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헤이와이어
Volume 2
6. 헤이와이어 Haywire, 2011
조도가 어둡다. 배터리팩을 높게 쌓아둬서 격납고 작업등이 가려졌기 때문이었다. 그 안에서 두 사람이 움직인다. 싸움인가? 알아보기 어려웠으나, 둘 다 웃고 있었다.
캐스가 그에게 덤빈다. 비스듬한 각도로 파고드는 방식이었는데, 정면이 아니라 한쪽 어깨를 앞세우고 미끄러지듯 접근했다.
네바는 진입 경로를 막는 대신 반보 뒤로 빠지면서 그의 리듬을 정확히 읽는다. 들어오는 팔을 막거나 걷지 않고 손목을 잡아 흘려보냈다. 상대방의 힘을 이용해 매끄럽게 움직인다. 허점을 찔렸지만 캐스는 넘어지지 않고 빠르게 자세를 고쳤다.
“아직도 이렇게 보내네.”
“네가 아직도 그 각도로 들어오니까.”
당장 개입이 필요한 전투는 아닌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왜 임플란트를 모두 끈 거지? 나는 계단을 더 내려가지 않고 위에서 그들을 지켜본다. 네바의 전투 데이터를 기록할 기회였다.
그는 텀을 두지 않고 바로 반격했다. 타격 없이 손목을 잡으려고 시도했으나 네바는 팔을 비틀어 빠져나간다. 둘이 잡고 빠지는 걸 반복했다. 강화 상태가 아니어도 평균적인 인간보다 유연성과 근력이 우수해 움직임이 현란하다.
손목 잡기를 포기하고 팔꿈치를 들이밀어 수위를 올린다. 짧고 강한 타격이 터졌다. 네바는 한 수 맞아주면서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 오히려 뒤로 밀리다가 빠지는 힘을 이용해 바로 방향을 튼다. 캐스의 허벅지 바깥쪽으로 낮은 킥이 들어간다. 다리 의체로 가격해 파열음이 꽤 컸다.
“얌마, 쇳덩이로 치는 건 반칙이지.”
캐스가 통증으로 휘청였다. 무거운 의체를 십분 활용해 하체 중심으로 개발된 그의 체술은 위력이 상당했다.
“몸에 붙은 걸 어떡하냐. 너도 손가락으로 확 그어라.”
“너 훤칠한 얼굴에 상처 내면 잘 때 마리가 죽여놓을 듯.”
문장이 끝나기 전 네바가 공격했다. 캐스는 일부러 빈틈을 보여 네바를 아래로 유도했고, 튀어 오르며 가까워진 그를 무릎으로 가격했다. 퍽, 정통으로 니킥을 맞은 그의 코에서 순식간에 피가 쏟아진다.
“이제 죽겠네.”
당연히 죽일 것이다. 언젠가.
둘이 싸우는 십여 분 동안 통증 경고등이 계속 울렸다. 그럼에도 네바는 계속 웃었다. 피를 뚝뚝 흘리면서 달려든다. 캐스는 옆으로 피하고, 경로를 차단하기 위해 비스듬하게 기댄 슬레이트를 잡아 넘어뜨렸다.
쿵, 뒤이어 우르르. 비껴있던 상자까지 전부 바닥으로 쏟아졌다. 각진 면이 격납고 바닥을 구르는 소리가 크게 울린다. 쫓아가던 네바가 멈췄다. 캐스의 시선이 빠르게 바닥을 훑는다.
“야! 이게 진짜 반칙이지. 네가 다 치워.”
나는 캐스의 눈이 3.2초 물품에 머무는 것을 캐치했다. 바닥을 뒹구는 배터리 팩 중 방수 포장재가 찢긴 것들이 있었다. 드러난 표면으로 연구소 내부 물류 번호가 보였을까? 아직은 어두워서 속단할 수 없다.
“싸울 때 환경을 전부 이용하라는 건 누가 한 얘기더라.”
