에 실컷 즐겼으니까 걱정 말아?”

말을 멈추고 네바를 올려다본다. 진짜예요? 눈으로 물었으나 네바는 나를 끌어당겨 품에 꼭 안아 줄 뿐이었다. 한창 온천물에 담그다 나왔을 텐데도 품 안에서 땀 냄새가 검출됐다. 새큰한 캐스의 체취도. 경치 좋은데 아깝잖아. 네바가 엉덩이 보는 걸 좋아하기도 하는데, 아, 이런 말은 하지 말까? 캐스는 뭔가 말하다 말을 멈춘다.

“좀 비켜줄 테니까 둘이 알아서 정리하라고.”

그는 수건 밑으로 드러난 내 엉덩이를 찰싹 때리곤 자리에서 일어난다. 성큼성큼 스파 모서리에 위치한 미니바 쪽으로 걸어가는 발걸음이 개운해 보였다. 나는 대화 전략을 어떻게 수립할지 한참을 계산한다.

이 감정을 무엇으로 정의하고, 어떻게 반응해야 적절한지, 또 무엇을 요청하고 나누어야 하는지. 생화학적 피드백을 주고받지 못하는 무기체와는 깊은 독점 관계가 불가능한 건지. 그간의 노력은 헛된 발악일 뿐이었을까. 부러 후순위로 밀어놨던 문제들이 부지불식간에 들어닥친다.

그러는 동안 머리맡에서 색색거리는 숨소리가 들렸다. 뒤쪽을 느리게 쓰다듬던 손길도 멈췄고.

네바는 자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