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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니어 다크

Volume 3

•DJG•8 min read



2. 니어 다크 Near Dark, 1987



연결 통로를 벗어나 작은 방에 서서 코모란트를 내려다본다. 미리 약속해 둔 인부 몇 명이 함선 주위를 둘러쌌다. 영구 음영 지대로 함선을 이동 주차해 줄 사람들이었다. 어설픈 유압 장비를 착용한 사람들은 꼴랑 네 명이다. 경로를 이탈하지 않도록 양옆에 배치한 인력을 제하니 단 둘만이 함선을 이끌었다.

노출은 최소 인원인 게 좋긴 하지만, 저게 되나? 네바는 불안한 마음으로 그들을 지켜본다. 검은 하늘에 붙박인 별도 한 치의 미동 없이 정거장을 내려다본다. 대낮처럼 강한 조명을 켜도 빛이 산란하지 못하는 하늘엔 그저 심연처럼 깊은 어둠뿐이었다.



“진짜 맨몸으로 끄는 거야?”

앞에 선 두 사람이 마그네틱 부츠를 바닥에 단단히 고정하고 매어둔 로프를 당겼다. 육중한 함선은 1분이 넘도록 끄떡도 하지 않았다.

“질량이 커서 움직이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겠지만. 에어캐스터로 공중에 띄웠으니 이론적으로는 손가락으로도 움직일 수 있습니다.”

유닛의 설명이 떨어지기 무섭게 함선이 아주 미미하게 옆으로 움직였다. 고압가스를 이용해 손톱보다 더 얕게 뜬 코모란트가 서서히 미끄러진다. 각도가 돌아가며 생긴 그림자가 칼로 그은 듯 선명했다. 조명을 받는 선수는 여전히 눈이 아리도록 흰데. 뒤부터 칠흑 같은 어둠에 뭉텅뭉텅 먹혀들어 간다.

“앞에서 까딱 잘못하다간 관성에 깔려서 토마토 죽이 되겠는데.”

눈으로 보고도 믿어지지 않는 광경이었다. 우주가 만들어낸 극단적인 명암비에 눈이 시려 찡그린 채 그들을 주시한다.

“멈추는 것쯤은 알아서 하라고 돈 낸 거니까.”

귓바퀴 연골에 피어싱처럼 박아둔 통신기가 진동한다. 고막이 아니라 두개골을 직접 울리며 큼직한 목소리가 들어왔다.

“수신 감도 좀 낮추시죠.”

같은 목소리를 수신한 마리가 틱틱댄다. 넌 알아서 필터링할 수 있잖아? 캐스는 목에 조그마하게 부착한 후두 마이크를 문지르며 히죽 웃었다.



떠나는 함선을 배웅하고 본격적인 주거 지역에 들어간다. 소행성 암반 지역에 들어가기 전부터 온갖 컨테이너와 파이프가 연결되어 위아래가 없는 개미굴 같았다. 복잡한 구조에 비해 오가는 사람은 현저히 적다. 대부분이 외곽에 흩어져 작업 중일 시간이라 이거지. 마리는 리프에서 오랜 시간 지내며 팔다리가 길쭉해진 사람들이 휴식하는 걸 유심히 바라본다.

“여기선 그러다 시비 털린다.”

네바가 작은 목소리로 주의를 준다. 저런 상태라면 중력 행성에서 막 복귀한 저와 부딪히기만 해도 날아가 버릴 텐데요? 마리 역시 소곤거리며 답했다. 상처에 붙이는 밴드만큼 납작한 후두 마이크가 인조 성대의 미세한 음성 진동을 포착하여 전송한다.

그러니 죄다 주머니에 무기 쑤셔 넣고 다니지. 일부러 추진기를 이용해 갈지자로 날아다니던 캐스가 끼어든다. 기계공 주머니에 든 건 전부 무기거든. 네바도 덧붙이다 아차, 한다. 무기 얘기를 들은 유닛의 눈에 호기심이 한층 더 차올랐기 때문이었다.

“걍 마스크 끈 그어버리면 알아서 해결돼.”

