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패컬티
Volume 2
10. 패컬티 The Faculty, 1988
공중으로 붕 뜨며 총을 놓친다. 다발들이 한쪽 다리에 집중적으로 몰려들었다. 의체 접합부 부근이었다. 다리가 붙잡혀 거꾸로 매달린 채 촉수를 뜯어내려 했지만, 정거장 양식 장어처럼 계속 손아귀를 빠져나간다. 옷 안쪽으로 점액이 스며드는 것이 느껴졌다. 작은 촉수가 흩어지며 피부 구석구석을 훑는다.
네바는 뒷주머니에 예비로 꽂아둔 권총을 뽑아 최대한 천장을 겨누고 촉수를 쏜다. 몇 발을 집중적으로 쏘자 촉수가 끊어지며 바닥으로 추락했다. 큭, 점액 웅덩이에 얼굴을 처박고 빠르게 일어났다. 달콤하면서도 요상한 맛이 밀려 들어온다.
“대체 뭐야 이게?”
허겁지겁 캐스에게 뛰어가 그의 몸을 감은 것들을 뜯어낸다. 우악스럽게 하나를 뜯어내면 두 개가 몸을 감아 권총을 내던지고 양손으로 마구 떼어냈다. 발을 구르며 감지 못하게 버텼지만 결국 촉수가 발목을 잡아챈다.
휙. 순간적으로 세게 당겨지자 무게중심이 흔들렸다. 출력을 낮추는 순간 끌려간다. 네바는 손이 닿는 벽의 케이블을 움켜쥐고 최대한 버텼다.
우두둑, 케이블이 버티지 못하고 벽면에서 떨어졌다. 바닥을 짚은 채 질질 끌려간다. 한쪽 다리가 뒤로 빠지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천장에서 뚝뚝 떨어지는 액체 때문에 케이블을 놓치고, 바닥을 마구잡이로 잡다가 촉수 뭉치를 쥐었다. 닿자마자 거머리처럼 손을 확 감아온다.
“야, 캣, 정신 차려.”
끌려가며 그를 불렀지만 대답이 없었다. 계속해서 드나드는 것들 때문에 몸이 간헐적으로 움찔거렸다. 그래도 아직 숨을 쉰다. 살아있다. 구할 수 있다. 이걸 벗어나기만 한다면.
끌고 가는 뒤쪽 방향에서 굵은 촉수 몇 개가 더 다가와 팔을 잡아당겼다. 근질근질 몸을 감는 것들은 무언가를 탐색하는 것처럼 피부 위를 돌아다녔다. 신경이 많이 모인, 예민한 곳을 찾는 것 같았다. 그러니 접합부에 저렇게 집착하지.
업데이트 후 아직 안정화가 덜 된 경계면이 확 조여지자 흣, 하는 신음이 튀었다. 억눌렀다고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강한 소리가 나온다. 추저분한 소리만 울리는 조용한 배선실에서 지나치게 또렷하게 들릴 만큼.
네바는 이를 깨물고 통증을 억제하는 시스템을 끈다. 차라리 아픈 쪽이 제정신으로 버티기 쉬울 것 같았다. 말랑한 관절마다 조여드는 압박이 느껴진다. 쭉 끌려가면서 바닥 금속에 심하게 긁힌 무릎 통증도 올라왔다. 그게 잠깐 정신을 차리는 것에 도움은 되었지만, 빠져나갈 길은 여전히 요원했다.
바닥을 보며 떨어트린 총들과의 거리를 계산한다. 완력으로 기어가는 건 무리였다. 거의 엎드려서 뒤가 들린 채 전략을 고민하는 동안 두꺼운 것이 허벅지를 감아온다. 감촉만 봐서는 이전 것들과는 다르게 상당히 두툼했다. 등 쪽으로 살짝 들린 바지 틈을 파고 불쑥 들어온다. 유연하게 몸체를 놀리며 엉덩이골을 타고 아래로 내려왔다.
마구 몸을 탐하는 주제에 그가 적응하는 걸 기다리기라도 하는 건지 아주 천천히, 느릿하게 내부를 채운다. 두꺼운 게 친절하고 정중하게 들어오니까 약이 오른다.
촉수는 잠시 시간을 주더니 질 내벽을 긁으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네바는 신경 신호 접수를 최대한 낮춘다. 버틴다. 통증 감도만 더 예민하게 올리고 입술을 지근지근 깨물면서 낯선 생명체가 몸을 자극하는 걸 참았다.
이 상태로 절정을 맞이하는 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헉헉대며 숨을 몰아쉰다. 철에 날카롭게 베인 무릎이 따끔따끔한데, 그게 쾌감과 섞이니까 영 나쁜 쪽으로 흘렀다. 그러니까. 그의 몸에는 좋은 쪽으로. 니미. 네바는 골반을 튕기며 욕을 내뱉는다.
