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업그레이드
Volume 2
19. 업그레이드 Upgrade, 2018
이 미친, 마리가 가슴에 올라타 목을 조르자 캐스가 있는 힘껏 몸을 비틀었다. 손목을 떼어내려 시도했지만 완력으로 덮치는 유닛을 막을 수 없었다. 캐스가 펄떡거리며 발버둥 쳤으므로 셔틀이 물 위에서 심하게 흔들려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팔을 뻗어 얼굴을 밀쳐내도 마리는 미동 없이 그를 짓누른다. 손가락 끝의 압점이 정확히 기도를 압박해 캐스의 호흡을 통제했다.
“왜 이래?”
네바는 헐레벌떡 일어나 마리를 떼어낸다. 출렁거리는 물 위에서 셋이 엉겨 붙어 한참을 씨름했다. 네바는 퍼덕거리는 캐스의 다리에 머리를 얻어맞아 옆으로 튕겨 나간다. 그가 침을 질질 흘리며 죽어가기 직전에 겨우 마리를 분리하는 것에 성공했다.
캐스는 씩씩대며 벽 끝으로 기어간다. 은은해져 가던 목의 상처 위로 선명한 손자국이 또 남았다.
“썅, 이거 완전 상습범이네.”
구해줘도 지랄, 태워줘도 지랄, 캐스는 빽빽거리며 고함을 질렀다. 너 내가 죽이려 들면 어쩐다고 했더라?
“당신이 네바를 죽일 수 없다는 건 이미 확인을 마쳤습니다. 저는 네바가 위험할 행동은 하지 않으니까요.”
옥신각신하는데 또 모르는 소리가 나온다. 네바는 눈을 홉뜨고 둘을 째려본다. 마리는 캐스의 말을 완전히 무시한 채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네바를 돌아봤다. 눈을 깜빡이는 속도가 약간 어색했다.
“배신 전적이 있는 사람과 함선에 같이 탈 순 없습니다.”
야, 나를 이렇게 엮어 놓고 버리고 가시겠다? 리조트 나오는 동안은 쓸모 있으니까 살려두고? 거센 삿대질이 이어진다. 뭐라도 말 좀 해봐, 네바. 흔들리면서 생긴 파도가 계속해서 뱃전을 때렸다.
“날 죽이려고 했어?”
“아이씨. 블러핑 모르냐고! 저번에 쟤가 당장 날 죽이겠다고 날뛰니까 니 백—,”
마리가 다시 캐스에게 달려든다. 켁, 이게 진짜! 캐스는 양 주먹을 쥐어 유닛의 등을 강하게 내려친다. 마리는 지지 않고 멱살을 잡고 고개가 돌아갈 만큼 거세게 턱을 후려쳤다.
네바는 바닥을 뒹굴며 툭탁거리는 둘을 또 떼어놓는다. 가운데에 버티고. 양 가슴팍을 손으로 밀어낸 채. 더 버티면 둘을 한 대씩 쥐어박으려고 했는데. 그런 살기가 느껴졌는지 사람과 유닛 하나가 씩씩거리며 일순간 멈춘다. 손톱 밑에 짧게 돋아난 칼로 얼굴을 할퀴려던 마리가 손을 내려놓았다.
“그만. 이러다 알아서 우리끼리 자멸하겠다. 캐스, 넌 잠깐 가만히 있고, 마리 너는.” 하아. 네바는 침음을 삼키고 거의 어린이를 타이르듯 문장을 이었다. “나한테 의견 물어보라고 했지. 배신자를 매번 극단적으로 죽일 필욘 없어. 그냥 갈라지는 정도도 충분하고.”
맘만 같아서는 같이 패주고 싶은데. 유일하게 이성이 남은 사람의 의무를 짊어지고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뭘 갈라져. 날 두고 이륙할 생각 하지 마.”
캐스는 으르렁대며 위협하려다 마리의 눈빛을 보고 살짝 수그러든다.
