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컴패니언
Volume 2
12. 컴패니언 Companion, 2025
파도 소리가 들리는 해변까지 가서야 노점 하나에 멈춘다. 숯불 위에서 이 지역에서 나는 로컬 어패류가 지글지글 끓었다. 고밀도 환경에 맞춰 껍데기가 과도하게 발달한 덕에 속살이 작았지만, 오히려 농축된 맛이 색다른 풍미를 줬다. 함부로 구웠다간 폭발하기 십상이라 노련한 현지인들만 구울 수 있는 별미였다.
불판 앞에 지역 코인을 올려두자 주인이 쇠집게로 잘 익은 조개를 집어 작은 쟁반에 올려줬다.
“너도 먹어볼래?”
마리는 받으려다 멈칫한다. 껍데기가 아직 시뻘겋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네바는 투박한 손으로 조개의 틈을 벌려 반으로 갈랐다. 기껏 모은 즙이 쏟아지지 않게 한 김 식혀서 건넨다.
“입술에 대고 마신 다음에, 남은 속살을 씹으면 돼.”
“뜨겁지 않습니까?”
“뜨겁긴 해.”
“강화 신체는 이럴 때도 좋은 거군요.”
당연하지. 네바는 주인이 이어서 올려준 조개를 바로 집어서 벌렸다. 입안 가득 농후한 바다 향이 밀려 들어온다. 마리는 옆에 쌓인 천의 용도를 금방 이해하고 다음 조개를 천으로 들어서 쪼갰다. 주르륵. 서툰 동작에 뜨거운 즙이 모두 천으로 쏟아져 흡수된다. 조갯살만 남아 검지로 집어 먹었다.
“어때?”
“미네랄 농도가 높네요.”
“맛있냐고 묻는 거야.”
“두 번은 먹을 것 같습니다.”
네바 역시 두 개를 연달아 먹고 딱딱한 빵을 남은 즙에 적셔 먹었다. 작은 속살은 씹을 게 없이 풍미만을 남긴 채 목구멍으로 사라진다.
“구현율이 진짜 높네요. 대단해.”
불쑥 한 여자가 옆에 다가오며 공용어로 말을 걸었다. 의도가 이해가지 않아 물끄러미 그를 바라본다. 화려한 무늬의 셔츠를 입은 여자는 마리 쪽을 쿡 가리키며 물었다.
“제조사가 어디예요?”
“아르케 파운드리에서 주문 제작했습니다.”
마리는 곧장 조개껍데기를 내려놓고 산뜻하게 웃으며 대신 대답했다.
“거기 맞춤이 완성도가 높다는 소리는 들었지만. 진짜 괜찮은데? 그리고 제작 속도도 장난 아니네. 책 나오자마자 주문한 거예요?”
당신도 굉장히 비슷하게 꾸몄네요. 닮았어. 여자는 네바를 보고 웃으며 마리를 툭툭 쳤다. 손이 슥 내려가면서 엉덩이 위틈을 건드리는 걸 보며 얼굴을 찌푸린다. 가벼운 눈치였지만 여자는 금방 반응하고 손을 뗐다.
“무슨 소립니까?”
“에메르Aimer 외형으로 제작한 거 아녜요? 나도 <귀환불능점> 재미있게 읽어서. 반가워서 말 걸었어요.”
원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자 경쾌하던 여자의 톤도 점점 낮아졌다.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저는 출고된 지 좀 된 모델입니다.”
유닛만이 그를 적극적으로 방어한다. 으흠. 그런가요. 실례했습니다. 여자는 미심쩍은 표정으로 물러났다. 마리는 꿋꿋하게 미소를 유지하며 그를 돌려보낸다.
“방금 뭐였지?”
적당히 꾸벅 고개를 숙이고 사라지는 뒷모습을 본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자기 일행에 섞여서 골목으로 이동했다. “최근 많이 팔린 소설인데, 금발 유닛이 등장해서 착각한 것 같습니다.”
오면서 금발은 많이 본 것 같은데. 께름한 틈을 파고들려 했지만, 순간 위에서부터 떨어지는 빗방울에 대화가 멈춘다. 노점상 주인은 익숙한 손놀림으로 접이식 판자를 펴 숯불이 꺼지지 않게 닫았다. 손짓으로 비를 피할 장소를 일러주며 그 또한 총총걸음으로 사라진다.