피가 난 주변을 계속 문지르던 작은 촉수가 상처를 쿡 찌른다. 가늘게 쪼개지며 표피 밑을 파고든다. 그게 무슨 정복의 상징이라도 되는 듯. 임계점을 완전히 넘겨버린 듯. 억눌린 것이 한 번에 터진다. 시스템 메커니즘이 전환되는 것처럼 한꺼번에 쾌락 입력이 들어온다. 하으악, 네바는 비명에 가까운 신음을 내지르며 경련했다.
그러다 몸에 내려앉은 오르가즘이 훅 벗겨졌다. 누가 아침에 대뜸 이불을 뺏어가 버린 것처럼. 몸이 침대 밖으로, 쾌락 밖으로 데굴데굴 굴러서 떨어진다. 촉수만이 들뜬 움직임으로 마구 수축하는 그의 내부를 탐색했다.
그러니까, 그걸 먹는다는 거지⋯, 조금이라도 달아오른 몸이 식을까 촉수는 작은 갈래로 나뉘어 그의 주름과 음핵을 쉼 없이 간질였다. 뒤로 제압당한 팔이 들리고, 네바 역시 캣과 비슷하게 몸이 스르륵 위로 떴다. 끈끈한 점액과 다르게 맑은 피가 바지 밑에서 한 줄로 죽 흐른다. 빡빡하게 힘을 준 허벅지 사이를 벌리고 촉수 몇 개가 그를 자극했다. 이대로 박히다 뒤지는 걸까. 네바는 더운 숨을 뱉으며 고개를 뒤로 젖힌다.
느릿한 발자국 소리가 들린 건 그가 네 번의 절정을 뺏기고 난 뒤였다.
“마리.”
쉰 목소리로 그를 부른다. 눈꺼풀을 떨었지만 하나를 다 뜨기가 어려웠다.
“네.”
대답은 바로 왔지만 그는 더 다가오지 않았다. 힘겹게 눈을 밀어 올리자 이쪽을 살펴보는 마리가 보였다. 입술이 약간 벌어졌다. 흥미로운 듯한. 끔찍한 호기심에 들뜬 것처럼.
“빨리.”
“아⋯, 전류 패턴을 파악해야 합니다. 무리하게 뜯으면 다칠 수 있어서요.”
“지랄 말고.”
“생명체의 생체 전기를 먹는 생물입니다. 척수 레벨에서 방출되는 보상 신호를 원해요. 제가 더 강한 전기 신호로 쫓아내겠습니다.”
마리는 더 머무르다가 ‘마지못해’ 움직였다. 전기 신호 계산에 그렇게 긴 텀이 필요할 리가 없었다. 그건 분명 마지못한 움직임이었다.
“신경 정리하고 진통하겠습니다.”
하체가 축 늘어진 채 바닥에 반절 기대어 있었으므로, 마리는 무릎 꿇고 몸을 낮춰서 다가왔다. 말라서 부르튼 입술에 키스한다. 턱과 볼에 뚝뚝 흘러내리는 점액을 손끝으로 슬슬 긁어 닦아내면서. 복잡하게 파헤쳐진 신경망을 도로 닫고 정리했다.
촉수가 계속 드나드는 중이었으니 으윽, 억, 하는 신음이 입을 맞추는 내내 이어졌으나. 정신이 차츰 또렷해지고 몸을 달구던 것들이 천천히 줄었다.
고생했어요. 시선은 온전히 얼굴에 집중한 채, 손이 네바의 몸을 감은 것 중 가장 굵은 걸 잡아당긴다. 인공안구에 이채가 돌고. 닿아오는 손이 엄청나게 뜨거웠다.
“파고든 것부터 꺼내겠습니다.”
허벅지를 팽팽하게 벌린 촉수를 쥐었다. 손끝에서 미세 전류가 흐르는지 액체를 뒤집어쓴 피부도 조금 찌릿찌릿했다. 신호가 교란되며 방향을 잃은 촉수가 멈춘다. 제자리에서 경련하듯 떨었고, 그 틈에 잡아당긴다. 애액에 듬뿍 젖은 촉수가 딸려 나왔다.
촉수는 생명체가 아닌 마리에겐 얼씬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어 오다가도 주변을 피해 돌아갔다. 그러는 모습을 보자 괜히 더 부아가 치민다. 넷, 다섯, ⋯, 가슴을 움켜쥐고 젖꼭지를 자극하던 촉수를 종지부로, 마리는 모든 것을 떼어내 그를 부축해 일으켰다.
다리가 후들후들 떨렸지만, 다행히 일어설 수는 있었다.
“아직 보고된 적 없는 흥미로운 종인데, 표본을 채집해도 될까요?”
마리는 바닥에 끊어진 촉수를 집어 들었다. 군집 형태지만 일부가 떨어져나와도 동일하게 기능하는 것 같습니다. 손끝으로 표면을 쓰다듬자 촉수가 달팽이처럼 꼬물거렸다. 그게 무슨 애완동물이라도 되는 양. 다감한 검지가 촉수를 희롱하듯 놀아준다.
조금 전까지 보지를 쑤셔대던 부위였으므로, 네바는 경멸이 담긴 시선으로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대답이 없자 마리는 눈치 보다가 바닥에 생명체를 조심스럽게 내려놓았다. 촉수는 바닥을 기어가다 케이블 틈 사이로 들어가 버린다.