“갈라진 그가 생포되면 저희 함선 위치가 발각될 수 있어 방법이 그것뿐이었습니다. 증거는 모두 없애는 편이 좋으니까요.”
마리는 잠시 망설이다 변명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대답이 바로 돌아오지 않는다. 네바는 불쌍한 척 순진한 얼굴을 하는 유닛을 빤히 바라본다.
“내가 이미 뜬 함선 위치를 어떻게 아냐고. 저 여우 새끼 사람 죽이려고 비약이 아주 그냥.”
캐스는 뒤늦게 목을 문지르며 괄괄거렸다.
“… 캐스 임플란트에서 제 쪽에 주기적으로 신호를 보내게 되어 있습니다. 은하망에서 제 신호를 추적하는 비콘 알고리즘을 짜 뒀으니 금방 함선 위치를 잡아낼 단서가 될 겁니다.”
우물쭈물하던 유닛은 네바에게 조용히 소근거렸다. 귀가 밝은 캐스는 네바와 동시에 물었다.
“뭐라고?”
“제 작품이니까⋯, 모니터링한 로그를 받아보고 싶었습니다. 일종의 서명으로요.”
“너 씨발 내 몸에 영역표시라도 했다는 거야? 왔다 갔다고? 내 몸에??”
그걸 은폐하기 위해 죽이려 들었다고? 감정이 실린 팔은 조준점을 빗나간다.
마리는 가드를 올려 캐스의 두 번째 공격을 가까스로 막아낸다. 이번엔 마리에게 덤벼드는 캐스를 떼어내야 했다. 네바는 팔뚝으로 캐스를 꽁꽁 감아 겨우 진정시킨다. 한참 이어진 섹스와 전투로 지친 몸인 게 천만다행이었다. 흥분한 캐스를 진정시키는 건 항상 어려운 일이었으니까.
씩씩거리는 숨소리가 울린다. 유닛은 접시를 깬 강아지처럼 물끄러미 뱃전에 튀는 물방울을 봤다. 이렇게 바로 문제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조그마하게 사과 같지 않은 사과를 남기고. 네바는 한숨을 길게 내쉬고 여전히 캐스를 안은 채 물었다.
“전에 수리했을 때 넣은 거야?”
“… 네.”
그는 한참을 꾸물거리다 긍정의 답을 내어놓았다. 네바의 저 표정 앞에서는 솔직해야 반이라도 간다는 걸 학습한 이후였다.
하이고. 저 새끼 때문에 미치겄다. 사피야에게 찍힌 이상 강제로 함선을 타는 선택지만 남은 캐스는 네바의 품 안에 늘어진다. 힘을 쫙 빼고 너른 가슴팍에 안겼다. 볼을 일부러 큼직한 가슴에 비비며 징징댔다. 당장이라도 떼어놓고 싶은 기색이 역력한 마리의 입술이 옴죽거린다.
“올라가면 비콘 삭제해.”
“… 네.”
또 못미더운 답변이 흘러나온다
“곧 도착하니까. 제발 위에 올라가서 해결하자. 또 서로 죽이려 들면 둘 다 내 손에 죽는다.”
“앞에 사람 6명 있습니다. 전원 무장.”
무장 인력을 마주친 건 셔틀에서 내린 지 5분도 채 지나지 않아서였다. 골목 사이로 몸을 낮춰 그들을 파악한다.
- 10시 방향에 유닛 2기.
파악하기 무섭게 대응청에서 나온 유닛도 가세했다. 서로 다른 동선으로 움직여 마주치기 직전이었다. 그나저나 군용 통신으로도 감정을 전달할 수 있었나. 머릿속에 울리는 목소리에서 심통이 진하게 배어 나온다.
“마리, 유닛 신호 교란해서 저쪽 공격하게 할 수 있겠어?”
“가능합니다.”
신호 주시면 시작하겠습니다. 두 사람은 골목 안쪽에 은신해 공격할 타이밍을 노린다. 네바가 손짓하자 회수반 둘이 총구를 돌려 앞장서 탐색하던 사람 둘을 쏜다. 방탄조끼로 방어한 그들은 바로 궤적을 파악하여 유닛에게 달려들었다.