이 시간대면 자주 오는 스콜이었다. 후두둑. 네바는 손우산을 만들어 눈가만 가린 채 해변의 바로 뛴다. 마리도 질세라 그의 손목을 잡고 뛰었다.
소나기는 짧은 주제에 굵었다. 얇은 옷이 금방 푹 젖어서, 바의 직원은 그들을 보고 곧장 수건을 꺼내주었다. 내친김에 그칠 때까지 앉아가려고 적당한 칵테일을 주문한다. 직원은 다 알겠다는 듯 미소 지어 보이더니 바다가 잘 보이는 데크로 안내했다. 싯누런 모래 색과 비슷한 나무 데크 안으로 들어가자 주변이 보이지 않게 조경으로 숨긴 공간이 드러났다.
“금방 가져다드릴게요. 수건 더 필요하십니까?”
“두 장만 더 주세요. 감사합니다.”
마리는 본인 몫의 수건도 네바의 머리에 얹었다. 넓은 몸을 닦아내기에 작은 수건 두 장은 부족했다. 곧 감색 해조류 조각이 바닷속처럼 장식된 칵테일 두 잔이 서빙된다. 좋은 시간 보내라며 빠르게 사라지는 직원을 보고 네바는 뒤늦게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등이 한껏 뒤로 젖혀진 해변 의자는 함께 앉아도 공간이 넉넉했다. 네바는 주문한 술을 한입 마신다. 잔이 움직일 때마다 다시마숲 같은 해조류가 춤을 췄다. 맛은 노르스름한 시럽에 어울리는, 감칠맛과 단맛이 강조된 그냥저냥 한 관광지 칵테일이었다.
“닦아드릴게요.”
마리는 몸을 기울여 수건으로 머리의 물기를 먼저 짜냈다. 그의 손길을 묵묵하게 받는다. 머리카락은 물을 머금어 무겁게 내려앉았고. 볼과 목에서 빗물이 뚝뚝 흘렀다.
“너도 닦아.”
“전 금방 마를 겁니다.”
체온이 또 올랐는지 빗물이 닿은 피부에서 미세하게 수증기가 올라오는 것 같았다.
“코어 돌아가는 소리 여기까지 난다.”
“저는 냉각팬이 따로 없는 무소음 설계입니다.”
별 영양가 없는 티키타카가 지나갔다. 마리는 보송한 새 수건으로 바꿔 어깨부터 몸을 꼼꼼하게 닦아준다. 헐겁게 입고 나온 옷 때문에 시선을 어두운 계곡에 빼앗겼다. 네바는 하늘을 닮아 납빛으로 변한 바다로 고개를 돌린다. 마리도 옆에 앉아 그의 어깨에 나지막이 손을 올렸다.
“마사지 해드릴까요? 여기 로컬 네트워크에서 배웠습니다.”
센 악력이 승모근을 움켜쥐었다. 느릿느릿 압점을 이동하며 손가락이 어깨를 마사지한다. 호젓한 공간에 한동안 둔탁한 파도 소리만 이어졌다. 찜찜하게 묻어둔 것을 도로 파헤칠 차례였다.
“보급소에서.” 비가 계속 머리 위 지붕을 두드렸다. “알고 있었지?”
많은 것을 섞어 함축적으로 묻는다. 마리는 애써 부정하지 않았다. 정확히 뭘 알았느냐고 캐물으며 논리 곡예를 시도하지도 않았고. 그저 묵언으로 얌전히 처분을 기다린다.
“왜 나한테 아무것도 없다고 그랬어?”
“캐스는 제가 미허가 유닛인 걸 알아보고 협박하려고 했습니다. 해당 생명체는 숙주를 살려둘 테니 죽이려던 것은 아니었고, 정보를 다른 곳에 발설하지 못하도록 두고 오려고 했을 뿐입니다.”
