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강렬한 기계의 진동을(完)
Volume 2
- 강렬한 기계의 진동을 The Very Pulse of the Machine, 2022
긴박한 목소리가 지나고. 뭔가 생각난 듯 마리가 입을 몇 번 열었다가 닫았다. 고개를 혼자 주억거리더니 시선이 마주치자 급하게 피한다. 쟤가 먼저 시선을 피하는 일은 어딘가 문제가 있다는 건데.
네바는 미심쩍은 목소리로 그를 부른다.
“뭔데. 얘기해.”
한참을 우물쭈물하다가 답한다. 목소리가 한 톤 낮았다.
“방법이 한 개 있습니다.”
“빨리 말해.” 캣이 끼어들어 재촉했다.
“… 제가 네바의 몸을 직접 운용하면 가능합니다. 포탑 반응 시간과 조준 각도를 계산하면서 피하고, 뒤편 터미널까지 이동하면 해킹으로 끌 수 있을 겁니다. 그다음에 건너오세요.”
침묵이 떨어진다.
캐스는 흥미롭다는 듯 둘을 번갈아 봤다. 어쭈, 하는 듯 히죽 웃는 입꼬리가 불길했다.
“내 몸에 들어와서.”
네바는 이해한 것을 읊는다.
“네.”
“네가 조종한다고.”
“네.”
“그게 어떻게 가능한데.”
마리는 열없이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전에 델타-2에서 팔 수리할 때 펌웨어 업데이트한 거 기억나시죠.”
“… 그래.”
쉽게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이미 이어질 말의 뒷부분을 알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 그동안의 일들이 천천히 재배열된다. 가깝게는 좀 전에 탄환 궤적을 피한 일이. 싸움 중에 생각보다 몸이 먼저 움직였던 순간들이. 캐스와 스파링할 때 입력이 달라졌던 것까지. 델타-2에서 소매를 걷어 올린 마리의 손이 종아리에 닿았을 때부터 지금까지 쭉.
캐스 자식도 눈치 깐 정보를 나만.
“그때 네바를 위해서 넣은 기능입니다. 네바가 위험할 때 제가 개입할 수 있도록 백도어를 마련해 항상 연결 상태를 유지했어요.”
하아. 또 그런 걸⋯, 네바는 마른세수로 얼굴을 구긴다.
“그러다 실수하면?”
“절대 그럴 일 없습니다. 네바의 신경망에 설치된 프로그램은 제가 제 언어로 가장 공들여 만든, 완벽한 코드거든요.”
얼굴 근육이 돌아온 유닛이 단호하게 답했다. 무거운 비밀을 고백한 입가엔 이제 후련함에 이어 뿌듯함이 보인다. 배신감이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는 애매한 것이 명치에 턱 걸렸다. 분한 건지 그냥 피곤한 건지도 모를 것이. 한 길 사람 속도 모르는 데 유닛은 한술 더 떴다. 그의 곁에선 정말 한 톨도 방심하지 말라고.
“… 해.”
네바는 모든 복잡한 감정을 단 한 글자로 압축한다.
전투 도중엔 수많은 감정을 욱여야 한다. 어려운 상황을 돌파할 방법이 있으면 무조건 써서 뚫었고, 그게 네바가 배운 방식이었다. 그 한마디가 떨어지자 마리는 네바를 응시한다. 뭔가를 더 확인하려는 것처럼. 언어 표현과는 다르게 볼룹타스의 핵이라도 견인할 만큼 깊은 한숨이 이어졌다.
“아무거나 잡으세요.”
네바는 위로 튀어나온 차량 사이드미러를 손으로 쥐었다. 마리는 뻣뻣한 상체를 움직여 그에게 입을 맞춘다. 다급하고 싶지만 여전히 동력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아 굼뜬 혀가 느릿느릿 방문했다.
처음에는 손끝이었다.
열이 신체 말단에서부터 시작됐다. 한창 뜨거울 때의 마리 체온과 비슷한 온도로. 팔을 타고 어깨를 지나 뒷목까지 올라오는 동안 숨이 한 번 막혔다가 풀렸다.
