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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허들링 플레이스

Volume 2

•DJG•8 min read
2-3편은 1편보다 챕터 분량을 반으로 줄여 총 20챕터로 진행됩니다.
공간이 넓어지며 분위기가 좀 더 밝아집니다.

  1. 허들링 플레이스 Huddling Place, 1944



#코모란트

우읏, 너무 센데.

길쭉한 손가락이 민감한 틈을 가른다. 네바의 몸에 힘이 들어가며 근처에 놓인 손을 꽉 잡았다. 한층 해상도가 오른 감각이 하체 주변을 달군다.

“그런가요? 끝나면 제대로 캘리브레이션 하겠습니다.”

“지금 해, 지금.”

어색하단 말이야. 네바는 은근슬쩍 빠지는 유닛을 끌어당긴다. 부드럽게 관리된 입술에 입을 맞추고. 마리는 마지못해 혀를 밀어 넣으며 감각 채널을 재조정한다. 그가 신경 임플란트를 제어하는 동안 신체 말단이 미세하게 간질거렸다.

“감각 인식 단계는 더 낮춰. 이건 올리더라도 차근차근 올릴게.”

네바가 입을 떼고 속살거린다. 마리는 혀를 도로 넣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엄지와 검지를 꿰어 붙인 살 거죽이 팽팽하게 당기는 듯한 위화감이 한 차례 전신을 훑는다. 조정하는 동안 생긴 공백이 시원한 가랑이 사이에 닿는 공기를 의식하게 만들었다.

무릎을 올려 다리를 벌려준 채, 네바는 뒤의 벽에 몸을 기댄다. 어쩌다가 칸막이 너머에 사람을 재운 채로 이러고 있는 거지. 나중에 더 은밀한 곳에서 하자고 말릴걸. 아니, 말렸는데. 업데이트 상태만 간단하게 확인하겠다고 밀고 들어온 건 마리였고. 졸지에 방문도 커튼도 없는 공용 침상에서 제일 내밀한 두 곳을 활짝 열게 된 건 저였고. 또 이렇게.

“이젠 좀 낫나요?”

느리게 움직이던 손가락이 본래 속도를 찾는다. 비슷한 것 같은데. 혀를 섞는 내내 움직임을 멈추지 않아서인지, 아직은 새 감각 체계에 적응하는 중이어서인지, 대답하기 어려웠다. 당분간은 그냥 받아들여야 하나. 조용히 감도를 비교하는 동안 마리는 고간을 더 젖히고 들어왔다. 간질간질. 접합부 근처를 쓸던 손길이 차츰 내려가 한참 전에 껍데기를 벗겨놓은 인공 다리를 더듬었다.

“신호 보내겠습니다.”

“지금?”

경고는 짧았다. 흐, 손끝에서 미세전류가 흐르자 오른쪽 허벅지가 훅 땅긴다. 네바는 찡그리며 허리를 굽혔다. 너는 그런 걸 손가락으로 쑤실 때 하냐. 섹스하자는 건지, 점검하자는 건지. 교정할 때 성감대로 과입력된 감각 신호 정보가 필요하다는 건 역시 공갈인 것 같은데.

“반응 정상이에요.”

마리는 반응을 기록하는 듯 눈을 깜빡인다. 자신을 위해 뜯어고친 펌웨어 업데이트라고 했다. 제대 이후 단 한 번도 업데이트하지 않은 낡아빠진 펌웨어를 업그레이드하자고. 갓 향상된 감각 인식계에 섹슈얼한 자극이 쏟아진다. 하⋯, 윽, 예고 없이 들어온 추가 전류에 왼쪽 허벅지가 반응했다. 순간적으로 작게 비명 지른 네바는 당황해서 꼼짝도 못 하고 공기를 읽는다. 다행히 캣은 아직 자는 것 같다.

“방금 건 뭐야.”

“테스트 신호 패턴을 바꿔봤습니다. 구형 임플란트라 이쪽 채널도 확인해야 하거든요.”