소음으로 고개가 돌아간 경호원은 캐스가 목덜미를 가격해 치워냈다. 네바 역시 주의가 분산된 경호원 한 명을 꽉 붙잡는다. 덩치가 상당했기에, 의체 다리를 앵커 삼아 고정력을 극대화해 그대로 벽에 가져다 박았다. 쿵, 벽돌이 무너지며 먼지가 쏟아져 내린다.
나머지 사람들이 덤벼들어 혼전이 시작됐다. 네바는 모서리에 바짝 붙어 숨었다가 다가오는 경호원을 잡았다. 손목을 비틀어 총을 빼앗고 그대로 건너편의 동료를 쐈다. 타격을 받은 상대가 황급히 엄폐하는 동안 박치기로 붙잡은 이를 쓰러뜨린다. 이걸로 셋. 펌웨어 업그레이드가 헛된 일은 아니었는지 확실히 전투 중 반응 속도가 빨랐다. 네바는 어깨띠를 뜯어 소총을 입수한다.
반대쪽엔 캐스가 움직였다. 날아온 총알로 상황을 파악하던 경호원의 뒤를 급습한다. 재고 따질 것 없이 그대로 그를 들어 올려 유닛 방향으로 던졌다. 둘이 뒤엉켜 주변의 물건들을 박살 내며 굉굉한 소음을 낸다. 네바는 필요 이상으로 요란뻑적지근하게 움직이는 그를 째려봤다. 캐스는 먼지구덩이 속에서 화풀이를 마친 손을 털었다. 어쨌든 남은 건 둘.
다른 하나는 회수반이 해결해 줬다. 남은 하나는 어디⋯, 순간 고개가 앞으로 엎어진다.
뒤이어 머리가 있던 자리로 아슬아슬하게 총알이 지나갔다.
반사신경이라기엔 자의가 아닌 움직임에 가까워 네바는 두 번 당황한다. 고민할 시간은 사치였으니 일단 허둥지둥 옆의 지형지물을 들어 엄폐했다.
총이 날아온 방향에 한 남자가 섰다. 겨눈 총이 뜨겁게 불타오르는지 그가 덴 듯 총을 떨어트렸다. 표정이 이상했다. 울그락푸르락하면서. 꼭 터질 것처럼 얼굴 표면이 울렁댄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옆에서 캐스가 덤벼들 때, 남자의 머리가 진짜로 터졌다.
펑, 하고.
주인을 잃어버린 몸이 툭 툭 무릎 꿇으며 단계적으로 바닥에 떨어졌다. 총과 함께 검붉은 뇌수 바닥을 뒹군다.
당황한 캐스는 그대로 그의 피를 뒤집어썼다. 사방팔방으로 그의 신체였던 살과 뼛조각이 흩뿌려졌다. 핑. 네바는 날아온 것을 본능적으로 받는다. 이빨이었다.
으. 진저리 치며 손에 들린 이빨을 멀리 내던졌다. 캐스는 위치가 발각될까 고함도 지르지 못한 채 침을 뱉고 눈을 씻어내며 야단이었다.
“또 너지?”
그는 한 치의 의심도 없이 마리를 쳐다본다. 네바 역시 황급히 마무리된 상황에 얼떨떨하게 그를 봤다. 마리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 그런 능력도 있었어?”
마리는 처음 이 장소에 진입하며 은신했던 시작점 그대로였다. 전투는 제법 안으로 들어왔기에 거리가 상당히 멀었다.
“아무나 터트릴 수는 없고, 강화 신체라 가능한 겁니다. 원격으로 신경 임플란트에 과신호를 쑤셔 넣어서요.”