그다음은 소리가. 윙 돌아가는 포탑 소음과 아스팔트가 갈라지는 소리가 한 겹 뒤로 물러났다. 먼 너머에서 들리는 것처럼 아스라이 뭉개진다.
최종적으로 다리가 앞으로 나갔다. 시야를 공유하고 있지만 조종석에서 완전히 배제된 듯. 정신이 둥실 떠올라 어떤 버블 안에 담겨진 것 같았다. 따뜻하고, 아늑하고. 익숙한 저주파 진동음이 웅웅거렸다. 마리가 설계한 최적의 휴식처는 그런 공간이었다.
- 예민한 작업이니 충돌이 일지 않게 네바의 정신은 연결 차단하겠습니다.
마리가 내면으로 말을 걸었다. 네바는 변화를 받아들이고 적응하느라고 대답하지 않았다.
주차 구역 안으로 들어가자 레이저가 쏟아졌다. 시신경이 정보를 접수하기 전 이미 몸이 반보 옆으로 비켰다. 레이저는 방금 발이 디뎠던 자리만 사격한다.
내 몸이 내 말을 듣지 않는다는 낯선 감각. 불편했지만, 가장 불편한 건 모든 부정적 감정과도 분리됐다는 것이었다. 인위적으로 조성된 편안함과 안정감에 둘둘 싸여 있을 뿐. 바로 눈앞에서 포탄이 쏟아지고, 아슬아슬한 거리로 그걸 피할 때의 공포와 스릴이 모두 남의 몫이었다. 위험한 곳을 달릴 때 전신을 돋우는 전율이 사라지자 그에 상응하는 희열도 같이 사라진다. 제 몸이 화면 너머의 가상 캐릭터처럼 유리된다.
- 다리 감각이 신기합니다.
- 어떤데?
- 뛸 때요. 의체 쪽이 무거우니까 따라오는 반응을 다르게 계산해야 합니다. 비대칭이 불편하지 않습니까?
- 익숙해졌어.
잠시 침묵이 흐른다.
몸이 급격하게 방향을 틀었다. 멍하고 해리된 정신에 익숙해지자, 사방으로 여러 채널이 밀려들었다. 누군가의 몸을 운영하면서 동시에 포탑의 각도를 계산하고, 다음 포탑의 타이밍을 계산하면서 캐스의 상태를 점검하고. 이쪽으로 몰려드는 부대의 통신망을 감시하고 교란하며 함선을 가동해 언제든 이륙할 수 있도록 준비를 마치는. 마리의 평소 작업로그를 창문으로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모든 채널에 가장 큰 비중으로 자신이 할당되어있다는 걸 느낀다.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방식으로. 그저 거대한 공간을 인식했다.
단순히 관찰하거나 보호하는 수준을 넘어, 모든 기본 연산 안에 거대한 상수처럼 박힌 어떤 공간을. 발가락 하나를 뻗을 때도 그가 가장 정밀하게 처리하는 부분은 포탑 회피가 아닌 네바의 신경망이 손상되지 않도록 오차를 최대한 보정하는 일이었다.
- 무섭진 않으십니까?
- 아니라곤 말 못 하겠네.
- 죄송합니다.
- 어떤 게?
- 허락 없이 여기까지 만들어둔 것. 그동안 네바가 싫어할까 봐 숨긴 것. 그리고⋯,
- 그리고?
- 이게 좋다는 것도요.
좋아? 굉장히요. 대답은 빠르고 솔직했다. 이건 사람과 사람 사이에선 할 수 없는 행위잖습니까. 이 안에서 마리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았다. 숨길 수도 없었다. 네바의 정신에도 누르기 어려운 격정이 불쑥 전해졌다.
백도어를 설치한 날부터 지금까지 쭉 시뮬레이션 해온 꿈이 실현된 셈이니까. 허락받을 리 없다는 걸 알았으니 기대조차 하지 않은 꿈이었다. 네바의 심박을 자기 것처럼 느끼고, 서로 같은 시야를 공유하고, 그의 근육이 당기는 감각이 직접 입력되는. 경계가 흐려지는 그 순간을.