마리는 여길 쳐다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두 눈이 활짝 드러난 의체 프레임에만 고정되다가 미간이 좁혀진다.

지독할 정도로 섬세하게 심긴 인공 눈썹을 찬찬히 뜯어본다. 낯설다가도 이제는 더 익숙해진 각도. 42가 짓던 은은한 표정은 먼 과거로만 느껴졌다.

달아오르는 열기에 귀가 먹먹할 정도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옆으로 새어 나가지 않게 네바가 목소리를 죽인 채 할딱거린다.

“심장 반응이 너무 크지 않아?”

“아직은 정상 범주입니다. 반사신경 단계를 더 업그레이드하자고 하셨죠.”

반사신경 확보를 위해선 심혈관계 피드백을 강화하는 방향이 맞습니다. 마리는 의체 안쪽을 더듬던 손을 가슴 위에 올려 펼친다. 적응해 보는 게 어떻습니까? 아니면 반사신경 업데이트도 하향 조정할까요? 박동을 측정하는 손가락이 사이에 끼운 유두를 톡톡 건드렸다.

“일단 둬봐.”

끊임없이 목을 탈출하는 신음 때문에 말이 짧아진다. 머잖아 네바의 몸이 참지 못하고 튀어 올랐다. 오차 없이 타이밍을 정확하게 예측한 유닛의 두 팔이 그를 끌어안았고. 천만다행으로 좁아터진 천장에 머리를 박는 일만은 면했다. 한 층을 위아래 반으로 갈라 사용하는 코모란트의 침상은 강화 인간인 네바에겐 턱없이 좁은 공간이었다.

하아, 하아⋯, 꿈틀대며 숨을 고른다. 폭 안긴 가슴 역시 그 못지않게 세차게 뛰었다.

“1차 조정 완료했습니다. 지구 표준력으로 한 달 뒤에 재보정하겠습니다.”

마리는 축축하게 젖은 손가락을 입안에 넣어 정리한다. 쪽. 보송한 입술을 새카만 정수리에 찍는 것도 잊지 않고.

“여기 흥분한 게 나 혼자뿐만이 아닌 것 같네.”

깨끗해진 손으로 마주 안은 등을 토닥토닥 쓸어내리는 유닛의 얼굴도 발갛다. 움직일 일이 없던 가슴이 가짜 생명 징후로 가쁘게 오르내리는 걸 본다.

“제 존재를 들키고 싶어 하는 건 한 명뿐인 것 같고요.”

흥분이 채 가시지 않았는지 그가 한 번 더 키스한다. 저보다 큰 입술을 삼켜버릴 기세로. 몸을 붙이자 자박자박 뛰는 그의 고동 소리가 전해졌다.

“아까 조정 완료했다더니?”

“사람들은 ‘애인’ 사이면 이유가 없어도 키스하지 않나요?”

무구한 눈망울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어온다. 많이 뻔뻔해졌네. 네바는 벽에 기대 허리를 내어준다. 넓은 골반 위에 걸터앉아 옷을 벗는 모습을 본다. 폭발로 짓이겨진 식별 바코드 주변도, 갈기갈기 찢긴 손도 새 피부를 받아 멀끔했다.

이리 와. 기세등등해진 유닛을 당긴다. 엇, 순간 체중을 실어 기울이던 왼팔이 풀썩 꺾인다. 펄펄 끓는 몸체가 순간적으로 네바 위에 고꾸라졌다가 고개를 든다. “새로운 팔 시스템은 확실히 손봐야겠네요.”



#델타-2 정거장

뜯겨나간 팔을 수리하고, 기다리는 동안 졸지에 임플란트 업데이트까지 마치고, 텅 빈 함선에 누군가를 태우기까지 하려면 나흘 전으로 돌아가야 한다.