마리는 침착하게 변명했다. 강화 인간이라면 신경 신호 침입도 버틸 수 있으리라 판단했습니다. 잠시 촉수에 휘말린 채 방치될 캐스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기온을 거스르고 약한 오한이 든다. 때로는 일찍 죽이는 게 인도적인 방법이라는 걸, ⋯, 알려주면 큰일 나겠지.
“그러면 내가 캣을 순순히 두고 올 줄 알았어? 거기에? 그 상태로?”
“합리적으로 설득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날 막을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네바는 어깨를 떼고 그를 돌아본다. 마사지를 멈춘 마리는 눈을 피하지 않았다. 피하는 대신 더 가까워졌다. 쭉 뻗어 펼친 손등에 손을 얹고. 또 이런 흐름으로.
“그렇게 계산했습니다. 틀린 계산이었죠.”
유닛은 숨김없이 오판을 인정한다. 제가 패턴을 분석한 데이터는 현재의 네바를 기반으로 합니다. 그와 지낸 옛 모습이 아니라. 변수를 잘못 넣었으니 잘못된 답이 나왔습니다. 다음부터는 이럴 일 없을 겁니다. 얹어진 손이 손등을 어루만졌다.
거짓말도 자유로워진 그에겐 허울뿐인 문장일지도 모른다. 무슨 대답을 원해서 시작한 대화였을까. 참회와 사과라도 듣고 싶었던 걸까. 원하기만 한다면 당장 울면서 짖고 용서를 빌 유닛한테. 엉뚱한 데 휘말려 몇 번이나 쑤셔진 아랫도리가 또 시큰하다. 네바는 답답함을 한숨으로 흘려보낸다.
“다음에는 적어도 나한테 물어보고 결정해. 이번은 솔직했으니까 참는 거야.”
“사사로운 정에 휘말려 합리적이지 못한 사고를 한다면, … 아닙니다. 다음번에는 물어보겠습니다. 저는 네바 편이니까요.”
설득으로 해결되지 않자 대강 듣길 원하는 말을 뿌려주고 우회한다. 통이 커서 펄럭거리는 셔츠 밑으로 손 하나가 들어왔다. 몸을 닦아주던 손길보다는 덜 조심스러운, 대범한 손길이 그를 당겨 입을 맞췄다. 뜨거운 손끝이 닿을 때마다 몸이 기대감으로 움찔 떤다.
아, 이 학습된 흐름이 문제라는 걸 알았다. 대충 외면하고 싶은 문제를 이런 타이밍에, 이런 방식으로 풀어버리는 게.
얄밉고, 짜증 나고, 의심스럽고, 이제는 떼어내거나 뭐라고 한마디 더 해야 할 것 같은데, 입이 더 떨어지지 않았다. 그가 습관적으로 중추에 엮어 넣는 쾌락 증폭 신호도. 자신만을 바라며 버르르 끓는 손바닥도. 곱 연산은 0을 키울 수 없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그였다.
마지막 자존심이 몸을 뒤집는다. 칵테일로 목을 축이고 돌아누웠다. 옆엔 왕성하게 들어찬 풀숲뿐이었다. 의자 끝에 바짝 눕자 넓은 잎에서 미끄러진 빗방울이 얼굴에 튄다.
마리는 그대로 뒤에서 안아왔다. 팔이 겨드랑이 밑으로 들어와 골반 근처를 천천히 문지른다. 목덜미에 닿은 볼도, 최대한 접촉 면적을 늘리기 위해 다리 사이로 침입하는 허벅지도 하나같이 뜨겁다. 유일하게 그의 감정을 여과 없이 측정할 수 있는 온도가 걸리적거리는 것들을 녹여낸다.
“또 이러네.”
짐짓 무거운 목소리를 꾸며낸다. 셔츠 안에 들어온 손이 민감한 곳을 건드릴 때마다 숨을 들이쉬면서.
“이게 효과가 있으니까요.”
이번에는 확실히 정직한 답변이었다. 뻔뻔한 손이 더 아래로 내려간다. 새그럽게 튀는 빗물을 피해 눈을 감는다. 경추 부분에 입술이 가닿고. 흐으, 새어 나온 소리는 바다가 묻었다.
“캐스가 여기 오면 네바의 마음을 푸는 데 도움이 될 거라고 하더군요. 따뜻하고 좋은 휴양지라고.”