외곽이면 케이블 끊어서 공중으로 날리면 되고. 반작용 때문에 총기류 사용이 불가능하니 무엇을 무기로 사용할지 진지하게 고민 중이던 네바에 비해, 캐스의 해답은 간편했다. 얼굴을 반절 엉성하게 덮은 산소마스크 위로 두 눈이 음흉하게 접힌다.



무거운 통로 문을 지나 중심 지역에 들어가자 약한 중력이 잡혔다. 지구 표준 기준의 60%였지만 골이 울려대도록 몸이 튀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마스크를 내리자 존재를 잊고 있던 복잡한 냄새가 희박한 산소입자와 함께 훅 끼쳐 들어온다.

제일 먼저 들른 곳은 용품점이었다. 캐스가 배낭 안에 든 더러운 물병을 몇 개 꺼냈다.

관할이 애매하니 연방 크레딧도 통용되지 않는다. 추적하기 용이한 전자 지갑은 물론이고 현지 화폐를 발행할 주체도 없어 거래는 오직 물물교환으로 이루어졌다.

스크랩 리프에서 항상 부족한 자원은 당연히 물이었다.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물이 없으니 늘 외부 수급에만 의존했다. 야, 거지새끼처럼 다녀야 눈에 안 띄어. 캐스는 마리가 야무지게 싸놓은 짐을 죄다 풀어헤치고 깨끗한 물에 생활오수를 섞어 어중간한 물을 준비했다. 거스름돈 같은 잔잔바리 물병을 테이블에 좌르륵 깔아 둔다.



셋 중 가장 거지새끼에 가까운 빈털터리가 의기양양하게 상인에게 인사한다.

“데브리 몰려들기 전에 운 좋게 오셨군.”

덩치 큰 외지인 무리가 들어오자 머리를 꽁지로 묶은 상인이 관심을 보인다. 공용어였지만 투박하고 낯선 억양이었다. 그들을 반기며 의자에서 일어나자 네바보다도 키가 큰 허우대가 드러났다. 연골에 하중이 걸리지 않는 채로 오래 생활한 만큼 호리호리한 체형을 지닌 사람이 많았다. 자신보다 더 키가 큰 여자는 드물기에 캐스가 빨간 머리카락을 올려다보며 활짝 웃는다.

“그것 때문에 잠깐 쉬어가려고. 산소 필터 챙겨주고…, 일 좀 얻을 수 있을까?”

“인력은 늘 모자라지. 폭풍 전에 구조물 조여놓을 사람 필요한데, EVA(*Extravehicular Activity: 우주 선외 활동) 가능해?”

캐스는 확인도 않고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인다. 함선 수리공으로도 일했던 네바는 마리를 살폈다. 가능합니다. 그가 주변에는 들리지 않을 감도로 성대만 움직여 대답했다.

‘서포트형 유닛에 EVA까지 별 기능을 다 넣었네.’

‘고립형 프로젝트에선 모두가 3인분은 해야 하고, 그건 유닛도 마찬가지거든요.’

둘이 시시덕대는 동안 캐스가 협상을 마친다.

마스크 교체용 필터 한 아름에 잡다한 생필품이 계속 쌓인다. 캐스가 음식 튜브를 담는 동안 네바는 육포처럼 말린 음식을 한 줌 쥐어 올렸다. 마리도 늘어놓은 물건 사이에서 공업용 벨크로 더미를 골라 올린다. 흠. 그건 서비스로 줄게. 상인은 미끈하고 곱게 생긴 금발을 빤히 보다 고개를 돌린다.


신출에게 주어진 외부 작업은 단순했다. 데브리 폭풍이 일기 전 외곽 구조물을 점검하고, 묶어 놓으면 끝. 네바는 낡고 해진 작업 지시서를 들고 현장 브리핑을 들었다. 선체 표면을 훑어 연결된 클램프마다 볼트를 확인하고, 규정 토크에 못 미치면 조이고, 유격을 확인하면 잠그라고.

각종 여분 부품과 공구를 모두 몰아넣은 작업 가방을 받는다. 누가 이렇게 무식하게 한 바구니에 담지. 아무리 중력이 없다지만 가냘픈 케이블로 이동하는 외부 작업에선 너무 거추장스러운 크기였다.