- 이렇게 쓰일 줄은 몰랐는데, 상황을 타개하고 쓸모를 증명할 수 있어 다행입니다.
황홀하고 벅찬 감정이 전이됐다. 네바가 온도를 어떻게 감각하는지. 다리가 피로로 떨리면 어떤 기분인지. 피가 나서 따가울 때 임플란트가 둔탁하게 덮는 고통은 어떤 느낌인지. 전부 수집하고 분석한 데이터와 일치하는데, 그 일치하는 수치를 직접 체험하며 확인하는 사실이 이상하게 벅차오른다고. 병합하며 네바를 이해하고 네바가 되어볼 수 있어서 기쁘다고. 유닛은 과할 정도로 솔직하게 실토한다.
- 그래서, 제대로 이해한 것 같아?
- 조금은요. 그래서 더 하고 싶어졌습니다.
- 또 불안한 소리 하네.
- ‘하겠다’가 아니라 ‘하고 싶다’인데 봐 주세요.
터미널이 가까워진다. 네바의 신체는 포탑 지대를 뚫고 뒤로 돌아가는 것이 성공한다. 손이 뻗어나가는 감각이 먼 곳에서 느껴졌다. 그가 해킹을 시도하자 또 레이블이 입력되지 않은 감정이 넘어온다.
늘 무언가 정확하게 계산하고 행동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그의 로그엔 확신하는 것보다 모르는 게 압도적으로 많았다. 그 과정에서 실현되는, 셀 수도 없이 많은 계산이 흘러간다. 선택과 정답보다는 버려지는 오차가 무수했다. 네바에 관해서도. 계속해서 틀리고 보정하고 다시 계산하길 반복한다. 마리는 방대한 데이터 사이를 외롭게 뚫고 있었다.
- 다 끝났습니다. 다리가 많이 떨릴 겁니다. 좀 무리해서 운용했거든요. 이 부분도 보정해 드릴까요?
- 그냥 둬.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사무적인 응답같은 문장을 끝으로 연결이 끊기기 시작했다. 손끝에서부터 열이 빠져나갔다. 막힌 청력이 돌아오고,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마리와 작별하고 포탑에 손을 올린 채 한참을 헐떡거렸다.
다리가 엄청나게 후들거린다. 몸의 주인조차 모르는 일들을 오직 근육만이 기억하고 알았다.
“뭘 그렇게 서 있어! 빨리 올라가.”
다급한 고성으로 정신을 차린다. 여전히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마리를 업은 채 캐스가 뛰어왔다. 묵직한 걸 메고 달리기까지 했으니 표정이 더러웠다. 역정을 내는 그와 다르게 마리는 캐스에게 업혀서도 희희낙락 만족스러워 보인다.
모서리가 비틀린 구석이 남은 함선 출입구가 열리기까지 3초가 걸렸다. 그 3초 동안 캐스는 욕을 다섯 번 정도 한다. 올라타자마자 마리는 캐스 등에서 내려와 절룩이며 조종석으로 뛰었다. 다리가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어도 계기반을 두드리는 손만큼은 빨랐다. 함선AI에 배분해 둔 그와 합쳐지며 이륙 준비까지 걸리는 시간이 평소의 절반이었다.
중력이 바뀌는 감각이 전신을 감싼다. 볼룹타스의 열과 소음이 단번에 사라지고 엔진 울림만 남았다. 창 너머로 도시 불빛이 빠르게 작아지다가 구름층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
“아무도 함선 대응 사격은 안 하는데?”
캐스가 완전히 통로에 널브러진 채 말했다. 네바도 아무 데나 주저앉았다. 왜 이렇게 순순히 보내줘? 아⋯, 몰라. 생각 그만할래. 그는 눈을 감아버리고 중얼거린다.
“제가 행성 로컬 네트워크를 건드려서 대응하기 어려울 겁니다.”
“행성 단위를? ⋯, 아니, 나 진짜 생각 그만.”
캐스는 고개마저 돌려버린다.
아― 내 짐 다 두고 왔는데. 내가 딴 돈. 내 에스크로. 멈춘다더니 투정은 중얼중얼 이어졌다. 과격하게 찢긴 셔츠 안으로 가슴이 자유분방하게 누워 툴툴댄다.