“됐습니다. 가시죠.”
“무슨 소리야. 캣은.”
“신경에 너무 깊이 침투된 상태입니다. 제가 전기 신호로 제어 중이지만, 생명체 활성화 강도가 높아지고 있어요. 출구까지의 거리를 고려하면 이대로 먼저 나가는 게―”
“데리고 나갈 거야.”
“내부 손상이 생겼을 수도 있어서, 무리하게 이동하면 오히려 상태가 악화됩니다. 이 생물은 숙주를 최대한 살려두는 편이고, 보급소 일반 인력과 다르게 강화 인간인 그라면 상당히 오랜 시간을―”
“한 번만 더 그런 말 해봐.”
비벼볼 틈이 전혀 없는 단호한 표정에 마리는 입을 다문다. 입술을 오물거리다가 돌아섰다.
네바는 모두숨을 내쉬고 바닥에 떨어진 총을 줍는다.
“캐소드, 들립니까?”
반응이 없었다.
마리는 매달린 캐스의 뺨을 툭툭 쳤다. 너무 늦은 걸까.
“신호 밀어 넣을게요. 혀 안 깨물게 조심하고.”
이, 미친, 씨발, 아!
마리가 그의 양 어깨에 손을 올리자 캐스가 바로 눈을 뜨고 비명을 질렀다. 파직, 쇄골에 박힌 금속 위로 작은 스파크가 튀었다.
이 개 새 끼 야ㅡ!!!
캐스가 퍼덕이면서 마구 비명을 지르자 몸을 감싼 촉수가 모두 후드득 떨어져 내렸다. 쿵. 곧장 수직으로 낙하하며 바닥에 처박혔지만, 전기충격이 오히려 효과가 좋았는지 캐스는 헉헉대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한 걸음. 마리의 멱살을 움켜쥐기 위해 앞으로 몸을 내밀자마자 휙 고꾸라진다. 네바는 빠르게 달려가 그를 받쳐 든다. 무릎이 풀린 것 같았다.
유닛은 돌아서서 경로를 개척한다. 이 미친년, 무슨 년, 고래고래 욕을 뱉는 캐스의 바지춤을 올려준다. 팔을 어깨에 둘러 그를 부축한 채 뒤따라 걸어 나간다. 튼튼하게 무장한 조끼들이 부딪히며 소리를 냈다.
괴생명체는 통로에서도 구물구물 따라왔다. 이전보다 훨씬 활발하게 뒤쫓기에 네바 일행은 열심히 발을 재촉한다. 탁탁탁 통로를 내달렸지만 절뚝이는 캐스를 끌고 가느냐고 조금씩 뒤처졌다. 쯧. 혀를 차며 호시탐탐 캐스를 버릴 기회를 노리는 마리 때문에 네바는 캐스를 완전히 들어 어깨에 둘러멘다.
신체 개조로 늘 체급보다 더 무거운 녀석이었기에 끄응대는 신음이 절로 나왔다. 여전히 쾌감이 가시지 않은 하반신이 움찔움찔 떨어댄다. 점점이 액체가 떨어진 흔적을 남기며 최대한 빠르게 퇴각한다.
작은 보급소였지만 나오는 길은 한없이 길었다. 다행히 마리가 통로를 조작하며 돌아 나온 경로를 계속 잠가 괴생명체가 쫓아오는 속도는 더뎠다.
“네바. 수색 전부 끝났습니까?”
앞서가던 유닛이 물었다. 더 습득할 건 없는지 여쭤봅니다. 그냥 나가. 더 볼 것도 없어. 네바는 이를 악문 채 대답했다.
“사흘 정도 지나면 소화를 마치고 첫 진입 당시와 비슷하게 비활성화 상태로 변할 확률이 높습니다. 수색을 더 원하시면 70시간 뒤에 재시도를―”
“더 볼 것 없다고. 터트릴 수 있으면 터트려. 연료 탱크 꽉 차 있더라.”
“하지만 아직 보고되지 않은 생명체인데―”
앞으로 달려가면서 유닛이 뒤를 돌아본다. 네바의 부릅뜬 눈을 본 그는 다시 앞을 봤다.
“탈출 후 폭발하도록 조정하겠습니다.”
도킹 연결부가 코앞이었다. 마지막 남은 힘을 쥐어짜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디뎠다. 당장이라도 발이 푹 빠져서 밑으로 추락할 것 같은 감각을 이겨내고 연결 통로에 들어왔다. 그가 들어오자마자 뒷문이 봉쇄된다. 기익, 도킹이 풀리며 기압이 빠져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점액을 닦고 중화하기 위한 소금물을 받아두었습니다. 따뜻한 물에 몸을 담그면 회복에 도움이 될 겁니다.”
“나중에⋯,”
힘이 다 빠져 캐스를 바닥에 떨어트린다. 묵직한 수박이 떨어지듯 그가 바닥을 한 바퀴 데굴 구르고 신음했다. 네바도 그 앞으로 풀썩 엎어졌다.
가물거리던 정신이 뚝 끊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