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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스토어웨이

Volume 2

•DJG•8 min read



3. 스토어웨이 Stowaway, 2021



비싸 보이는데.

첫인상은 그랬다. 금발이 하느작대는 여자는 멀리서도 확실히 눈에 띄었다. 특히 어디 하나 닳은 부분 없이 온실에서 배양된 것 같은 부드러운 전신이. 델타-2에선 그런 인상 자체가 튀었지만, 그 이전에 아양을 떠는 상대가 네바라는 게 더 이상했다. 오늘 쇼핑한 짐이 한가득인 걸 보면 짧은 만남도 아니었는데.

저 정도 퀄리티면 이 근방에서 구할 급은 아니고, 연방 구역까지 올라가야 나오는 여자는 하룻밤에⋯, 됐고. 어쨌든 네바를 보러 온 거니까. 캐스는 계산기를 접는다.

통신망을 들쑤시는 건 캐소드의 오래된 취미였다. 돈이 되는 정보를 입수하려면 온오프를 가리지 않고 손품을 팔아야 했다. 온갖 거래 내역이든, 누군가의 이동 경로든,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사적인 채널이든. 거기에 지나치게 깔끔히 흔적을 지우려고 노력한 흔적이라면 더더욱. 잘 지워진 흔적은 잘 남긴 흔적보다 오히려 더 눈에 띄는 법이었다. 거기엔 숨겨야 할 중요한 정보가 있다는 뜻이니까.

얼마 전 델타-2 블랙마켓에 연방 군수 물자와 규격이 맞는 배터리팩이 풀렸다. 소량이고 희소한 자원은 아니었지만 출처와 경로가 지나치게 깨끗했다. 소박한 장물을 팔면서 누가 이렇게 깔끔하게 일을 처리하지. 흔적을 한 번씩 건너뛰어 가며 지우는 식으로. 군대에서 훈련받은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르는 습관이었다.

군용 임플란트 핑을 쏜 건 혹시 몰라 해본 일이었다. 전장에서 서로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만들어진 기능이었는데, 하도 신경망을 뜯어고친 터라 여전히 작동하는지 확신이 없었다. 반신반의했지만 신통하게도 다운스트리트에서 신호가 돌아왔다. 캐스는 핑 수신 좌표를 들여다봤다.

이 번호는⋯, 네바네. 마지막으로 소식 들은 게 언제였더라. 기억저장소를 총동원해 머리를 굴렸다. 친밀하게 붙어먹던 사이였으니 제대하고도 한동안 불규칙하게 연락이 닿았는데. 직종 특성상 은하 곳곳으로 흩어져 잠적하는 게 흔한 일이라 멀어지는 건 쉬운 일이었다.

네바의 크레딧 지갑을 몰래 털어보니 얼추 숫자가 맞아떨어졌다. 최근에 딱히 의뢰받은 것도 없이 조용히 지내던 용병이 갑자기 비밀 자금을 뭉텅이로 마련했다면. 이건 찔러볼 만한 일이지. 슬슬 거주 구역을 옮길 때도 됐으니까.


“그래서 말인데. 내가 좋은 일 하나 물어서 칼로 섹터에 가려고 하거든. 방향만 맞으면 태워다 줄 수 있겠어?”

너 퇴직하면서 산 함선 아직도 타고 다니지. 캐스는 덥석 옆에 앉은 마리에 팔을 두르며 덧붙였다. 연료비는 내가 섭섭하지 않게 챙겨줄게. 어때? 네바는 반응 없이 그에게 안긴 마리를 본다. 아직 정해진 경로는 없었지만, 연방 외곽만 죽 따라 경계를 훑을 게 아니라면 그쪽으로 갈 확률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씀씀이가 큰 녀석이니 통행료야 반가울 정도로 챙겨주겠지만. 지금 함선에 태우고 다니는 게 뭔지 눈치라도 챈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쉽게 판단하기 어려웠다. 마리가 위험해질지, 아니면 옛 친구가 위험해질지, 만만치 않은 조합이었다.