폭발 반경이 넓을 것 같아 실내나 근처에선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온순한 목소리가 설명을 잇는다. 마리는 가로막았던 판자를 치우고 앞으로 나왔다. 모기 한 마리 잡은 것처럼 대수롭지 않게 뚜벅뚜벅. 바로 그 강화 신체를 가진 캐스와 네바는 얼떨떨한 시선을 교환한다.
직전에 누가 몸을 마음대로 움직인 것 같았는데. 사람 머리를 압력솥처럼 터뜨려 피바다로 만들어버린 유닛은 의문을 말끔히 까먹기에 좋은 소재였다.
경호원이 회수반과 싸워 하나를 처치했기에, 남은 건 한 기뿐이었다. 신호를 교란해 짧은 정지가 생긴 동안 캐스와 네바가 관절을 아작내서 던져놓는다. 누가 보기라도 할까 황급히 셋은 공간을 떠서 함선 주차 지역으로 들어갔다.
넓은 지대에 닿기 전 난전이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기껏 습득한 총은 탄환이 별로 없어서 거의 둔기처럼 써야 했다. 네바는 기척을 죽이고 마지막 사람의 머리를 개머리판으로 내려쳤다. 강화 신체는 한 팀에 많아야 한둘이었으니, 전투 훈련을 아무리 받아도 민간인은 둘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물론 아무리 간단했어도 전투는 전투라. 몸이 한계에 다다른다. 탁 트인 개활지를 앞에 두고 피로가 누적된 셋은 상태를 정비했다.
피범벅이 된 캣은 어느 틈엔가 고인 물로 얼굴 앞쪽을 씻어냈다. 밝은색 머리카락과 재킷은 여전히 핏빛으로 푹 절은 상태였지만. 그는 자국이 지워지지 않을 확률이 농후한 재킷을 벗어서 옆으로 던진다.
“못 살아. 비싼 건데.”
두 사람이 전열을 맞추는 동안 마리는 앞에 설치된 대응청의 방어선을 살폈다.
“전방에 포탑이 설치됐습니다. 4기네요. 사각지대는⋯, 없어 보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스스로 확산적 사고를 할 수 없는 멍청한 포탑이 제일 위험한 시점이었다. 인공존재 규제가 관장하지 않는 순수한 무기가 위용을 뽐냈다. 불똥이 잘못 튈까봐 사람들은 전부 철수한 것 같고. 그들을 기다리는 유닛만이 반복적으로 함선 주변을 돈다.
“몇 개 부수면 각이 나와?”
캐스는 엄폐물에 등을 대고 고개만 내민다. 바닥으로 붉은 추적용 레이저가 경고하듯 돌아다녔다.
“장갑이 튼튼해서 지금 화력으로는 무리입니다. 탄환도 얼마 안 남았고요.”
“마리, 네가 무력화할 수 있겠어?”
“네트워크에 연결되어 명령받는 게 아니라 독립 서버로 움직이는 개체입니다. 제가 해킹하려면 물리적으로 가까이 닿아야 해요.”
셋이 고개만 내민 채 아무 말이 없었다. 레이저는 광풍처럼 쉬지 않고 바닥을 쓴다. 일찌감치 시동을 걸어 둔 함선 불빛만 반짝거렸다. 끽해야 몇백 미터 남았는데. 도시 내부에 포진했을 부대가 곧 근방으로 몰려들 시간이었다.
“우리가 양쪽으로 유인하는 동안 네가 뛰면?”
캐스는 방향을 가리켰다. 판단이 교란되면 사각지대가 생기잖아. 마리는 고개를 기울였다.
“이미 계산해 봤는데 0.8초 생깁니다. 강화 신체여도 저 구경이면 한 발이면 끝나요.”
네바가 위험할 수도 있는 방법은 고려하지 않겠습니다. 단호하게 끊자 캐스가 투덜댔다.
“그럼 네가 직접 뛰어. 탄환 타이밍 계산해서 피할 수 있지 않아?”
“그게 제일 빠르겠네요.”
회수반은 교란 처리했습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마리가 몸을 일으켰다. 팔을 잡을 새도 없이. 그가 주차 구역 너머로 발을 내디뎠다. 근처의 포탑 두기가 즉각 반응했다.