캐스는 후다닥 안쪽으로 들어가며 거리를 벌렸다. 네바는 코피를 한 번 더 닦고, 뛰어난 평행감각으로 배터리팩 사이를 짚어 바로 추격한다. 두 사람이 안쪽으로 들어가 시야에 바로 잡히지 않자 조급한 마음에 계단 아래로 내려갔다.
몸을 빼서 격납고 내부를 탐지한다. 캐스는 다가오는 네바의 골반을 노려 그를 잡고 테이크다운을 시도했다. 네바는 날래게 방어하고, 가까스로 탑 포지션을 선점하는 것에 성공한다. 무릎으로 명치를 꾹 누르자 캐스가 숨을 짧게 뱉었다. 강한 힘이 맞붙으면서 네바의 통증 수치가 튄다. 그를 짓누른 힘이 반동이 되어 의체 연결부에 예상보다 큰 압력을 만들었다.
심하게 아픈지 네바의 표정이 급격히 찌푸려진다. 땀이 비 오듯 쏟아지는데, 계속 버티다간 결합 위치에 비틀림이 생길 것이다. 나는 백도어를 통해 네바의 연결부 둘레 근육 긴장을 완화하도록 조작한다. 동시에 그가 불편하지 않도록 통증 관리 시스템을 재가동했다.
결정을 내렸다기보단, 순간적으로 조건이 충족되어 생긴 자동 개입이었다. 네바가 위험하거나, 다칠 위험이 있는 경우. 혹은 신체에 큰 손상을 입을 수 있는 경우.
신호가 들어가자 힘 배분이 달라진다. 다행히 연결부로 가는 압력이 분산됐다.
네바가 갑자기 고개를 들었다. 무언가를 확인하는 시선이었다. 두리번거리다 계단에 올라선 나와 시선이 마주친다.
캐스는 다리에 걸린 무게가 바뀌었음을 빠르게 눈치챘다. 짓누르던 무릎을 쳐내고 그대로 뒤집기를 시도한다. 쿵. 한눈팔던 네바가 묵직한 소리를 내며 바닥에 깔렸다.
“내가 이겼네. 너 임플란트 켰지?”
네바는 대답 없이 이쪽을 봤다. 그의 시선을 타고 캐스도 고개를 돌려 여기를 본다. 두 시선을 받으며 내려갈지 말지 전략을 계산한다. 이미 들킨 이상 대화는 마무리 지어야 했다. 캐스가 머쓱한 듯 위에서 일어나며 네바를 일으켜 세운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어?”
다가가자 네바가 물었다.
“21분 17초 전부터입니다.”
“네 짓이야?”
“연결부에 압력이 과집중되었습니다. 체중을 분산해서 부상을 막는 것이 좋습니다.”
“네가 조종한 거냐고.”
캐스는 달라진 분위기에 입을 쩝쩝거린다. 어색하게 물러나 자리를 내어줬다. 네바의 눈가가 깊었다. 또 그때처럼. 내가 아니라 내 안쪽에 든 코어까지 꿰뚫는 것 같은 차가운 시선. 네바는 다시 나를 의심하고 있었다.
“제가 조작한 건 아니고, 펌웨어를 업그레이드할 때 넣은 기능입니다. 부상 위험이 매우 큰 경우 시스템이 자동으로 인지하여 근육에 신호를 보냅니다. 어색하시면 작동 중단하겠습니다.”
그가 의심하지 않도록 거짓말을 꾸민다. 내가 백도어를 통해 그의 몸에 접속할 수 있는 건 중대한 비밀이었다.
“중단해. 당장.”
“프로그램 수정하겠습니다.”