통제하기 어려운 변수는 삭제하면 된다. 방향이 맞지 않는다는 가벼운 거짓말이면 그만이었다.

“사실 그쪽 방향은⋯,”

“칼로 섹터면 여기서 얼마나 걸립니까?”

거절의 입을 열던 찰나 마리가 물었다.

“글쎄? 함선 스펙을 모르는데. 보통 항법 시간 1000~1300시간이면 도착해.”

“일정에 딱히 문제는 없을 것 같네요.” 마리가 이쪽을 보며 확인한다. “괜찮지 않습니까?”

괜찮냐고? 네바는 얼빠진 표정으로 유닛의 눈치를 살핀다. 딱히 맘에 든 것 같지도 않은데. 무슨 속셈으로 이렇게 금방 수긍하는 건지 추론하기 어려웠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이미 반절 수락해 버린 제안에 거절을 얹으려면 명확한 변명이 필요했다. 눈치로 먹고사는 캣에게 말싸움으로 이겨본 적도 없었고.

“으음⋯, 태워줄게.”

“너 여친한테 꼼짝 못 하나보다? 예전처럼 쏙쏙 빠져나가지 않고. 언제 출발해?”

“내일 아침. 늦으면 두고 갈 거야.”

“걱정 마셔.”

농기가 그득한 손가락이 마리의 어깨 주변을 더듬는다. 마리는 꼿꼿하던 팔을 그의 허벅지에 얹어 만지작대는 것으로 톤을 맞춘다. 네바 혼자 찝찝함에 입을 다시고, 캐스가 입담으로 깊은 저녁 분위기를 이어가는 동안. 마리는 그를 훑으며 파악해 나갔다. 신체 곳곳에 누덕누덕 쑤셔 넣고 잡아뺀 임플란트 자국을, 덮개도 없이 지저분하게 열어놓은 귀 뒤편의 연결 포트를.


며칠은 평화롭게 지나갔다. 사방에서 돌덩이가 부딪혀오는 소행성 지대도 마리가 업그레이드한 항법 시스템으로 무사히 통과하고, 보충한 물자로 생활도 풍족했다. 캐스가 함선에 합류하고 나서 달라진 건 함선이 조금 시끄러워졌다는 것, 그리고 네바가 더 피곤해졌다는 것 정도였다. 전자는 캐스 탓이었고 후자는, 물론 후자도 캐스 탓이었다.

마리는 캣에게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정확히는 그가 가진 정보에. 네바를 긁거나 약 올리려고 옛날 얘기를 꺼낼 때마다 집요하게 캐물었다. 그때 네바 편제는 어땠습니까? 보직은? 강화 시술 전이었습니까? 어느 섹터에서 수술한 거죠? 기록이 남았을까요? 또 어디 파병됐었죠? 질문들이 하나같이 촘촘했다. 캐스는 뜬금없는 질문이 쏟아지면 말을 멈추고 마리를 봤다.

“왜요?”

“아니. 희한한 걸 궁금해하네.”

“쟤가 그런 걸 좋아하거든.”

네바만 어색하게 헛기침하는 일이 늘었다.

불이 다 꺼진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마리는 혼자 함선을 돌아다니며 깨어 있었다. 승선하고 백여 시간이 흘렀는데 쉬거나 잠든 걸 본 적이 없었다. 아까도 나름 전 섹파의 프라이버시를 존중해주겠다고 청각 신호 차단하고 자는 척 했지만, 꽤 한참을 떡치는 것 같던데. 그러고도 여전히 뽈뽈거리면서 돌아다닌다니.

캐스는 한참 유랑하던 정보망 페이지를 전부 닫고 침대에서 일어난다. 게이건샤인 반병을 먹고도 도통 취하지 않던 여자를 찔러볼 차례였다.

생활 구역 근방만 조명이 어스름했다. 무언가 바지런히 정리하는 소리가 들린다. 캐스는 물 한 잔을 떠서 그쪽으로 걸어간다.

“안 자네?”