1부터 14까지 있는 델타 정거장은 군수 보급을 위해 만들어진 군사시설이다. 그중 연방 주요 행성들과 거리가 먼, 외곽 경계에 위치한 델타-2는 민간에 넘어간 곳이었고. 지적 생명체가 존재하지 않는 빈 행성을 개조해 대규모로 만든 실내 기지였다.

최상층의 연방 소속 구역을 제외하면 나머지 하층부는 온갖 시민이 모여 온갖 방식으로 살아갔다. 주변 다른 거점에 비해 오가는 사람이 훨씬 다양했으므로, 마리가 첫 목적지를 델타-2의 다운스트리트로 설정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연구소 탈출 이후 거의 500여 시간 만에 밟는 육지였는데, 훨씬 더 좁은 함선에서 유닛과 밀착해 지내려니 체감은 거의 천 시간이었다. 네바는 지난 몇 주를 조용히 곱씹는다. 냉각수 누출로 얼어 죽을 뻔한 일을 제외하면 평탄한 운항이었다. 마리가 재편한 AI로 모든 것이 자동화되어 신경 쓸 게 전혀 없었다는 건 두말할 필요도 없고. 그는 한쪽 팔이 없는 채로도 빈틈없이 함선을 운영했다.

예기치 못하게 함선을 탈취당했다는 짜증과 불안은 편안함과 섹스들 앞에서 야물게 휘발됐다. 전엔 혼자 함선을 어떻게 운영했나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하다. 적응의 동물을 과소평가하지 말 것.

“구조가 설계도랑 전혀 다르네요.”

정거장에 도킹하고 나서. 마리는 당황한 듯 베이를 천천히 걸었다. 각종 분진과 기계 윤활제 냄새가 뒤섞인 공기를 흥미로운 듯 맡아보다가, 각 구역으로 향하는 문의 높이가 전부 다른 걸 의아하게 재어보다가, 시비가 걸릴 정도로 지나가는 이들을 빤히 쳐다보다가 하는 식이었다.

“그냥 조용히 따라와.”

네바는 그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깨의 절단면이 보이지 않게 묶어둔 긴팔 소매가 출렁였다.

군사 시설 특유의 반듯한 격자형 구조는 흔적도 남지 않았다. 난잡하게 증축된 공간 사이를 익숙하게 걷는다. 용병 일로 여기 들러본 건 아득한 옛날 일이었지만, 지형을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미로처럼 돋아난 민간 지역은 원리만 파악하면 대략적인 형태가 비슷하기 때문이었다. 도킹 베이와 가까운 곳은 소음과 먼지 때문에 노동 생산 시설이 방파제 역할을 하고, 그 둘레는 노동자들이 거주하는 생활 지역. 띄엄띄엄 배치된 셔틀 승강장을 상업 지역이 채우면 그 바깥과 지하는 전부 외부인이 몰려드는 유흥 골목이었다.

정보를 얻고 비일상적인 것을 찾으려면 안으로, 더 혼잡한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건 어딜 가나 동일했다. 값싼 합성 향신료 덕분에 노점 꼬치 맛도 정거장마다 비슷했고. 둘은 골목을 가득 채울 정도로 거대한 짐을 나르는 유닛에 공간을 내어주며 벽에 바짝 붙여 섰다.

“사실 아까부터 구역별로 수집한 데이터를 분류하려고 했는데, 부하가 심해져서 포기했습니다. 데이터에 잡음이 너무 많아요.”

“무슨 데이터?”

“공간이요. 벽의 색깔, 천장 높이, 냄새, 오가는 사람, 소리, 그런 것들. 영화 배경음악처럼 기저 진동음도 멈추질 않습니다.”

마리의 시선이 짐을 감싼 낡은 천을 계속 쫓아간다. 육안으로는 도통 안에 뭐가 들었는지 예측할 수 없었다. 튼튼한 노동형 유닛이 지나가고 둘은 골목을 나란히 걸었다.

“저주파 진동 말이지? 정거장 추진 시스템 때문에 그래. 나는 함선을 오래 타서 그런지 차라리 그게 있어야 잠이 잘 오더라.”