그의 명령을 수행하는 척 움직인다. 몇 걸음 가서 네바의 앞에 섰다. 고개를 기울여서 키를 맞춰주지 않기에, 발꿈치를 세워 입을 맞춘다. 긴 시간 이어진 전투로 입안이 말라붙어 건조했다. 그의 혀는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타액을 평소보다 더 많이 분비하며 프로그램을 수정하는 척 백도어 연결 상태를 점검한다. 섣부르게 의심을 사지 않도록 최근의 입맞춤은 그저 짧기만 했기에 살필 겨를이 없었다. 예상대로 연결 흔적 없이 깨끗하다. 그러면 그렇지. 그의 해킹 모듈 스펙으로 내 보안 벽을 통과했을 리가. 키스하며 옆을 살피다 캐스와 눈이 마주쳤다.
“임플란트도 네가 켠 거야?”
“그건 모르겠습니다. 오류거나, 무의식 레벨에서 네바의 신체가 작동 명령을 보냈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신체 통증 수치가 매우 높거든요.”
발꿈치를 내린다. 캐스 역시 임플란트를 재가동했는지 전투 통증으로 굽혔던 몸을 바르게 펴서 섰다.
“애초에, 왜 이렇게 위험하게 싸우신 겁니까?”
“원래 우리끼린 이러고 놀아. 전장에서 감각이 다 차단된 채로 싸우면 정신머리도 기계 같아지거든. 차 떼고 포 떼고 줘터져야 정신 차리지.”
캐스는 네바에게 감도는 기류를 무시한 채 개운하다는 듯 기지개를 켰다. 뻑적지근한 몸을 시험하는 것처럼 관절을 구석구석 꺾더니, 네바의 등을 툭툭 친다.
“임플란트 고치고 이제 전원 온오프가 가능하길래 함 붙자고 부탁한 거야. 먼저 임플란트 가동한 사람이 지는 걸로. 아까 못 참고 먼저 통증 관리 켰으니까 내가 이긴 거지?”
“오류라잖아. 내가 솜 주먹에 좀 맞는 걸 못 참겠냐?”
“핑계는.”
둘은 마주 보고 웃었다. 캐스는 내 머리도 쓰다듬듯 손으로 헝클어뜨렸다.
“아― 이러니까 살 것 같네. 엉킨 걸 푸니까 순정으로 뛴 게 거의 십 년 만이야. 고맙다?”
죽일 것이다. 무모하게 죽음을 자초하는 인간에게 합당한 방식으로. 나는 머리를 도로 반듯하게 정리했다.
그러나 캐스가 분위기를 완화하자 네바도 조금은 풀어진 듯했다. 심혈관계 각성 상태가 단계적으로 돌아왔다. 황급히 머리를 만지는 날 보던 시선에도 옅은 온정이 실렸다. 덕분에 중대한 보안 이슈로 딱딱해진 네바를 되돌리기 위해 계산하던 무수히 많은 시나리오를 삭제했다.
조금은 나중에 죽여야 할까? 나는 그의 전략적 가치를 재반영할지 변수를 검토한다.
“올라가기 전에 저 박스 네가 다 치워라.”
“유닛 뒀다가 뭐 하냐. 마리한테 치우라고 해.”
아니, 죽일 것이다.
#Daily_Task_075
-캐스 제거 : 생존 유지 조건 관리(현재 조건 수 : 1) (네바가 좋아함)
-캐스 통신망 접속 로그 확인
-네바 비타민제 및 수면제 소분
-네바 코르티솔 주간 그래프 작성
-네바 수면 데이터 주간 그래프 작성
-배터리팩 보관 상태 재조정(방수팩 포장 및 위치 이전) (완료)
-캐스 임플란트 수리 모니터링 정보 수신 (보류)
“오늘은 경로 중 첫 번째 유인 보급소 근처를 지나는 날입니다. 연료를 모두 보급하고 출발해서 다다음 보급소까지 물자는 넉넉합니다. 들렀다 갈까요?”