통로 문가에 기대 그를 봤다. 네바가 입던 반팔이었는지 헐렁하고 큼직한 상의만 입고. 아래로 드러난 다리가 매끄러웠다. 찬장 위로 손을 뻗던 마리가 돌아본다. 재미없는 회색 면 속옷을 입은 엉덩이가 아래로 비쳤다.

“당신도요.”

“피곤하지 않아?”

“괜찮습니다.”

마리는 도로 몸을 돌려 찬장에 보급품을 채운다. 슬쩍슬쩍 드러나는 어깨 라인에 칼을 댄 흔적이 보였다. 속살까지 아주 완벽한 몸은 아니었네. 최근에 손 본 거고.

“걔랑 하고도? 네바도 그간 많이 죽었나봐.”

“무슨 뜻입니까?”

평온한 말투라 고저가 적었다. 캐스는 농담이 먹혔는지 아닌지 가늠하기 어려웠다.

“에너지 남으면 나랑 마저 해도 된다고.”

해서, 일부러 근처에 다가가서 도발하길 선택한다. 이번에도 그는 아무리 사적 공간을 침범해도 옆으로 물러나지 않았다. 보급품 하나를 설렁설렁 집어 내민다. 아, 마리는 그걸 받았다가 뒤늦게 깨닫고 대답했다.

“원하면 가능하긴 합니다. 필요하십니까?”

성적 농담을 되받아치는 바람에 마시던 물에 사레가 들린 건 캐스 쪽이었다. 농담이잖아. 손을 휘휘 젓고 잔을 내려놓는다.

“둘이 애인 사이라며? 천 시간을 어색하게 가고 싶진 않거든.”

“아마 왼쪽 의안 신호 수신에 오류가 있어서 잠이 안 오는 걸 겁니다. 지금 인공 간에 추가 설치한 효소 분해 장치가 혈액 내 전해질 농도에 과도하게 개입하는 중이거든요. 그게 기계 안구의 신호 전송을 간간이 흔들어서 어지럼증을 유발하는 거고요. 많이 어지러우면 이따 봐드릴 수 있습니다. 신체 임플란트 개조를 너무 많이 해서 충돌이 많아요.”

그가 찬장을 닫고 대답을 돌린다.

“와우, 그게 보여?”

저도 바이오테크에 관심이 많아서요. 살풋 돌아보며 짓는 미소의 각도가 매번 동일했다.

역시 그렇겠지. 이런 태도는.

캐스는 대화를 이어가는 척 손가락 안쪽의 전류 출력을 낮게 켠다.

복잡한 물류센터에서 일하면서 몸에 익은 주파수였다. 일반적인 통신 주파수와 겹칠 일이 없는 아주 밑바닥 규격. 유닛들과 서로 위치가 꼬이지 않도록 사용하는, 식별 핑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노크 수준의 근접 신호였다.

떠본 손끝에 아주 짧은 답변이 닿았다.

눈앞에 있는 건 사람이 아니라 유닛이라고.

마리는 계속 말을 이었다. 시스템 레벨에서 자동 반응하는 명령이라 자신이 방금 뭘 했는지도 모르는 채였다. 그러다 몇 초 뒤에. 정적이 흐른다. 캐스는 시선을 떼지 않고 그를 관찰했다. 정체를 들켰다는 걸 스스로 알아채는 찰나를. 무언가 되짚는 것처럼 눈이 한순간 공회전한다.

“인간 사칭이 범죄인 건 알지? 잘못하면 폐기인데. 나까지 속이긴 어려울걸.”

유닛이 일어섰다. 정체가 밝혀진 이상 쓸데없이 변명하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지도 않았다. 달라진 공기에 캐스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서며 거리를 벌린다.

“잠깐, 멈춰.”

그것은 음성 명령에도 멈추지 않았다. 네바 이 또라이 새끼, 안전장치도 없는 걸 데리고 다니네. 캐스는 빠르게 옆으로 튄다. 벌통을 쑤셨으니 좁은 공간부터 탈출해야 했다. 마리의 주먹이 아슬아슬하게 귓가를 스쳤다. 쿵, 벽에 깊게 자국이 팬다.