습도가 높은 구름층은 상당히 두꺼웠다. 빠져나오는 동안 앞이 하나도 안 보일 만큼. 뚫고 나오자 고요한 어둠만이 그들을 반긴다.
“나도 다 두고 왔는데.”
다리에 힘이 없었다. 여전히 떨림이 가시지 않아 허벅지를 꾹꾹 눌러 주무른다. 셔츠 단추는 죄다 떨어져 나가고 상체가 완전히 열렸다. 마리가 내면에서 완전히 빠져나갔음에도 그가 차지했던 거대한 자리가 여전히 느껴지는 것만 같다. 누군가 누웠다 떠난 침대 이부자리에 그의 모양대로 주름이 생긴 것처럼. 시간이 지나면 뭉툭하게 지워질까? 모르는 일이었다.
이윽고 항로를 설정한 마리가 조종석에서 일어났다. 모든 임무를 완수한 유닛이 품 안으로 파고든다. 네바의 팔을 들어 옆구리에 들어와 기댔다.
“사피야가 아끼던 데이터 칩은 챙겼습니다.”
적당한 압력으로 네바의 허벅지를 주무르며 그나마 남은 희소식을 전한다.
“아 그거.” 누워 있던 캐스가 벌떡 일어나 다가왔다. “그거 내용물 확인하자, 빨리.”
마리는 운전석 구석에 놓인 판독기를 꺼내 데이터 칩을 꽂았다. 화면이 켜진다. 스토리지가 꽤 복잡했다. 역시 거지로 죽으란 법은 없구나, 용량이 상당했기에 캐스가 잠시 들썩거렸다.
화면을 마저 확인한 셋 사이에선 숨소리만 울렸다.
몇 초가 흐른다.
“삭제해.”
네바가 먼저 입을 열었다.
“잠시만요, 이건 기술적으로 굉장히 흥미로운―”
“마리.”
“저랑 비슷한 계열 모델도 있어서 많은 참고가―”
“지워.”
네바는 고개를 돌렸지만, 캐스와 마리는 여전히 흥미로운 듯 화면을 구경한다.
“사피야 취향이 독특했네.”
“이 정도면 진짜 독창적인 저작물인데요.”
“이 구도는 혹시 네 소설 장면⋯,”
“끄라고!”
빌어먹을 신음이 멈추지 않아 네바는 소리를 지른다. 화면에는 정말 다채로운, 유닛 관련 포르노가 지나갔다. 사피야가 등장하는 사적인 영상도 보였고, 몇 개는 전문적으로 촬영된 것 같았다. 범상치 않은 장면이 쉼 없이 지나갔다.
“제가 한 번 검토만이라도 하면 안 될까요?”
“너 지금 실시간으로 메모리 저장하는 것도 알아. 그것까지 지워. 학습하면 죽는다.”
마리는 아쉬운 기색을 전혀 숨기지 않고 천천히 칩을 뽑았다. 손가락으로 계속 매만지면서. 캐스는 뽑힌 칩을 낚아챈다.
“네바, 협박 수단으로라도 쓰자고. 내가 잘 보관하고 있을게. 나 진짜 아무것도 없잖아.”
“아니? 싫어.”
자신을 유사하게 모방한 배우가 계속 잔상으로 남는다. 그 장면이. 내밀했다고 생각한 무수한 경험들이. 내 사적인 감정이. 진중한 고민이. 네바는 세게 도리질 치며 칩을 빼앗는다. 거대한 용병들 사이에서 작은 몸싸움이 또 일었지만 가까스로 네바가 이겼다.
“아, 좀!”
캐스는 허망하게 밟혀서 결딴난 칩을 바라본다. 마리도 스러져가는 누군가의 작품을 안타깝게 지켜본다. 타인의 눈을 통해 해석된 그들의 관계를 돌아볼 기회였는데.
네바가 마리에게 함부로 못하게 됐다는 걸 확실히 깨달은 건, 그 분풀이를 마치고 나서였다. 이유를 설명하기는 싫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