“아까 잡음 처리해서 필터링했는데, 다시 수신하겠습니다.”

“굳이?”

“네바가 좋아하는 걸 저만 놓치면 손해잖아요.”

킁. 좋아한다고까진 안 했어. 네바는 대화를 끊는다. 노점 골목에서 멀어질수록 튀김 기름 냄새가 옅어졌다. 큰 거점이라 그런지 가도가도 인파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

은하 망에서 후기를 봤는데, 저 돌은 사기래요. 당하면 안 됩니다. 마지막 잡상인 옆에서 마리가 소곤거렸다. 행운의 운석 돌멩이를 진지하게 믿고 사는 사람은 없을걸. 대단한 정보를 알려주는 듯 표정이 사뭇 진지했기 때문에, 네바는 핀잔을 고이 삼킨다.

그가 이곳저곳 반응하면서 덩달아 걷는 속도도 한 박자씩 느려졌다. 문을 열어 놓은 가게 앞에서 자꾸 멈추거나, 어디선가 소리가 나면 고개를 돌리고 몇 초씩 관찰하거나. 몇 번은 행색이 독특한 사람을 따라가려고 하기도 했다.

“궁금한 게 있으면 그냥 나한테 물어봐도 돼.”

점점 느려지는 이동 속도에 네바가 입을 열었다.

“여긴 내부 통신 채널이 활발해서 그때그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거의 다 왔어요.”

“또 들를 데가 있어?”

이번엔 마리가 그의 손을 덥석 잡는다. 대답도 없이. 코너를 몇 개 스치고. 왼쪽 앞발 대신 금속 막대기를 단 들개 한 마리가 지나가고. 마리는 한 외진 골목에 들어서서 걸음을 멈췄다.

“?”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자 뿌듯한 팔 하나가 그의 목을 걸어 잡아당겼다. 입술이 맞닿는다. 오는 동안 뜨끈해졌던 손만큼 따스한 혀가 잠시 머물다 나갔다. 어쩐 일로 눈까지 감고 천천히 음미하는 모습에. 네바는 잠시 당황하다가, 때마침 지나가는 사람도 없으니 멋쩍은 손으로 그를 안아준다.

선물입니다. 품 안에서 마리가 또 종알댔다.

“뭐가?”

“낭만적인 곳 아닙니까? 네바가 좋아할 공간으로 세심하게 골랐습니다. 키스할 타이밍도 맞췄고요.”

멀리서 드문드문 무언가를 두들겨 수리하는 소리가 들린다. 음침한 골목에서 뭐라고 대답할지 생각하는 동안 금속으로 된 창고 벽만 징징 울렸다. “쥐새끼 한 마리도 안 지나다니는 어두운 골목이 낭만적이야?”

“추진 시스템이 벽을 타고 공명해서 특정 주파수에 도달한 구역을 계산했습니다. 함선 내에서 보여준 수면 패턴을 고려했을 때 네바가 편안함을 느낄 만한 최적의 구역이었거든요. 타인의 눈치를 보지 않도록 셔틀 패턴을 분석해 유동 인구가 비는 시간대에 진입해야 했고.”

“흐음.”

그제야 뒤로 한 무리의 인파가 지나갔다. 침대에서 이불을 덮어줄 땐 눈치가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연구소를 나오자마자 바로 헛발질하는 꼴이라니. 네바는 곰곰 생각하다 그의 정수리를 손바닥으로 턱 덮는다. 유닛은 수줍은 척 역할놀이를 위한 볼을 붉혔다.

“나쁘지 않네. 결과적으로 조용하고 으슥한 곳을 잘 골라낸 거니까.”

애쓴 유닛에게 거짓말 하나 더 던져준다. 손톱만 한 프로세서로 은밀하게 이동 속도를 늦추며 타이밍을 계산했다고 생각하니 실소가 나왔다.

“마저 가보자고. 수리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