가방의 크기가 왜 그렇게 큰지는 작업 중간에 해답을 얻었다. 선체가 연결된 구조물이 제각각이었다. 만들어진 시대도 공간도 다양한 인공물이 우주 곳곳에서 흘러 들어와 축적된 곳이니. 맞는 도구를 찾는 시간이 묵직한 열쇠 꾸러미를 뒤지는 것처럼 한 세월이었다. 으. 이건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없어진 규격 아닌가. 네바는 툴툴대며 근처에서 작업하는 마리를 구경한다. 캐스는 고급 인력답게 고급 일을 하겠다며 중심 지역에서 갈라섰다.



선외 활동을 시작한 마리는 두 번 벽에 부딪혔다.

첫 번째는 이동 방향을 잘못 잡아 둥실 뜨다가 선체 모서리에 어깨를 박았고, 두 번째는 공구 가방을 당기다가 반동으로 밀려 튀어나온 곳에 정수리를 박았다. 캐스가 봤다면 두고두고 놀렸을 텐데. 한 번 경험한 실수는 반복되지 않았으니 이후로는 순탄했다. 오히려 맞는 공구를 찾는 속도가 빨라 네바를 앞선다. 표면을 기어다니는 동안 발밑으로 보이는 리프의 전체 모습을 구경하기까지 했다. 층층이 돋아난 선체와 컨테이너는 거대하고 난잡한 지층 같았다.



세 시간을 꼬박 쉬지 않고 작업하다 휴식 캡슐에 들어간다. 함선 탈출용 포드를 개량한 터라 중력이 없는 건 매한가지였지만, 온도와 산소가 적정 수준으로 유지되어 걸리적거리는 마스크를 벗을 수 있었다. 네바는 외우주용 헬멧을 벗고 한숨 돌린다.

“앞으로 두 시간이면 배당 구역 끝나겠네. 내일도 이어서 작업하게 내려가지 말고 휴식 지역에서 자자고.”

먹고 좀 쉬자. 네바는 상점에서 분배한 식품 튜브를 꺼낸다. 마리는 벨크로로 꼼꼼하게 자기 물건을 벽에 붙여 정리했다. 아무것도 떠서 돌아다니지 않도록 갈무리하곤 가방에서 실리콘 튜브를 가져와 네바 것과 바꾼다.

“함선에서 음식 준비해 뒀습니다.”

손에 쥐어진 실리콘 튜브엔 아직 미지근한 온기가 남았다. 함선에 보온 튜브도 있었나. 겉면을 조물거리며 메뉴를 가늠해 본다.

“소풍 나왔어?”

빨빨거리며 짐 싸더니 도시락까지 쌌네. 말투와 다르게 함선 음식이 등장하자 반색한 건 사실이었다. 튜브를 열고 쭉 빨자 걸쭉하게 조리된 고기 스튜가 올라온다. 푹 익어서 결대로 찢어지는 질감은 식품 재조합기가 내기 어려운 부분이었으니 그의 솜씨였다. 채소도 오래 조리해 빨아먹기 간편했다. 네바는 포슬포슬 녹아내리는 당근과 감자를 혀로 눌러 짓이긴다.

“직접 요리한 거야?”

“네.”

뿌듯한 광대가 솟는다. 내려가면 육체노동을 많이 할 것 같아서. 근손실을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단백질 비율을 평소 식단보다 높였습니다. 기껏 조리한 음식을 캐스에겐 주기 싫어 조용히 제 짐에만 챙긴 것 같았다. 양은? 3사이클 분량입니다. 그 이후는 상해요. 네바는 뜻밖의 음식을 먹으며 얇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었다.



남은 작업도 순탄하게 이어졌다. 드문드문 우주 쓰레기가 날아와 폭풍 직전임이 체감됐다. 내일 작업 마치면 후딱 안전지대로 대피하자고. 마리가 속력을 내서 일한 덕분에 네바는 일찍 중간보고를 넣고 함선 휴게실로 진입했다.



“… 하. 어쩐지 저렴하더라니.”

기껏 고른 숙소 크기가 캡슐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탈출 포드보다는 크고 멀끔한 곳에서 잘 수 있다기에 이 구역을 고른 건데. 방을 절반으로 줄여 만든 듯 여자 둘을 품기엔 턱없이 부족했다. 산소 낭비를 최소화하기 위해 천장 공간도 줄여 거의 정사각형 밀실이었다. 튼튼한 격벽으로 둘러싸여 불안한 진동이 넘어오지 않는다는 장점만이 유일했다.