그 사이로 마리가 달렸다. 포탑 사격 거리와 반응 주기 사이의 공백을 밟으며 지그재그로 뛰었다. 굳이 사람처럼 움직이지 않자 반응 속도가 무시무시했다. 기이하게 움직이는 유닛을 보고 당황함도 잠시, 레이저가 발밑을 스치고 조준이 반 박자 늦는 게 보였다. 어쩐지 될 것 같은 기분에 네바는 침을 삼킨다.
쿵.
그러다 빛이 번쩍이며 마리가 그대로 고꾸라졌다. 소리도 없고 총성도 없었는데. 전원이 나간 것처럼 몸이 접혔다. 무거운 몸체는 관성에 밀려 바닥을 두어 바퀴 구른 다음 멈췄다.
“EMP도 뒀나 본데.”
캐스가 한숨 쉬며 중얼거렸다. 네바는 저도 모르게 앞으로 달려 나간다. 무작정 집어 든 맨홀 뚜껑이 탄환을 막았다. 구멍이 뚫린 철 덩어리를 들고 구르며 얼마 가지 못한 마리 옆에 붙었다. 어깨를 붙잡아 질질 끌어다 가장 가까운 차량 뒤로 밀어 넣었다. 포탑이 근처의 아스팔트를 마구 쫀다. 뒤늦게 탄환이 스친 볼에서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포격이 쏟아지는 가운데 마리의 몸은 반응이 없다. 익숙한 모습대로 축 늘어졌다. 무겁고, 초점 없고. 무섭게 튀는 파편들 사이에서 그저 열만 남은 유닛을 끌어다 차량 뒤에 기댄다.
“이 미친 놈들. 둘 다 코앞에서 죽을 셈이야?”
너네 없으면 함선 조작도 못 한다고. 캐스가 욕을 남발하며 뒤따라 굴러들어 왔다. 그를 겨냥한 탄이 차량 유리를 깨서 네바는 더 몸을 낮춘다.
EMP는 주기적으로 쏘는 것 같아. 5분 간격으로. 캐스는 차량 뒤로 들어오자마자 마리의 가슴을 마구 친다. 복잡다단한 감정까지 깊게 실렸지만. 제세동을 빙자한 화풀이에도 그는 돌아오지 않았다.
셋이 쪼르르 숨은 차량 뒤편에서 귀중한 시간이 흐른다. 자동으로 빙빙 돌아가는 레이저만 차체 앞면을 핥고 지나갔다. 늘 무언가를 계산하거나 관찰하거나 떠드는 유닛이 가만히 앉아만 있었다. 얼굴 근육 하나 움직이지 않는 채로.
네바는 걱정과 답답함을 담아 뺨을 가볍게 쳤다. 그는 여전히 아무 반응이 없다. 이런 일을 두 번이나 반복하게 되다니.
3분쯤 지났을까. 마리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그다음이 눈꺼풀. 눈을 뜨고 초점이 천천히 돌아왔다. 입술이 움직이는 데는 조금 더 걸렸다.
“위험한 행동은 삼가시길 바랍니다, 네바.”
“네가 할 말이냐?”
마리는 천천히 한 손을 뒤집었다가 돌렸다. 시스템 재구동을 시도하는 것 같았다.
“직접 뛰어가는 건 안 되겠네요.”
누가 봐도 아는 말을 굳이 한다. 캐스는 뻥 뚫린 차량의 창문 너머로 계속 전방을 살피며 물었다.
“다른 방법 없어? 지금 우리 위치 파악하고 몰려드는 것 같거든. 이대로 널브러졌다가 포위되면 끝이야.”
긴박한 목소리가 지나고. 뭔가 생각난 듯 마리가 입을 몇 번 열었다가 닫았다. 고개를 혼자 주억거리더니 시선이 마주치자 급하게 피한다.
하. 쟤가 먼저 시선을 피하는 일은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건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