“그런 식으로 꼬신 거였군.”
손가락이 파도처럼 반복적으로 젖은 안을 드나들었다. 그의 움직임을 향기처럼 흡입한다. 열일하는 심장만큼 뒤에 끼치는 숨소리도 가빠졌다. 몸을 웅크릴 때마다 그를 감싸안은 유닛도 같이 구부러지며 몸을 만다. 흥분할 때만 작동하는 그의 인위적인 호흡이 귀에 가깝게 들어왔다.
“마음에 드셨길 바랍니다.”
또다시 남이 짜놓은 판에 말려든 네바는 짜증과 흡족이 뒤섞인 신음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리조트 체크인을 마치고 방으로 올라가기 전 라운지에 잠시 앉는다. 자전이 느린 탓에 해가 기우는 것도 한참이 걸렸다. 통창이 시원시원해 하늘의 변화보다 더 빠르게 바뀌는 도시 분위기가 한눈에 보였다. 지열 배출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수증기가 주홍색으로 번져간다.
드문드문 소파 간 간격이 넓고 쾌적했다. 그 널찍한 여유를 다 버려두고 유닛은 그의 허벅지에 앉은 상태였지만. 벌써 이 도시의 문법을 파악한 마리는 풍경에 녹아드는 수단을 빠르게 익혔다. 무겁다고 밀어내도 막무가내였다.
“실례합니다.”
단정하게 차려입은 여자가 정중한 말투로 찾아왔다. 50대 중반으로 보였는데. 사람 자체는 느긋하고 평범해 보였지만 뒤쪽에 그의 동태를 살피는 보안 인력이 보였다. 눈짓하자 직원이 금방 얼음통과 샴페인 한 병을 가져다 내려놓는다. 절도 있는 동작으로 코르크를 따니 조용하게 김이 빠졌다.
“<귀환불능점> 작가님 맞으시지요. 네바 웨스트님이요.”
정말⋯, 과감하시네요. 한눈에 알아봤습니다. 그는 설렌 듯 운을 떼었다. 네바는 은근슬쩍 시선을 피하는 마리를 올려다본다. 또야. 두 번의 우연 정도는 넘어가 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상대방이 정확하게 이쪽 풀네임을 불렀잖아.
“… 무슨 일이시죠.”
“사피야 마히르-힙시입니다. 이 리조트 컨소시엄 이사예요. 제가 정말 열성 독자라 따로 인사드리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주인님은 굉장히 사적인 분이라 공개적인 노출은 꺼리시거든요.”
더는 거짓말을 쌓을 수 없다. 계산을 마친 마리는 손을 뻗어 그가 내민 홀로그램 명함을 대신 낚아챘다. 그리고 어리광을 부리듯 네바의 목을 끌어안고 질척하게 몸을 붙였다. 눈치껏 비켜달라는 투로. 네바는 최대한 이마의 주름을 늘리지 않게 노력하며 보이지 않는 안쪽에서 그의 옆구리를 꼬집는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직접 왔어요.”
사피야는 서두르지 않았다.
“내일 메인 저녁에 마이나드에서 식사라도 대접하고 싶습니다. 음식도 좋고 자리도 편안할 거예요. 불필요한 노출은 없으리라 약속드립니다.”
볼룹타스 내의 식당은 대체로 쉬는 시간 없이 무한하게 돌아간다. 그래도 관습적인 식사 시간대는 존재했다. 사람들은 아침과 저녁을 메인, 서브로 나누어 하루 5끼니를 주로 먹는다. 관광객은 점심도 나누어 6, 7끼를 먹기도 했다. 그가 샴페인 옆에 봉투를 내려놓는다. 리조트 로고가 박힌 두툼한 초대장이었다.
바로 거절하기엔 마이나드는 네바도 오는 길에 이름을 들어본 식당이다. 공짜 밥치고는 과분한 밥인데.
“대접하게 되어 영광이니 부담 갖지 마시고요. 내일 뵙길 기대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네바에게 인사하고 사라진다. 네바는 얕은 한숨을 쉬고, 그가 멀어지자마자 마리를 밀어냈다.
“제대로 설명해.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