“오붓하니 좋은 것 같습니다.”

마리는 유닛권이 유린되는 사이즈에도 개의치 않고 둥실둥실 떠다니며 짐을 열심히 붙였다. 네바는 작업복을 훌렁 벗고 땀에 젖은 반팔만 남긴다. 하다못해 침낭이나 그물침대도 없이. 셀프로 어딘가에 몸 붙이고 자야 하는 공간이었다.



“씻겨드릴까요?”

지치지 않는 유닛은 단둘만 있으면 뭐든 즐거운지 쾌활하게 물과 세정 튜브를 꺼낸다. 가방엔 음식 말고도 정화된 물이 한 보따리였다. 함선에선 매일같이 씻겨주겠다고 따라다녀도 거절하고 공용 욕실에 들어가면 그만이었는데. 이곳은 거울이 없으니 혼자 씻을 수는 없었다. 부탁할게. 네바는 번으로 꽁꽁 묶어둔 머리를 푼다. 머리가 기다렸다는 듯이 사방팔방으로 뻗치며 퍼졌다.

가까운 손잡이를 잡아 몸을 고정하고, 마리는 날아오자마자 그의 허리에 다리를 감아 반작용을 통제한다. 부채꼴이 된 머리카락 사이사이를 만지며 긴 노즐로 물을 적셨다. 물이 표면장력으로 방울방울 머리카락에 달라붙는다. 투명한 막으로 출렁거리는 물이 떠다니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두피를 마사지하며 물을 안쪽으로 펴발랐다.

충분히 물이 스몄을 때 전용 세정제를 짰다. 시원한 폼이 두피에 닿는 게 느껴졌다. 어차피 완벽하게 씻고 헹구는 건 불가능한 곳이니까. 차가운 감촉과 시트러스 향이 상쾌한 기분을 대신한다. 네바는 할 일 없는 손으로 보송한 등줄기를 만지작거렸다.

마지막은 화학 용제가 섞인 세정제와 물을 수건으로 꾹꾹 눌러 닦는 작업이었다. 보드라운 수건이 머리카락을 감싸 물을 흡수한다. 네바는 골몰하는 유닛의 얼굴을 올려다본다. 아니, 내려다보는 건가? 가까운 벽이 곧 천장인 공간에서 한참을 엉겨 붙어 체온을 나눈다.

“몸도 닦겠습니다.”

마리는 손을 뻗어 허공에 띄워둔 물티슈를 집었다.

“여기서부턴 내가 할게.”

그가 뽑은 물티슈를 가로챈다. 또 얼마나 더듬어 대려고. 벽에서 손을 떼자마자 힘을 잘못 주는 바람에 엉킨 두 신체가 옆으로 스르륵 미끄러졌다. 마리가 네바의 팔까지 당겨 공중에서 느리게 몇 바퀴를 구른다. 신경 임플란트가 이런 류의 제로 그래비티 멀미를 면밀하게 보정해서 천만다행이었다. 유닛은 굴하지 않고 가져간 팔을 아이스크림 바를 핥듯 넓게 핥아 올렸다.



“닦는 것도 도와드릴게요.”

“코딱지만 한 혀로 어느 세월에 닦아.”

네바는 무람없는 혀가 청소한 부분을 티슈로 따라가며 닦았다.

“으음. 중요 부위만 닦아도 되고요.”

질척대는 마리를 무시하고 땀이 많이 찬 곳들을 벅벅 문지른다. 옷 밑으로 겨드랑이를 닦는 동안 유닛이 입을 다셨다. 씻는 내내 얽힌 신체가 빙글빙글 돌았기에 결국 그가 손잡이를 붙잡았다. 꾸물거리며 구석구석 닦는 모습을 참을성 있게 지켜보던 그는 드라이 샤워가 끝나자마자 벽을 박차고 움직였다.

그대로 붕 떠서 반대편에 착지하고. 벽에 그를 가둔 채 장난스러운 서늘함을 가장한다.



“주무시는 동안 움직이지 못하게 몸을 결박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