또 백여 시간이 흘렀다. 공용 공간에 편하게 늘어져 있던 네바에게 물었다. 혹시 들를 생각이라면 슬슬 속도와 경로를 재조정해야 합니다. 비죽비죽 튀어나온 잔머리에 손가락을 넣어 빗겨준다. 감정적, 신체적 수치 모두 최상, 허벅지를 베고 누운 네바의 기분은 좋아 보였다.
“음, 굳이?”
굳이 들를 필요가 없기에 무의미하게 던진 질문이었다.
“어, VH-7 보급소 지나는 거면 잠깐 들르자.” 그때 근처 소파에 누워 단말기를 뒤적이던 캐스가 대답했다.
“왜?”
네바가 고개를 들었다. 순간적으로 손에서 머리카락이 떨어져 표정을 찌푸린다. 누군가 눈치채지 않게 빠르게 표정을 재조정했다.
“통신 중계망 좀 쓰려고. 내 보안 채널에 메시지 들어온 거 없는지 확인해야 하거든.”
얼마 전 캐스가 함선 내부 통신망을 계속 우회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을 떠올린다. 얕은 술수를 부린 암호화 채널이라 내 손바닥 안이었다. 그는 내 보안 벽을 뚫는 걸 포기하는 대신 외부 통신 중계소를 이용할 속셈이었다.
“항로 이탈은 최소화하는 쪽이 좋지 않겠습니까?”
“딱히 이탈은 아니지.”
캐스는 단말기로 경로를 점검한다. 10.6시간 추가래. 네바는 잠깐 생각하다 고개를 끄덕였다.
“상관없어. 그러면 들렀다 가자.”
상관없지 않았다.
VH-7이 시야에 들어온 건 예정 도착 시간보다 두 시간이 이른 시점이었다. 근거리에 들어오고부터 여러 데이터 항목이 급속도로 쌓였다.
“저거 긁힌 자국이야?”
뭐 빼돌리다 긁혔나? 함교 조종석 앞에 선 네바가 물었다. 벽면에 거대한 물체가 빠져나온 것 같은 흔적이 보였다.
“존나 큰데?”
범상치 않은 사이즌데. 캐스는 육안으로 보이는 보급소를 유심히 살핀다.
“마리, 생체 신호 탐지 돼?”
“아직 거리가 멀어서 잡히지 않습니다. 그런데 함선 유도등이 꺼져 있어요. 아까부터 승선 신호를 보내도 허가 신호가 돌아오지 않고요. 돌아갈까요?”
이상하네. 네바는 함교 화면에 잡히는 수치를 더 읽는다.
그때 보급소 내부 네트워크 범위에 들어와 각종 정보가 수신됐다. 마지막 생체 신호 기록이 11시간 3분 전이었다. 점진적 감소가 아니라 전원 내부 일괄 소멸로. 그건 탈출이나 구조가 아니라는 뜻이었다. 철수는 더더욱 아니었고.
“찝찝하면 그냥 가고. 프리랜서 습관이지 대단히 할 일이 있는 건 아니야.”
엄청나게 가고 싶으면서 여유 부리긴. 나는 캐스의 표정 각도를 분석한다.
빠른 속도로 보급소 네트워크를 해킹한다. 다행히 보안 프로토콜이 구형이라 쉬웠다. 관리자 알림이 발생하지 않도록 우회하여 구역별 카메라 기록을 빠르게 훑는다.
아하. 서버 데이터에는 그동안의 일이 모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나는 흥미로운 정보가 조금이라도 새어나갈까 고개를 수그린 채 조종간을 잡는다.
“그냥 오래된 자국 같습니다. 보급소는 2년 전 모두 철수해서 무인 전환되었고, 지금은 완전히 버려졌습니다. 외부 통신 서버는 사용 가능한 것으로 확인됩니다.”
함선 내부에서 캐스를 제거하는 건 너무 까다로운 일이었다. 나는 캐스가 스스로 불러온 천재일우의 기회를 활용해 그를 떼어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