환장한다. 난 그냥 불법으로 개조된 섹스로봇인 줄 알았다고! 명백히 살상 의도를 담은 공격에 다리 액추에이터를 풀가동하며 생활 구역 통로를 빠르게 달린다. 네바를 깨워야 하나? 아니, 걔도 한패면 어떡하지? 아직 충분히 코모란트 내부를 탐색하지 못한 캐스는 금방 복도 끝에 몰렸다. 복도 반대편에서 다가오는 속도는 그다지 빠르지 않았다. 그게 더 기분이 나빴다. 서두를 이유도 없다는 거니까.

캐스는 한숨을 푹 쉬고 전투 자세를 취한다. 타박타박 걸어오던 마리도 곧 멈추어 서서 대치했다. 선빵필승일까? 그다지 전문적인 자세는 아니었기에, 이를 악물고 온 힘을 다해 선제공격을 택한다. 갈비뼈 아래를 깊숙하게 파고들어 쳤다. 그 밑에 있을 주전력 배분 노드를 노린 거였다.

퍼억, 몸체가 크게 흔들리면서 마리가 순간적으로 뒤로 밀려났지만, 금방 자세를 고친다.

충격이 가해져도 전원이 꺼지지 않는다. 윤리 제어가 없어 보이니 당연하지만, 통증 시스템도 작동하지 않았고. 체급에 비해 몸체의 견고함도 일정 수준 이상이다.

마지막 수단으로 해킹 모듈을 이용해 시스템에 노이즈를 쏴봤지만 끄떡도 없었다.

“와, 진짜 죽이려는 거야?”

하, 하하, 있는 무기를 다 사용하자 웃음만 비어져 나온다. 입막음 용돈 좀 뜯으려다가 뒤지게 생겼네. 유닛은 대답하지 않았다.

위력이 실린 팔이 쇄골로 날아온다. 인공 뼈 안에 각종 개조물을 관장하는 허브를 심은, 캐스의 약점이었다. 여기까지 파악했다고? 급소는 빠르게 피했지만 도망친 반대편에서 날아온 발에 관자놀이를 가격당했다. 씹⋯, 미리 올려둔 가드로 지탱하는 동안 치명상은 막았으나 골이 징징 울렸다. 어지러워서 휘청이다 그대로 명치를 얻어맞는다. 그래도 다가온 손목을 낚아채 혼자 쓰러지지 않고 같이 바닥을 굴렀다.

자신보다 분명 작은 체구였는데도 근력이 상당했다. 그라운드만큼은 자신 있었는데. 마운트 포지션에서 힘으로 밀려버리자 바로 목이 잡혔다. 근력도, 반사신경도 우위라니. 뭐 이딴. 캐스는 그대로 바닥에 깔린다.

어두워지는 시야와 주마등을 밀어내고 필사적으로 계산한다. 저 미친 유닛이 챙기는 거, 제동 걸만한 거, 관심 있는 거.

집착하는 거.

“기, 기다려, 켁,”

목이 끊어질 정도로 압력이 들어온다. 애써 박아 넣은 눈알이 튀어나갈지도 몰랐다. 거세게 몸부림쳐도 밀리지 않고 묵직하게 눌러오자 캐스는 되는 대로 패를 집어서 던졌다.

“지금 네바 백도어에, 연결했으니까⋯,”

얼마 전에 저게 만든 펌웨어로 네바의 임플란트를 업그레이드했다지, 둘이 밀회를 나누는 동안 주워들은 단어는 죄다 써봐야 했다. 필사적으로 잡힌 손을 쥐어뜯으며 꺽꺽거린다. 다행히 네바의 이름이 언급되자 손에 미세한 지연이 들어갔다.

“내 생명 신호 끊기면, 곧장 그 새끼한테도 데이터 폭탄 밀어 넣을 거야.”

약해진 틈을 타 문장을 쏟아낸다. 이만큼 음험한 유닛이면 멀쩡한 프로그램을 만들 리가 없을 거란 도박이었다. 네바에게 보이는 관심만큼 뒤에서 꾸민 일이 있을 거라고.

“… 거짓말. 나만 연결 가능한데.”